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패션 트렌드-음악을 입는다
단순히 팬이라서 뮤지션의 티셔츠를 입는 시대가 아니다. 아티스트는 이제 하나의 브랜드고, 그 브랜드가 만든 제품을 입는 것이다. 음악과 결합한 패션이 꿈틀거린다.

1992년, 나는 대학 진학을 이유로 상경했다. 내가 나고 자란 울산은 문화적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가깝게는 부산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중고등학생 시절 필자는 록 뮤직에 빠져 있었다. 메탈리카, 건스 앤 로지스, 오지 오스본, 본 조비, 스키드 로우, 메가데스 등. 내게 있어 록 뮤직은 어떤 해방구였다. 대중가요가 인기 있는 시절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음악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카테고리 중 나는 록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아무튼 울산에서 구하지 못하는 CD나 카세트 테이프가 있으면 부산 국제시장으로 향했고, 또 좋아하는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카피(당시에는 불법으로 복사해 팔았다)해 와서 늘어지도록 돌려보곤 했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온 첫 해. 가장 먼저 한 것은 글로벌에서 인정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규모를 가지고 있던 건스 앤 로지스 팬클럽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소정의 가입비를 내고 회원 자격을 가지면 선물로 그들의 후드 티셔츠를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형 레코드 숍에서 록 밴드의 오피셜 머천다이징 상품을 팔긴 했지만 꽤 비쌌다. 아무튼 나는 건스 앤 로지스의 십자가가 프린트된 후드 티를 상당히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세월이 지나 현재까지도 나는 록 뮤직 팬이다. 비록 좋아하는 장르와 아티스트는 시대 흐름과 함께 변해 왔지만 그 음악 카테고리에 대한 애정은 꽤 큰 편이라는 의미다. 나는 종종 록 밴드의 로고 혹은 앨범 재킷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구매하여 시즌마다 입었다. 이런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접어들며 국내에도 굵직한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이 증가했고, 심지어 꿈에 그리던 록 페스티벌들이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공식 머천다이징 프로덕트로 판매되는 옷을 꼭 구입하곤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패션 범주에 있어 이 같은 행위는 마니아적 소비였고, 그런 옷들을 입는 건 ‘나는 당신들과는 다르다’는 의사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뮤직 티셔츠들은 작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극히 일부 팬들에 의한 소비일 뿐이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또 세월이 흘러 필자 역시 불혹에 접어들고 사회 관습에 순응해 나가는 지극히 평범한 중년이 되었다. 패션과 문화를 비롯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뮤직 비즈니스에서 시작된 굿즈 사업이 패션 트렌드와 맞물리며 대단히 트렌디한 어떤 것으로 변화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접목의 활성화는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그리고 이제는 뉴트로라는 트렌드로 널리 알려진 것과 분명 맞물려 있어 보인다.
동시에 스트리트 패션은 비평가들에 의해 ‘하위 문화(Subculture)’라 통칭되던 수식어를 벗어 던지고, 팬덤으로 이루어진 그들만의 리그에서 탈피했다. 럭셔리 브랜드와의 협업은 물론 그들 스스로가 럭셔리가 되면서부터 음악과 패션의 만남은 점차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과거부터 음악에서 파생된 굿즈들은 패션 스타일링의 포인트처럼 활용되어 오긴 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많은 뮤지션들은 음악을 시작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굿즈를 소소하게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쳐 왔다. 솔직히 패션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지속해 왔다. 1970년대 펑크 록의 아이콘으로 이해되는 섹스 피스톨즈의 스타일링이 어린 소녀였던 비비안 웨스트우드로부터 시작된 것만 봐도 그렇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옷을 만들어 왔다. 현재는 셀린느를 맡고 있는 에디 슬리먼이 디올 옴므 시절 로큰롤 느낌의 옷들을 발매해 큰 호평을 받았던 것도 그런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입는다’는 개념의 뮤직 패션이 놀랍게도 증폭된 건 제리 로렌조라는 걸출한 패션 디자이너의 등장과 맞물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뮤직 패션의 또 다른 아이템은 영화에도 비롯되었다. 다름 아닌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것. 거의 천만 관객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한 이 영화로 인해 퀸의 앨범은 물론 머천다이징 상품들도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현재 퀸의 앨범 배급사인 유니버설레코드의 계열사이자 뮤직 오피셜 상품을 판매하는 브라바도가 퀸의 제품들을 쇼핑몰 전면에 게시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피어 오브 갓과 퀸은 패션 브랜드와 영화라는 또 다른 범주 속에서 태어난 뮤직 패션이라 보는 게 적당하다. 물론 대부분의 음악 연계 패션이 이러한 문화적 상황에서 태동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의 뮤직 패션 활성화 계기가 있다. 바로, 카니예 웨스트로 대표되는 힙합 뮤지션이 패션 아이콘화되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또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트렌드가 된 측면이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카니예가 디자이너가 되었기 때문이고, 음악을 입는다는 취지의 뮤직 패션은 아니다.

▶패션 아이콘이 된 동시대 뮤지션들
다시 뮤직 패션 트렌드로 돌아오면, 그 중심에는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라는 Z세대 아티스트가 있다. 현재는 빌리 아일리시를 ‘지구상에서 가장 힙하고 핫한 뮤지션’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빌리 아일리시는 인디 뮤지션으로 존재하다, 애플이 작년 연말 애니메이션 CF를 그녀의 뮤직비디오로 제작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점차 그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었고 이후 그녀의 머천다이징도 발매되는 족족 솔드 아웃이다. 최근 그녀는 자신의 트랙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의 뮤직비디오를 일본 출신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 작업했다. 바로 무라카미 다카시의 시그니처라고 할 웃고 있는 꽃들이 가득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다. 이 작업과 함께 ‘빌리 아일리시×무라카미 다카시’ 굿즈들이 판매되었다. 화려한 형광 컬러가 돋보이는 몇 개의 굿즈들은 순식간에 동이 났고, 현재는 리셀러들에 의해 상당히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이는 빌리 아일리시의 팬에게도 탐나는 아이템이지만, 패션 피플에게도 역시 꼭 가져야 하는 옷이 되었다는 의미다. 제리 로렌조의 피어 오브 갓, 퀸의 티셔츠들이 흥행하는 것과는 양상이 다른, 동시대의 세대에게 음악은 물론 패션까지 어필하는 아이콘으로서의 빌리 아일리시가 되었음을 과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빌리 아일리시 티셔츠는 진정 ‘음악을 입는다’는 의미의 뮤직 패션의 주요한 사례로 그려진다.


▶뮤직 비즈니스, 브랜드가 되다
사실 이 같은 뮤지션들의 굿즈는 음악 산업에서 음반 판매 및 공연 수익 이외의 또 다른 창구로 기능하는 중요 카테고리가 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많은 동시대 뮤지션들이 스스로를 패션 아이콘화하고 또 그에 상응하는 제품을 선보이면서 이익의 극대화를 노리는 전술적 행위로서 뮤직 패션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슈프림이나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처럼 발매할 때마다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이 있다. 그들의 제품은 럭셔리 브랜드처럼 발매가가 아주 비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량으로 생산한 옷들이 금세 품절되고 리셀 마켓에서 고가로 거래된다. 뮤직 패션 제품들 역시 그렇다. 앞서 언급한 브라바도의 오피셜 티셔츠는 국내가로 3만 원대다. 하지만 리셀러들의 표적이 된 제품은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가 된다. 한때 미고스의 티셔츠가 그랬고, 피어 오브 갓의 제리 로렌조가 디자인에 참여한 저스틴 비버의 ‘퍼포즈 투어Purpose Tour’ 굿즈 역시 그랬다. 물론 저스틴 비버의 퍼포즈 투어 제품군은 소규모 브랜드화되어 시즌마다 새로운 제품을 선보인다.


자신의 옷장을 뒤져 보길 바란다. 음악과 연관된 옷가지가 하나라도 있다면 당신은 음악을 입는 트렌디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단 한 개도 없다고?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밴드 티셔츠든 뭐든 하나라도 마련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또 그들의 음악을 즐겨 보길 바란다. 이렇게 음악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듣는 것 이상의 또 다른 소비 창구를 열어 준다. 물론 한정판을 구하기 위해 과도한 출혈을 일으키는 소비는 금물이다.
[글 이주영 사진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브라바도, 반스코리아, 메탈리카 공식 홈페이지, 빌리아일리시 공식 홈페이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7호 (19.07.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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