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황교안은 중도층 마음 얻을 수 있을까

정용인 기자 2019. 6. 16. 09: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 반팔셔츠 안 입는 ‘바른생활맨’ 황교안

정치는 벡터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변화하려는 방향을 보여줘야 한다. 한 지점에 머물면 고인 물이 된다. 주목받지 못하면 밀린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모멘텀이다. 변화를 지속할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인 황교안’의 인생 스토리는 빈약하다. 특이점이 없다. 모범생으로, 주류의 삶을 살아왔다. 정치인 입문 이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위에 잘 꺼내지 않았다. 그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경기고 동창 법조계 인사는 언론 보도 이외의 사생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검사 시절 그를 상관으로 모신 한 변호사는 “한여름에도 그가 반팔 티셔츠 차림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6월 5일 유성호 작가와 함께 펴낸 책 <밤이 깊어 먼 길을 나섰습니다>에 실려 있는 그의 ‘민생투쟁 대장정’ 사진들에도 반팔셔츠 차림은 없다. 덥더라도 긴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입는다. 연출이든 아니든, 수염 기른 얼굴에 탄가루를 묻히고 막장에 들어가며 농촌에서 트랙터를 몰던 ‘만덕산 산신령’ 손학규와는 다른 모습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등 최고위원들이 6월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들어서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정치권에 입문한 황 대표는 ‘변화’를 말하고 있다. 어느 지점에서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2019년 6월 중순 현재, 그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를 달리고 있는 여권의 이낙연 총리와 3~4%포인트 차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표본오차 ±3~4%인 것을 감안하면 오차범위 내에서 우위다. 박신용철 선거 컨설턴트는 “아직 대망론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황교안이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범여권 전체를 더해보면 약 45%로 범야권의 27%를 앞선다. 보수가 황교안으로 결집되고 있기는 한데, 총선 이후까지를 염두에 둔다면 대망론을 뒷받침할 보수 내 경쟁자가 둘셋 정도는 더 나와야 한다.”

당대표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두고 6월 5일 국회 사랑채에서 연 ‘황교안×2040 미래찾기’ 행사나 최근 펴낸 <밤이 깊어…>, 나아가 지난해 8월 출간한 <황교안의 답>까지 그가 설정한 변화의 방향 내지 타깃은 명확하다. 젊은 층이다. 그의 ‘인생 스토리’를 보면 의외인 면이 없는 건 아니다. <밤이 깊어…> 뒤표지에는 색소폰과 테니스 라켓의 일러스트가 등장한다. 막상 이번 책엔 언급되지 않은 그의 취미다.

색소폰은 2003년, 그가 부산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로 재직할 당시부터 시작했다. 검찰 식구들과 해운대 달맞이고개의 카페에 놀러갔다 색소폰 연주를 들었다. 그에게 “황 차장, 우리 한 번 색소폰 불어볼까”라고 제의한 사람은 박영수 당시 동부지청장이었다. 13년 후, 두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정농단의혹 특별수사팀 특별검사로 다시 등장한다.

황 대표의 음악적 소양은 뿌리가 깊다.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 <오솔길>은 가수 정미조가 불러 TV 방송 전파를 탔다. 중학교 때는 선생님으로부터 ‘톱 연주’를 배워 가수 서유석씨가 진행하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 출연하기도 했다. 유튜브 등엔 그의 부인 최지영씨를 ‘CCM 가수’로 소개하는 영상이 많다. 최씨가 부른 ‘위대한 유산’이라는 복음성가 영상이 여럿 올라와 있다. 황 대표는 <황교안의 답>에서 “장인·장모께 드리기 위해 노래방에서 녹음하려 했는데, 음질이 나빠 방연섭 선생 도움으로 정식 레코딩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씨의 본업은 나사렛대 상담센터 전임교수다. 지난 2월 15일, 최씨는 우파 유튜버 신해식씨가 진행하는 <신의 한수>에 출연, 자신이 “<신의 한수> 애독자”라고 소개하며 “애국 우파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테니스 역시 오랜 취미다. 마지막 검사 경력인 대구고검장 시절(2009년) 지역 유지들과 ‘목야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밤마다 테니스를 쳤다. 그는 검찰 내 테니스 모임 ‘프로테(prosecutor Tennis)’ 회장도 맡았다. <테니스피플> 2012년 보도를 보면 그는 프로테와 함께 서울 테니스 로타리 클럽 회장을 맡았으며, 강남테니스회, 일요테니스클럽 등에서 활동했다고 밝히고 있다.

앞서 <밤이 깊어…>는 5월 7일부터 24일까지 18일간의 ‘민생투쟁 대장정’ 기록이다. 책에 따르면 그는 부산 자갈치시장 출정식 기자회견 후 눈물을 흘렸다. 그에게 당부하는 시민들의 말을 들으면서 흘린 눈물이다. 눈물의 의미를 묻는 비서실장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요.” 대장정에서 그는 ‘폭정’을 거론했다. 서민들이 쏟아놓는 분노와 불안은 하나의 대상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독재.’ 책 제목에서 ‘밤이 깊다’는 것은 독재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이다. ‘먼 길을 나섰다’는 것은 그 독재정권의 대체세력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레토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나설까.

■ 의외의 취미, 색소폰과 테니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당대표 취임 100일을 맞아 출간한 <밤이 깊어 먼 길을 나섰습니다>의 표지. / 인벤션

“소셜미디어(SNS)에서 자유한국당 언급량이 민주당에 비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내용을 뜯어보면 막말 때문에 생긴 ‘버즈(buzz)’다.” 정치 컨설턴트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의 진단이다. “자유한국당은 착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엄중한 것은 사실이다. 청년들의 미래도 암울하다. 이 사람들은 현실정치로부터 회피 내지는 도피를 하고 있다. 그들을 사로잡을 가치와 의제를 재설정하지 않고 마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 대표는 “‘건강한 내지는 합리적인 보수’ 이미지를 얻으려면 탄핵을 불러온 박근혜 대통령 통치 시기에 대한 분명한 반성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현재 황교안 대표·나경원 원내대표 체제는 반성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단은 집토끼를 결집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행보를 취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모습만 놓고 평가하면 중도세력이 마음을 주기엔 과거에 대한 반성은 물론 내놓는 말도 너무 거칠고 대안도 없어 보인다.”

김현성 상지대 외래교수의 평가도 비슷하다. 그는 “황 대표는 역대 총리나 관료 출신의 보수후보 중에서는 상당히 일관된 신념이나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번에 낸 책도 실물사진을 쓰지 않고 캐리커처를 쓴다든지, ‘PI(President Identity) 전략’도 일부러 핑크색 콘셉트로 가는 등 승부처를 젊은 층으로 보고 타기팅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황 대표의 ‘신념’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기독교 신자인 황 대표의 종교관이 근본주의가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즉, 그의 신념이 자신의 행동이 하늘의 뜻인 것처럼 생각하는, 일종의 교회적 소명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시사저널>은 최근 보도에서 그가 총리 시절인 2015년 가뭄에 대해 한 교회 집회에 참석해 자신과 자신이 다니던 교회 성도들의 기도 덕분에 “2주 만에 비가 왔다”고 간증한 것을 문제 삼았다. 공직자 시절 경험마저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 시절 그의 업적으로 거론하는 ‘통진당 해산 청구’를 두고 그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변화의 방향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모멘텀, 실제 변화를 추진할 능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을 두고 6월 9일 “불쏘시개 지펴 집구석 부엌 아궁이 있는대로 달궈놓고는 천렵질에 정신 팔린 사람마냥 나 홀로 냇가에 몸 담그러 떠난 격”이라는 논평을 냈다. ‘천렵질’ 논평 이틀 뒤엔 개인 페이스북에 “나도 피오르 관광하고 싶다”고도 적었다. 막말이다. 대표적인 당내 친박계 인사인 홍문종 의원은 6월 11일 탈당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13일에는 “이미 탈당선언은 한 셈이며 40~50명 의원이 동조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다시 주목되는 것은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이다. ‘잡음’을 불식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 대변인의 막말 논란과 관련, 황 대표는 6월 11일 “막말이라는 말이 막말”이라고 응수했다.

“통제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전략적으로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막말구도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말려들어가고 있다.”

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의 말이다. 최 원장의 해석에 따르면 새로 구축된 ‘친황 체제’의 핵심 인사인 민경욱 대변인의 발언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강구도 구축을 목표로 한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막말 경쟁을 통해서 반정치를 부추기고 정치혐오를 조장한다. 최종 목표는 투표율을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국회에 안 들어가는 것도 의도적이다. 보수정당으로서는 오랜 전략이다.”

최 원장에 따르면 비교적 높은 투표율이 나오는 대선과 달리 총선 득표율은 50%대에 머무른다. “2016년 총선의 경우 투표율이 58%였다. 당시 선거 결과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제3당에 대한 지지다. 국민의당은 수도권 122개 선거구에서 101곳에 후보를 냈다. 국민의당 평균 득표율이 18.1%였는데, 당선된 사람은 안철수와 김성식 두 사람뿐이었다. 그렇다면 국민의당 지지는 어느 쪽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답은 새누리당이었다. 한국 총선에서 제3당이 파고드는 곳은 약한 고리다. 지난 총선에서 그 약한 고리는 보수였다.”

최 원장은 자유한국당의 의도대로 양강구도로 될 때, 내년 총선 투표율은 50% 미만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지층만 투표장에 나오는 선거면 황교안의 압승이다. 대선에서 홍준표와 유승민을 지지했던 표를 합치면 30% 조금 넘는다. 그 지지율은 무조건 나오는 표다. 내년 총선에서 그 지지세가 그대로 투표장으로 나오면 자유한국당은 수도권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1등을 한다. 그걸 노리고 막말 전략을 펴는 것이다.”

■ 의원들 이탈, 통제할 수 있을까

정치평론가 이강윤씨는 “내년 총선의 타이밍이 집권층에는 굉장히 안 좋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렇게 진단한다.

“경제에는 후행효과라는 것이 있다. 지금 당장 추경 9조원을 풀어도 표가 안 나온다. 누가 집권하든 앞으로 고용문제는 못푼다. 우리 산업구조가 그렇다. 그렇다고 현 집권층에 실망한 20~30대가 내년 총선에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나와 민주당 심판, 즉 자유한국당을 찍을까. 나는 그렇게 안 본다. 그들에게 정치는 무관심과 염증의 대상이다. 사실 젊은 친구들이 이 정부에 대해 호의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지거나 수구보수세력이 정말 나라를 말아먹을 만큼 큰 돌발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한.”

젊은 층이 돌아선 민주당 역시 반사이익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의 행보를 주목하는 것은 그래서다. 이강윤 평론가는 “악질 강성으로 분류되는 당내 극우 수구세력들을 과감히 쳐내면 된다. 칼은 이미 주어졌다. 공천까지 갈 것도 없이 적당한 때에 당규 위반, 품위 유지 위반으로 윤리위를 소집해 처리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막말은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만 명확히 하면 중도층 외연확장은 충분히 가능하다. 황 대표는 목소리나 외모로도 점수를 받고 있지만 공안검사 출신에, 원칙대로 한다는 이미지도 안정적 지지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솔직히 박근혜·최순실 사태 때 향후 20년 동안 수구보수는 궤멸했다고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게 불과 2년 전 겨울이다. 황교안에 대한 지지가 벌써 27% 가까이 결집했다는 것은 보수 정체성을 가진 지지자들도 그만큼 쉽게 안 바뀐다는 뜻이다.”

여기서 황 대표가 극우보수와 선을 명확히 긋고 쾌도난마의 행보를 선택한다면 외연확장은 가능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과연 황교안 대표는 그런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강윤 평론가의 말이다. “요즘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불공정과 권위주의다. 경기고 출신에 검사생활 30년,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다. 권위주의가 인이 박힌 사람이다. 검사는 초임시절부터 영감님 소리를 듣는다. 부장검사만 돼도 ‘총장님, 총장님’하는 아부꾼에 둘러싸여 권위를 안가질 수 없다. 단기간에 그걸 빼긴 어렵다. 의전 논란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촛불 국면 때를 돌이켜보면 당시 유력 차기 주자였던 문재인 전대표의 입장은 박대통령의 2선후퇴였다. 어정쩡했다. 무조건 구속을 주장했던 이재명 시장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의 가장 큰 매력은 진정성과 탈권위주의였다. 황교안에게 그런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