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②-2019 상반기결산]단연 '기생충'.."봉준호 감독님, 리스펙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기생충'(감독 봉준호·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은 2019년 상반기 영화계의 사건 자체다. 칸을 놀라게 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은 한국을 그리고 세계의 관객을 사로잡으며 일찌감치 '2019년의 영화' 자리를 예약했다. 2019년을 넘어서도 '기생충'의 자리는 오롯할 것이다.
◆"리스펙!"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이자, 한국 최초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다시 만나 신작을 만든다 했을 때부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혔던 이 가족극은 지난 5월 25일 막을 내린 제 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기생충'은 공개와 동시에 영화제의 공기를 바꿔놨다. 갈라 스크리닝이 열린 뤼미에르 극장의 8분 기립박수엔 진심어린 찬사가 담겨 있었다. 칸 소식지(데일리)를 비롯한 다수 매체가 1순위 황금종려상 후보라며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칸 최고의 작품"(비욘드 페스트) "단일 카테고리로 정의할 수 없는 장르 변주의 신, 봉준호가 돌아왔다. 가장 뛰어난 형태로"(버라이어티) 등 극찬이 쏟아졌다.

국적과 성별과 나이가 다른 칸의 심사위원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기생충'은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9인의 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기생충'을 선택했음을 강조하며 "우리 심사위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밝혔다.
◆"그 검은 상자를 저와 함께 열어보시겠어요?"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가족희비극." 스포일러 유출 방지를 위해 고심 끝에 정리된 이 한 줄은 '기생충'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인 표현이다.봉준호 감독은 "광대가 없는 희극, 악인이 없는 비극"이라 했다.
'데칼코마니'였던 가제처럼, 영화에선 큰 틀은 닮았지만 따져보면 다른 두 가족이 대비를 이룬다.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인 반지하집 백수 가족이 으리으리한 저택에 사는 부자 가족과 맞물리면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높은 밀도와 압도적인 몰입감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으며 '봉준호 월드'의 새로운 경지를 알린다. 가족극의 틀 안이지만 코미디와 드라마, 스릴러와 호러를 자유롭게 오가는 리드미컬한 장르 변주는 봉준호 감독의 전매특허. 칸을 매혹한 '기생충'의 킬링 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됐다"(인디와이어)는 평이 가장 기뻤다고 거듭 고백하기도 했다.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
'데칼코마니'에 이은 가제는 '기생충 가족'이었다. 숙주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벌레를 가리키는, 경멸과도 같은 강렬한 제목 '기생충'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자명하다. 이를 통해 영화는 도저히 공생하거나 상생할 수 없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 도사린 불안을 짚어낸다. 손쉬운 예측을 거부하는 이야기 전개는 흥미진진하다.
6년 전 SF판타지 '설국열차'를 통해 앞으로 앞으로 향하는 '꼬리칸' 사람들의 혁명을 그렸던 봉준호 감독은 지독하고도 씁쓸한 현실로 눈을 돌렸다.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를 지울 수 없던 백수가족은 "부자인데 착한 게 아니라 부자라서 착한" 이들을 위해 충성을 다할 분위기다. 언감생심 잠시 선을 넘었다 이내 쪼그라들어선 끊없는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갈 뿐. 그 어마어마한 낙차는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처지를 아프게 드러낸다. 하지만 '없는 자'들은 그저 가진 자에 기생할 뿐, "불우이웃"을 부정하고 외면하며 심지어 서로를 할퀴고 해친다.
폭소가 터지는 순간도 상당하다. 그러나 한국 관객이라야 100% 이해할 디테일이 가득한 리얼리즘은 씁쓸하고 참담하게 다가온다. 범접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빈부차를 실감하는 세계의 관객들에게도 보편적인 이야기와 정서로 다가갈 듯하다. 아프도록 날카로운 '기생충'의 묘사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플란다스의 개'(2000)로 데뷔, '살인의 추억'(2003, 525만 명), '괴물'(2006, 1301만 명), '마더'(2009, 301만), '설국열차'(2013, 935만 명), 그리고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를 연이어 선보이며 세계적인 필름메이커로 거듭난 봉준호 감독은 대중의 사랑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받는 감독이다. '기생충'은 그 정점이다.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다.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놀라운 흥행작에 등극했다. 개봉 약 한 달이 된 지난 28일까지 누적관객이 940만명에 이른다. 여전히 박스오피스 4위다.

봉준호와 송강호가 만났다고는 하나, 코미디보다 블랙에 방점이 찍힌 어둠의 기운 가득한 블랙코미디가 10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을 거라 누가 예상했을까. 칸 수상이 곧 국내 흥행으로 직결되는 분위기가 아니고,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부산행'(2016)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탄 칸영화제 '약발'에 대한 희의도 있었다. 그러나 황금종려상의 낭보에 더해진 만장일치의 호평, 폭발한 기대감은 뜨거운 관객몰이로 나타났다. 칸 영화제 폐막 직후인 지난 5월 30일 개봉한 '기생충'은 시작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2일째 100만, 3일째 200만, 4일째 300만, 6일째 400만, 8일째 500만, 10일째 600만, 11일째 700만, 17일째 800만 관객을 넘겼고, 25일 만에 900만을 넘겼다. 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하는 여름을 앞둔 시점이다. '기생충'이 이대로 '극한직업', '어벤져스:엔드게임'을 잇는 2019년 3번째 '천만영화'가 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기록은 이미 충분하다.
'기생충'을 향한 열기는 한국만의 이상 현상은 아니다. 한국에 이은 2번째 개봉 국가 프랑스에서 '기생충'은 이미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해외 판매도 기록적이어서, 유엔 회원국보다도 많은 무려 202개 나라에 판매됐다. 이 역시 한국영화 역대 최다국 판매 신기록이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 100년에 남을 영광이기도 하다. 마침 올해는 1919년 10월 27일 개봉한 영화 '의리적 구토'(감독 김도산) 이후 한국영화 탄생 100년이 되는 해다. 1984년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감독 이두용)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것이 한국영화와 칸의 첫 인연. 이전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4)가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을 받은 것이 한국영화의 가장 큰 성과였다. 2002년 '취화선'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 2007년 '밀양'(감독 이창동)의 전도연이 여우주연상, 2009년 다시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각본상, 2010년 '시' 이창동 감독이 각본상을 받은 게 주요 성적이었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명장들이 거푸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 강국인 한국은 그 트로피와 인연이 없었다. 영화인들에겐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자 한(恨)이기도 했다. 드디어 칸의 낭보를 전해온 봉준호 감독에게 "한국영화가, 봉준호가 드디어 해냈다"며 전한 배우 안성기의 축하는 한국영화계의 기쁨, 그리고 안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 동안 늘 가지고 있던 해외 영화제 수상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영화 100년사에 큰 경사를 만든 '기생충'에 축하와 감사를 보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상 직후 SNS에 글을 올려 "한류 문화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고 축하했을 정도다. (너무 궁금하고 보고싶다던 문대통령은 지난 23일 부인 김정숙 여사와 결국 '기생충'을 관람했다.)

◆"그래도, 사랑하시죠?"
물론 봉준호 감독만의 성취가 아니다. 한국영화 최정상 스태프는 감독의 비전을 거의 완벽하도록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영상으로 옮겨내 경탄을 자아냈다. 조명과 촬영, 세트, 미술, 음악에 곳곳에 숨은 CG까지… 모두에서 이들의 숨결이 가득하다. 2014년 '국제시장'(2014)를 기점으로 이젠 주류 영화계에 안정적으로 정착된 표준계약서도 함께 조명받으며 한국영화 '시스템'의 성숙을 알렸다.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을 수 없다. 봉준호의 페르소나이자 그가 "가장 위대한 배우"라는 찬사를 바친 배우 송강호가 그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그리고 존재가 스포일러였던 박명훈까지,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에 숨결을 불어넣은 연기파 배우도 이 영광을 함께해 마땅한 공로자들이다.

다만 '기생충'의 비할 데 없는 성취가 한국영화 전반에 대한 착시처럼 느껴질까 하는 걱정은 남는다. 봉준호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뒷맛 씁쓸한 제작비 140억짜리 가족극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대중의 입맛을 알아서 예측해 재단한 엇비슷한 기획영화들이 쏟아져나오고, 감독의 개성이 오롯이 살아있는 신선한 작품들은 점점 보기 힘들어진다는 비판은 유효하다. 아니 더 강해지고 있다. 데뷔작에서 상업적으로 실패한 신인감독이 2번째 기회를 얻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도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로 흥행에서 쓴맛을 제대로 봤다. 지금의 봉준호가 있을 수 있었던 건 2번째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영화계에서 제2의 봉준호는 탄생할 수 있을까.
제한 없는 스크린 몰아주기와 쏠림현상 속에 작고 개성있는 영화의 설자리는 더 줄고 있다. 많은 영화인, 심지어 많은 관객들도 "박찬욱 이창동 그리고 봉준호를 잇는 새로운 주자가 없다"고 우려한다. 1990년대 젊은 감독들이 잇따라 영화계에 진출하며 새 바람을 일으킨 결과가 지금의 한국영화라면, 다음의 한국영화도 과연 그 개성과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반문하고 돌아보고 바뀌어야 할 순간이 왔다는 걸 '기생충'은 새삼 일깨운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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