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활용.. 태양광에너지 사고 파는 泰 쇼핑몰의 '실험'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윤지로 입력 2019. 6. 27. 06:01 수정 2019. 6. 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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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최초 P2P 전력거래.. 방콕 'T77' 지구를 가다 / 재생에너지 프로슈머 시대 / 옥상에 태양광 패널 설치 전력 직접 생산 / 옆 건물들과 온라인으로 에너지 직거래 / 전기 남으면 팔고, 모자라면 구입해 써 / 블록체인으로 안전성 높여 / 유통비 줄여 가격 15% 싸고 공급 안정적 / 남은 전기, 저장소 보관하거나 MEA에 팔아 / 블록체인 연결로 위변조 사실상 불가능 / 첫걸음도 못 뗀 한국 / 美·유럽·中선 전력 거래 시범운영 확산 / 韓, 한전이 독점.. 기술 있는데 기반 없어 / 전문가 "규제 샌드박스 P2P 거래 열어야"
태국 방콕 T77 지구 하비토몰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태국 방콕 중남부에 자리한 ‘T77’ 지구.

관광객과 오토바이, 길거리 음식이 즐비한 방콕의 여느 거리와 달리 조용하고 정돈된 분위기가 흐르는 이곳은 태국 내 외국인 거주자들을 위해 조성된 마을이다.

저마다 현대미를 뽐내는 건물들 한가운데 하비토라는 복합쇼핑센터가 있다. 무심코 들어갔다가는 한층 가벼워진 지갑과 그만큼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나서야 할 것 같은 레스토랑과 유기농 식료품점, 디지털 노마드를 끌어모으는 공유사무실 등 첨단기술이 집약된 이 쇼핑몰의 진짜 특별함은 옥상에 깔린 태양광 패널에 있다.

패널 자체야 새로울 건 없지만, 여기서 만들어진 전력은 블록체인으로 옆 건물들과 P2P(개인대개인)로 거래된다. 아시아 최초, 세계적으로는 최대 규모의 블록체인 전력거래다.

◆전기는 블록체인을 타고

T77의 블록체인 전력거래는 BCPG라고 하는 재생에너지 기업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태국 국영 정유사 BCP 산하 재생에너지 개발사인 이 회사는 원래 대규모로 태양광이나 풍력에너지 단지를 조성해 전기판매사업자(한국전력 격)에게 전기를 파는 일종의 ‘에너지 도매업자’였다. 그런데 2017년 말부터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곳, 즉 가정이나 회사에 전력을 파는 ‘에너지 소매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글로이타 나탈랑 BCPG 선임부사장은 “아직은 블록체인 전력거래로 버는 수익이 없어 일종의 사회적기업처럼 활동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로 인해 에너지 생산자가 곧 소비자인 ‘프로슈머’가 많아지는 사회에서는 소매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사람들끼리 서로 전력을 주고받는다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BCPG는 T77를 조성한 태국 부동산 개발업체 산시리(Sansiri), 호주 블록체인 서비스 업체 파워레저((Power Ledger)와 손잡았다.
방식은 이렇다. 우선, T77에서 실제로 재생에너지 거래에 참여하는 곳은 하비토몰과 방콕국제학교, 파크코트 콘도미니엄(고급 아파트단지), 치과 등 4곳이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에너지 생산·소비 패턴을 보인다. 학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공간이 많아 생산량은 많지만, 방과후나 방학 중에 소비량이 급감한다. 하비토몰은 낮시간에, 아파트단지는 주말에 에너지 사용량이 많다.

이런 특징 때문에 국제학교는 주로 에너지 생산자(414.5㎾), 하비토몰(53.5㎾)과 아파트단지(167㎾)는 프로슈머, 치과는 패널 설치공간이 없어 소비자로 거래에 참여한다. 이 4개 기관은 각자 어떤 값에 전력을 사고팔지 거래 조건을 설정하고, 이들의 에너지 생산·사용정보는 15분마다 ‘블록’이라고 하는 저장소에 담긴다. 생산·사용량과 거래조건이 맞으면 자동으로 전력 거래가 이뤄진다. 4개 기관이 쓰고도 에너지가 남으면 에너지저장장치에 보관하거나 태국 MEA(태국수도배전공사)에 전기를 판다.

블록체인으로 거래되는 재생에너지는 T77 커뮤니티 전체 사용전력의 20%를 차지한다. 오프라인 매장보다 저렴해야 온라인 쇼핑몰 거래가 이뤄지듯, 블록체인의 전력 거래가격은 기존 MEA에서 공급받는 전기보다 싸다. 덕분에 T77 입주자들은 기존 전기료보다 15%를 덜 낸다.
◆왜 블록체인인가

이렇듯 재생에너지 시대에는 에너지원뿐 아니라 전력거래 구조 자체가 변한다.

석탄화력발전이 주력 에너지원이면 커다란 발전소를 지어 한곳에 모아 전력을 배분하는 중앙집중적인 방식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어디든 자리만 있으면 패널을 놓고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는 굳이 큰 회사가 전기를 사서 나눠줄 필요가 없다.

마을 안에서 기른 농작물로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는데 굳이 대형 마트에 작물을 넘긴 다음 다시 사올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재생에너지를 직거래하면 유통비용이 줄어 보다 저렴하게 전기를 쓸 수 있다. 우리집 전기 생산량이 모자라면 이웃의 남는 전기를 가져오면 되니 ‘재생에너지는 전기공급이 불안정하다’는 약점도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P2P 거래는 ‘과연 믿고 거래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온라인 중고거래에서 ‘휴대전화를 샀더니 벽돌이 왔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처럼 개인 간 거래에는 언제나 사기의 덫이 도사린다. 더구나 현대사회에서 공기만큼이나 중요한 게 에너지인 만큼 불신이 자리해선 안 된다. 블록체인이 관심을 끄는 이유다. 블록체인은 시스템에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정보를 동시에 공유하는 게 핵심이다. 금융거래를 예로 들면, 지금까지는 은행이라는 단일 기관이 이중삼중 보안을 걸어놓고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함으로써 안전거래를 담보했다면, 블록체인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은행을 이용하는 모든 이가 모두의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위조 여부를 가리게 된다. 그래서 만일 1000명이 이용하는 블록체인 서비스에서 정보를 위조하려면 적어도 501명(과반)이 갖고 있는 정보를 동시에 조작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특정시간 쌓인 데이터 즉 ‘블록’은 이전 시간 만들어진 블록과 연결(‘체인’)되는데, 그 연결지점은 자물통과 열쇠처럼 서로 정보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 따라서 한 블록의 정보를 임의로 바꾸려면 그 앞뒤로 연결된 모든 블록값을 수정해야 한다. 전 세계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불가능한 작업이다. ‘정보를 한곳에 모으지 않아도 안전한 P2P 거래가 가능하다’는 블록체인의 장점 덕분에 개인 간에도 재생에너지를 직거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재생에너지 10% 넘어가면 한전 독점 어려워”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에서도 최근 블록체인 P2P 전력거래가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 브루클린에서는 50가구의 주민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잉여전력을 블록체인으로 거래한다.

방콕 T77에 블록체인 기술을 제공한 호주 파워레저도 정부의 지원 속에 호주 서부 프리맨틀에서 블록체인 전력거래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난해 세계에너지협의회(WEC)에 따르면 2017년 한 해에만 122개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3억2400만달러(약 3745억원)의 투자를 끌어모았다. 지멘스, 셸, IBM 같은 글로벌 대기업도 속속 이 분야로 뛰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10%를 넘어가면 P2P 거래를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한다. 일부 대형발전소가 아닌 여기저기 설치된 소규모 발전소를 기존의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관리하는 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이미 첫걸음을 뗀 몇몇 동남아 국가보다 못하다. 우리나라는 한전이 전력 판매를 독점하고 있어 개인 간 전력거래를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센터장은 “지난해 말부터 법이 바뀌어 소규모(1㎿급 이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전력을 한전에 판매하는 일종의 브로커 시장이 열렸지만, 여전히 개인 간 전력거래는 할 수 없다”며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처럼 블록체인 서비스도 선점효과가 큰데 우리는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기반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6월 ‘블록체인 기술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지난해 6개, 올해 15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중 블록체인 전력거래도 포함돼있지만 외국에서 진행 중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화석연료로 발전을 하는 우리나라 발전회사들은 재생에너지 사업자들로부터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라는 것을 구매해야 한다. 과기부 시범사업은 이 REC 구매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박호정 고려대 교수(식품자원경제학)는 “원래 블록체인은 탈중심화가 특징이지만, 우리나라는 한전 중심의 플래폼을 가져갈 것인가, 정말 분산화할 것인가가 주된 이슈”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출연 연구기관 관계자는 “규제프리존이나 샌드박스를 통해 현재 법적으로 안 되는 P2P 거래 실증사업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방콕=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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