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美타깃 '하메네이'는? 비밀기업 '세타드' 소유한 이란 '최고 존엄'
"나는 이란 최고지도자와 그의 보좌관, 그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재정적 자원과 지원을 받는 것을 봉쇄하는 제재에 서명하려 합니다."
트럼프의 칼끝이 향한 곳은 분명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이번 고강도 제재의 중심에 이란의 최고 지도자가 있다고 말했다. 공습 직전까지 갔던 미국이 대신 꺼낸 제재 카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 지도자와 최고 지도자실 등을 '강타할(hard hitting)' 제재"라는 표현을 썼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를 겨냥한 경제적 제재가 공습만큼의 위력을 지녔다고 미 정부가 판단한 셈이다.
이란의 최고 존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제재의 중심에 있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 바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다. 하메네이는 이란의 2대째 최고 지도자다.
이란의 1대 최고 지도자는 이란의 국부로 추앙받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다. 지난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현재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세운 장본인이다. 호메이니는 공명정대한 이슬람 법학자가 현실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이슬람 법학자 통치론'을 내세웠고 이를 토대로 국가를 설계했다.
신의 대리인 대신하는 '최고 지도자'.. 대통령보다 위
이란의 공식 국명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다. 공화국 체제는 이슬람이라는 종교 아래에 위치한다. 이란 헌법 5조는 신의 대리자가 지닌 국가의 지도권이 이슬람 법학자인 최고 지도자에게 양도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란 정부 기구표의 가장 위에는 대통령이 아닌 최고 지도자가 위치한다.
이슬람 공화국 체계를 만든 호메이니가 '아야톨라(이슬람 법학자)'로서 이란의 첫 번째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하메네이는 이란의 대통령을 지내다 1989년 호메이니 사후 그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최고 지도자가 됐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30년째 이란의 종교와 정치를 이끌어나가는 이란 그 자체인 셈이다.
이란 국가 체제 부정하려는 미국 경제 제재
이슬람 공화국의 최고 율법학자인 동시에 현실 정치의 최고 권력자인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그리고 그를 '대테러 특별지정 제재대상' 명단에 올린 미국의 조치. 이란의 종교와 국가 체제, 정부의 합법성까지 모두 부정하고 한낱 테러단체로 격하시키려는 의도로 이번 제재가 시행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행정·군사·종교·외교 등 국가 체제 전반에 영향력을 갖는다. 국가 최고정책 결정권, 국가정책 집행 감독권, 국민투표 선포권, 군 통수권, 전쟁 선포 및 동원권을 지닌다.
거기에 사법부 수장, 국영 라디오와 TV 방송국장, 합참의장, 이슬람 혁명수비대장, 군사령관 등 임면권을 갖고 있다. 입법·행정·사법부 간 3부 조정권, 대통령 인준권 및 해임권, 사면권 등 막대한 권한을 지니는 데다 그 자체만으로 최고의 종교적 권위를 갖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란 정부 "백악관은 정신적 장애 있다" 맹비난
이렇듯 국체의 중심이 테러리스트로 지명된 이란의 반응은 매우 격하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번 제재에 대해 "백악관은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때 쓰인 '장애'(말루리야트)는 욕설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 단어다.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외교 폐쇄'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그는 "최고 지도자에 대해 쓸모없는 제재를 가하는 것은 외교의 길을 영원히 폐쇄한 것"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하메네이 경제 권력.. 비밀기업 '세타드' 자금줄 정조준
미국은 이미 이란에 대해 원유 수입금지 등 경제 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메네이를 겨냥한 제재까지 추가한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미국이 이란을 굴복시키고 협상장에 나오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메네이의 권력 기반 중 하나는 '세타드'로 알려진 비밀 기업 조직이다. 1979년 이란 혁명 때 버려진 자산들을 관리하며 시작된 이 조직은 이제 한화 100조 원 이상 규모의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타드는 금융·석유·통신 등 이란의 대부분 산업에 관여하며 하메네이의 자금줄이 됐다.
로이터통신은 세타드가 "이란 국민의 부동산을 편법으로 몰수해 재산을 불려왔고, 자산 규모가 이란의 석유 판매액보다 많다"고 추정했다.
혁명수비대 지휘관도 제재 포함.. 권력 기반 고사 목적
또 하메네이가 총사령관을 임명하는 이란의 군대 '혁명수비대'도 경제영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직간접으로 많은 기업체를 운영하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란 최고의 공공개발사업 회사인 '하탐몰안비야(Khatam ol-Anbiya)'도 여기서 운영한다. 혁명수비대의 고위급 지휘관 8명도 이번 추가 제재 명단에 포함됐다.
미국은 이미 세타드와 혁명수비대를 제재 대상에 올려놓은 상태다. 지난 4월에는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이제 이란 권력 상층부의 자금줄을 고사시키려는 모습이다.
반미 선봉 꺾일까? vs 반미 구호로 뭉칠까?
하메네이는 그동안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란을 이끌어온 선봉장이기도 하다.
올해 초 하메네이는 미국을 '1등급 바보'에 비유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이란에 사상 최고의 제재를 했다고 흥겨워하는 미국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맞을 것"이라며 "신의 가호로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미국에 맞서 국민의 단결을 요구했다. 이 같은 호언장담에 미국은 추가 제재로 화답한 셈이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최고 지도자에 대한 제재는 국가에 대한 직접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나아가 "이 같은 조치는 이란 국민의 통합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의 우방인 러시아도 이번 미국의 한 수가 "중동 상황 불안정화는 물론 국제안보 체제 전체의 훼손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의 심장을 겨눈 미국의 전략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 반대로 이란을 '반미' 구호 아래 뭉치게 하는 역효과를 부를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중동 정세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이재희 기자 (lee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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