여름철 온실가스 '주범'.. 틀자니 걱정되고 안 틀자니 덥고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윤지로 2019. 7. 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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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에어컨 보급률 86% 달해 / 최근 35도 넘자 전력수요 7708만㎾ / 냉매는 CO₂보다 수천배 센 온실가스 / 車에어컨은 냉매처리 추가비용 들어 / 해마다 180t꼴 공기 중으로 누출돼 / 에너지 1등급 제품 전력 절반 낮추고 / 온도 저감기술로 에어컨 대체 시도도
내일은 117번째 ‘에어컨의 생일’입니다. 1902년 7월12일. 미국 코넬대 공대를 졸업한 지 1년밖에 안 된 젊은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가 에어컨 아이디어를 선보인 날이죠.
 
에어컨의 생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에어컨은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인기에 휩싸입니다. 캐리어를 두고 ‘이분 최소 노벨평화상감’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하지만 에어컨 전원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마음 한쪽이 켕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기요금이 걱정돼서, 지구온난화가 심해질까봐 등 다양한 이유로 말이죠. 에어컨은 정말 ‘환경적폐’일까요? 집에서 맘 편히 에어컨을 틀 수 있게 여름철 주택용전기요금을 낮추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일까요?
 
올여름도 더위사냥에 여념이 없다는 에어컨 ‘한(寒)여름’ 선생에게 궁금증을 물어봤습니다.
 
―요즘 인기를 체감하시나요?
 
“그럼요. 특히 최근에는 장맛비가 뜸한 대신 낮 기온이 높게 올라갔잖아요? 인기차트를 대신해 전력거래소의 전력수급실적을 살펴보면, 낮 최고기온이 35∼36도까지 오른 지난 5∼6일 최대전력수요가 7708만㎾까지 올랐죠. 지난해보다 6.3% 많은 양입니다. 한 10년 전만 해도 여름철 전력수요는 많아야 5000만∼6000만㎾였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7000만∼8000만㎾까지 나옵니다. 최악의 폭염이었던 지난해 여름에는 역대 가장 많은 9248만㎾를 기록하기도 했죠.”
 
―도대체 당신은 전기를 왜 이렇게 많이 쓰는 건가요?
“그 질문은 마치 자아비판을 하라는 것 같군요. 원래 각종 가전제품 가운데 온도를 제어하는 제품은 특히나 전기를 많이 잡아먹습니다. 전기밥솥이나 포트 같은 것들 말이죠. 요즘 나온 에어컨의 소비전력은 2㎾ 정도입니다. 매일 하루 3시간씩 튼다면 한 달에 180㎾h를 쓰는 셈이죠. 에어컨과 원리가 같은 냉장고는 하루 종일 가동되지만 월 30여㎾h를 씁니다. 전기 많이 먹기론 둘째가라면 서럽죠. 그러니 여름철 기온에 따라 총 전력수요가 오르내리는 겁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전력 수요의 10%는 저 같은 냉방장비를 가동하기 위해서랍니다. 이 비중은 앞으로 더 커질 게 분명하죠.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제가 부의 상징이었듯, 세계적으로도 집집마다 에어컨이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에어컨이 가장 절실해 보이는 아열대 저개발국가의 보급률이 낮은 편인데 앞으로 이런 나라의 수요가 늘기 시작하면 냉방 전력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겠죠.”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이군요. 그럼 만일 재생에너지로 에어컨을 돌린다면, 환경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석탄화력발전보다야 이산화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겠죠. 하지만 문제는 또 있습니다. 바로 냉매죠. 흔히 에어컨 가스라고 하는 그것 말입니다. 땀 흘린 얼굴에 바람이 불면 갑자기 시원해지죠? 그건 땀방울이 기체로 바뀌면서 몸의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저도 액체 냉매를 기체로 만들어 실내 온도를 낮춥니다. 기체가 된 냉매는 실외기 쪽에서 압축기를 거쳐 다시 액체가 되고요.

그런데 이 냉매가 무시무시한 온실가스예요. 현재 쓰이는 냉매는 대부분 이산화탄소보다 수천 배 강력한 온실가스입니다. R―507A라고 하는 냉매의 온난화계수(GWP)는 3985인데, 이는 이산화탄소가 100년 동안 1만큼의 열을 가둔다면 R―507A는 같은 기간 3985나 되는 열을 가둘 수 있다는 뜻이죠.

아, 그렇다고 에어컨을 틀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정상적인 에어컨이라면 냉매는 본체와 실외기를 계속 순환하며 양이 유지되거든요. 누설부위가 생겼거나 에어컨을 폐기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죠. 가정용 에어컨은 회수체계가 갖춰져 있어 그나마 안심입니다. 자동차 에어컨이나 초대형 에어컨·냉동설비를 쓰는 업체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원칙대로라면 전국 500여 폐차장은 차를 폐차하기 전에 냉매를 회수해 폐가스처리업체에 넘겨야 합니다. 하지만 1㎏당 3000∼1만원의 처리비용이 들죠. 그래서 그냥 공기 중으로 날려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환경부 조사에서 지난해 폐차 냉매는 11만3147㎏ 회수됐습니다. 차 한 대에는 평균 313g의 냉매가 들어 있는데 연간 폐차량(약 80만대)을 감안하면, 25만400㎏의 냉매 중 45%만 회수된 셈이죠. 그마저도 실제 폐가스업체에 제대로 인계된 양은 7만225㎏에 불과합니다. 약 18만㎏ 즉, 180t의 냉매가 지금 현재 저 하늘에서 지구를 뜨겁게 데우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해 국내 냉매 수입·제조량은 3만7000여t인데, 쥐도 새도 모르게 새나가는 양이 상당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송영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팀이 개발한 수동 복사냉각 장치를 부착한 부분의 온도가 주변보다 3~5도 내려갔다. 송영민 교수팀 제공
―대답을 들으니 마음만 복잡해지네요. 안 틀자니 더워 죽겠고, 틀자니 지구에 미안하고. 대안이 없을까요?
“오존층을 보호하자는 몬트리올의정서와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지금 많이 쓰이는 냉매(HCFC, HFC 계열)는 2045년까지 단계적으로 사용이 중단될 예정입니다. 냉매로 인한 기후변화는 어느 정도는 끝이 보이는 상황인 거죠. 막대한 전력 사용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데, 전력효율 최상위 등급의 제품만 써도 전력수요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하네요. 에어컨 없이 실내 온도를 낮추는 기술도 나오고 있습니다. 송영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팀은 태양광을 최대한 반사시키고, 실내 열기는 밖으로 방출시키는 소재를 개발했습니다. 타일처럼 건물 외벽이나 지붕, 자동차 선루프에 붙여서 사용하는 것이죠. 그는 “담쟁이나 하얀색 페인트로 건물 외벽이나 옥상을 덮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해서는 대기 온도 밑으로 실내 온도를 떨어뜨리지 못한다”며 “우리 기술은 주변 대기보다 5도 이상 온도를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기술은 2014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처음 고안했는데 이후 외국에서는 창업에 이른 연구팀도 있다고 하네요.”
―흠… 좀 먼 미래 이야기같군요. 올여름 에어컨 틀까요, 말까요?
“낮 최고기온 35도는 예사가 돼버린 요즘 같은 때 꾹 참고 견디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정말 제가 필요할 때 저를 찾는 건지는 묻고 싶습니다. 가만 보면, 저를 사용하는 데도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 같더군요. 일본이나 미국은 가정 에어컨 보급률(2015년 기준)이 90% 이상입니다. 우리나라도 86%나 되고요. 그런데 독일과 영국은 3%, 프랑스도 5%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여름 폭염이 해를 거듭할수록 맹렬해지면서 이런 나라에서도 에어컨 판매량이 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2030년 독일의 에어컨 보급률은 13% 정도로 예상됩니다. 상업용 건물에도 에어컨이 없는 곳이 많다 보니 ‘베를린의 에어컨 있는 상점’을 알려주는 웹사이트까지 등장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최근 한 녹색당 의원이 회의실에서 “에어컨 좀 틀어달라”고 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는 본인의 트위터에 에어컨에 관한 7가지 단상을 올려 해명했습니다. 요지는 ‘극한 폭염에 에어컨을 악마로 여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죠.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 결정 과정에서 한국전력 적자가 가장 큰 이슈였던 것 같은데, 분위기가 참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지구온난화에 미칠 영향도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저는 ‘문명의 이기’이고 싶지, ‘이기적인 문명’은 되고 싶지 않거든요.”
 
◆‘공공기관 실내 28도’ 누가 정했을까
 
‘실내 권장온도에도 성차별이 존재한다.’
 
2015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는 이런 논문이 실렸다. 실내 권장온도가 1960년대 정장을 입은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설정됐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쾌적하다고 느끼는 온도는 여성에게 춥게 느껴질 수 있으며, 온도가 낮은 만큼 필연적으로 전기소모량도 많다는 내용이다.
 
지난 3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실내 권장온도는 미공조냉동공학회(ASHRAE)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데, 화씨 67∼82도(섭씨 19.4∼27.8도, 이하 섭씨 환산 온도)를 제안한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많은 건물에서는 23.3∼24.4도 정도로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데, 이 기사를 쓴 페넬로페 그린 기자는 “내 동료, 그러니까 한 20% 정도는 스웨터를 입고 벌벌 떤다”고 묘사했다.
 
우리나라에는 공공기관이 지켜야 할 ‘적정실내온도’라는 것이 있다. 2011년 제정된 ‘공공기관 에너지이용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은 공공기관이 냉방설비를 가동할 때는 평균 28도 이상으로 실내온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의 7월 상순 평균 낮 최고기온이 27.9도이니, ‘추워서 담요를 둘러야 할’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왜 28도로 설정됐는지는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 규정은 1996년 국무총리령이었던 ‘공공부문 에너지합리화 추진 지침’을 이어받은 것”이라며 “총리령 때부터 공공기관은 28도가 여름철 적정실내온도였고, 규정에서도 총리령 기준을 준용해 지금까지 써오고 있는 것이라 28도에 대한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2014년 개정된 규정에서는 28도를 적정온도로 하되 비전기식 냉난방설비(심야전기나 도시가스 등을 활용한 냉난방)가 60% 이상 설치된 경우에는 평균 실내온도를 2도 더 낮출 수 있도록 했다. 일반 상업시설에서도 26∼28도를 적정온도로 본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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