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대묘 깊이보기 3 - 비천과 선인
[고구려사 명장면-74] 강서대묘의 천장 고임에는 하늘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 이번 회에서는 불교신앙에서 비롯하는 천인(天人)과 신선신앙이나 도교신앙의 선인(仙人)들로 추정되는 존재들에 대해 살펴보자.
이들 천인이나 선인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데, 날개를 갖고 하늘을 나는 우인(羽人), 봉황 같은 신성스러운 새를 타고 하늘을 나는 선인, 그리고 하늘거리는 날개옷을 입고 하늘을 나는 비천 등이 그려져 있다.
그중 날개를 갖고 우인의 존재가 다른 고분벽화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하늘을 나는 모습은 아니지만, 날개를 갖고 있는 천인은 오회분 4호묘의 동쪽벽 청룡 위에 그려진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 새들처럼 날개가 있어야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날개 달린 우인의 존재가 상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하늘을 나는 데 꼭 날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날개 대신에 상서로운 새나 학처럼 하늘을 나는 동물들을 타고 하늘을 날거나, 아니면 날개옷 같은 어떤 상서로운 기물의 힘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생각이 훨씬 보편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우인이 그려진 예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오회분 4호묘의 해신과 달신은 마치 옷이 날개처럼 좌우로 쭉 뻗어있어서 날개는 아니지만 마치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는 형상으로 그려졌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날개옷을 날개 모습으로 그렸다는 점이 화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한편 강서대묘에서는 봉황과 비슷하게 묘사된 새를 타고 붉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날아가는 선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상서로운 동물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이야기는 고구려 건국신화에서도 나타난다. 천제인 해모수는 다섯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땅과 하늘을 오르내렸다고 하며, 그의 아들 고구려 시조 주몽은 용의 머리를 딛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처럼 상서로운 동물을 타고 하늘을 나는 존재는 도교의 선인들로 보이는데, 중국 지안시에 있는 오회분 4호묘에 해까마귀와 달두꺼비를 좌우로 호위하는 듯한 선인 여럿이 그려져 있다. 학을 탄 선인, 용을 타고 악기를 연주하는 선인, 봉황을 탄 선인, 괴수를 탄 선인 4인이 하늘을 날고 있다. 통구사신총에도 학을 탄 선인의 모습이 보인다.
강서대묘 하늘세계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존재는 날개옷과 같이 하늘거리는 옷을 바람에 한껏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비천상(飛天像)이다. 상반신은 벗은 몸을 드러내고 몸을 반쯤 휘감은 옷자락은 물결치듯 흩날리고 있다. 이들은 요고나 뿔 나팔, 피리 등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마치 천상의 음악이 들려오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런 날개옷으로 창공을 나는 존재들을 상정하는 상상력은 과거 옛이야기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우리에게 친숙한 선녀와 나뭇꾼 설화에서 하늘나라 선계에서 내려온 선녀는 날개옷을 빼앗김으로써 하늘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뭇꾼과 살다가 나중에 날개옷을 되찾아 하늘로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좋은 사례이다.
이런 날개옷을 휘날리는 비천상하면 상원사 동종의 주악 비천상이나 에밀레종으로 널리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에 부조된 비천상을 우선 떠올리게 된다. 상원사 동종 비천상은 주악비천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그러나 성덕대왕신종 비천상의 하늘로 휘날리는 아름다운 기운의 이미지가 강서대묘 비천상과 더 흡사하다. 다만 이들 신라의 비천상은 옷자락이 아니라 어떤 영기에 휘감겨 있는 이미지이고, 또한 기운이 위로 올라가고 있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다. 이와 달리 강서대묘의 주악비천상은 진행과 반대 방향으로 옷자락을 휘날리고 있어서 하늘을 날고 있는 이미지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 가장 아름다운 비천상으로는 안악2호분 비천상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비천상은 보통 하늘을 나는 존재이기 때문에 대부분 무덤방 천정부에 그려지지만 안악 2호분의 비천상은 무덤방 벽면의 윗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점도 독특하다. 안악 2호분에는 여러 비천상이 있지만, 무덤방 동벽에 그려진 비천상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그려졌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고, 둥근 얼굴에 코는 오똑하고, 짙은 초생달 같은 눈썹에 살포시 눈웃음치고, 미소를 띠는 듯 살짝 벌어져 있는 붉은 입술 사이로 천상의 목소리가 울려나오는 듯하다. 두 손은 연꽃이 담긴 화반을 다소곳하게 받쳐들었는데, 아마도 꽃을 공양하는 모습을 그린 듯하다. 그리고 몸보다 두 배 이상 긴 옷자락이 물결치듯 흔들거리며 뒤로 길게 두 줄기 뻗친 모습은 너무나도 우아하게 나는 이미지를 그지없이 드러낸다.
특히 안악2호분은 무덤방 주인이 자리하는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여성 혼자이고 게다가 시신을 두는 관대도 하나밖에 없어,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남편이 함께하지 못하고 아내 혼자 묻힌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된 여성 비천상이 그려진 배경도 무덤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강서대묘 천장의 비천과 선인들은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하늘을 날고 있다. 이야말로 하늘을 향한 고구려인들의 소망 역시 다채로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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