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대묘 깊이보기 2 - 수목도

임기환 2019. 6. 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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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명장면-73] 산악은 산악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산악에는 나무가 숲을 이루기 마련이다. 거대한 암반이나 기괴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일지라도 나무가 드문드문 곁들여지지 않으면 멋진 풍광이 되지 못한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면 암산과 토산이 좌우로 나뉘어 태극의 형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왼쪽의 토산은 산봉우리마다 가득이 나무 숲을 표현하였으며, 오른쪽의 암산에서는 솟구치는 봉우리 곳곳에 나무와 작은 숲을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다. 금강의 아름다움은 이렇듯 나무와 숲을 입혀야 비로소 완성된다.

지난 회에서 산악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는데, 사실 산과 나무는 고구려 벽화 내에서도 함께 또는 따로 표현되는 주요한 재재였다. 강서대묘 천장에 그려진 산악도 중의 하나에는 산악의 형상만이 아니라, 오른쪽 산봉우리 기슭에 산봉우리 높이만큼 키가 큰 나무 숲을 그려놓았다. 녹색 잎이 무성한 소나무처럼 보이는 나무들인데, 조선시대 왕권의 상징물인 일월오악도의 좌우에서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우주목을 연상시키고 있다.

1.강서대묘 산악수목도

강서대묘 산악수목도

산봉우리와 나무의 크기 비례를 염두에 두면 매우 비현실적이지만, 나무 자체의 묘사는 사실적인 표현으로 아마 사생(寫生)의 결과인 듯하다. 즉 강서대묘의 산악과 수목의 표현은 사실적이지만 그것이 보여주는 세계는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이 산악수목도가 현실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천장 벽화의 선인상, 비천상과 마찬가지로 하늘세계나 이상세계를 그려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내리1호분 산악과 수목도

내리 1호분 산악도

이런 산악과 수목의 묘사는 6세기 후반~7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내리1호분 산악도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천장부 1층 평행고임돌 동북벽과 서북벽이 이어지는 모서리 양면에 걸쳐 그려진 산악도는 한가운데 3산 형태의 산악을 배치하고 능선 기슭에 암산형 산봉우리와 수목을 그렸다. 나무의 경우 다소 도안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나무 밑둥에서 굵은 줄기가 위로 가면서 두세 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여러 갈래 나뉜 작은 가지 끝에 잎이 무성한 소나무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이 강서대묘의 산악수목도와 매우 흡사하다.

다만 강서대묘의 산악수목도가 훨씬 사실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내리1호분보다 좀 더 발전한 회화적 기법을 구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산악수목도 모두 다른 주제의 배경이 아니라 독립된 재재로서 한 폭의 산수화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러한 두 수목도 이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나무 그림은 어떠하였을까?

우선 가장 이른 시기인 5세기 전반 무렵에 축조된 무용총과 각저총의 나무 그림을 살펴보자. 무용총 수렵도 화면의 오른쪽, 즉 무사들이 말을 달려가는 방향으로 커다란 나무가 꼿꼿하게 서 있다. 굵은 나무줄기가 똑바로 위로 자라다가 줄기 윗부분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고 또 나뉘면서 풍성하게 펼쳐지고, 아래 밑둥에서부터 좌우로 갈래갈래 갈라져 나온 가지들과 한껏 어우러진다. 가지 끝에 달린 연녹색 잎이 마치 꽃망울처럼 탐스럽다. 이 나무 그림은 수렵도의 배경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이 나무 그림으로 인하여 왼쪽의 산야에서 펼쳐지는 수렵 장면이 더욱 생동감 넘치게 느껴진다.

3.무용총 수렵도 나무 그림

무용총 수렵도와 나무그림

각저총 씨름도 왼쪽에 있는 나무 그림도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가지 끝에 푸른색 잎 덩어리가 하나씩 매달려 있는 모습이 무용총의 나무와 매우 비슷하다. 그런데 무용총 나무와는 달리 오른쪽 씨름하는 무사들의 머리 위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어, 마치 씨름이 나무 아래에서 펼쳐지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리고 나무에 검은색 새 네 마리가 길게 목을 빼고 지저귀는 모습을 그려 씨름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4.각저총 수목도

각저총 씨름도와 나무그림

이 나무 그림은 씨름도의 배경 구실을 하고 있지만,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씨름하는 장면에서 왼쪽의 나무가 없다면 화면은 매우 밋밋하고 씨름하는 역사들의 동작도 그 힘찬 느낌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나무 그림을 가리고 한번 보시라, 어떤 느낌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서 율동감 넘치는 나무로 인해 씨름 장면 전체에 역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무용총 수렵도와 각저총 씨름도에 보이는 이들 나무 그림은 비록 한 그루이지만 화면에서 결코 적지 않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나무가 독립된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아니며, 단순히 배경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두 나무 그림 모두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율동감을 갖고 있어, 이 나무 그림으로 인해 수렵도와 씨름도가 생동감을 갖게 된다. 또한 나무의 좌우에 서로 다른 재재가 그려지고 있어 자연스레 화면을 분할해주는 역할도 한다.

5.장천1호분 백희기악도

장천1호분 백희기악도

이보다 다소 뒷 시기에 축조된 장천 1호분에는 이와 다른 이미지의 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 귀족들의 갖가지 놀이와 즐거움을 표현한 벽화 장면의 한가운데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벗어나 있는 위치에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서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무용총이나 각저총과는 달리 밑둥에서부터 아무런 잔가지 없이 위로 쭉 뻗어올라간 굵은 줄기의 위끝에만 좌우 대칭 형태로 가지들이 뻗어 나가고 있다. 가운데 줄기 맨윗단은 가지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교차되는 모습으로 그려져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6.장천1호분 하단 나무 그림

장천1호분 하단 나무 그림

화면의 왼쪽 아래 구석에도 나무 한 그루가 작은 동산 위에 서 있는데, 가운데 굵은 줄기 중간부터 길게 뻗어나간 가지들이 마치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듯이 오른쪽으로 뻗어가며 율동감을 잔뜩 안고 있다. 가지 끝에는 연녹색의 둥근 잎이 달려 있는데, 무용총이나 각저총의 나무 그림과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이 나무 오른쪽에는 힘차게 질주하는 무사와 사슴들이 그려진 수렵도가 있어, 이 나무 그림이 일종의 배경이 되고 있다.

7.장천1호분 상단 나무 그림

장천1호분 상단 나무 그림

여기 전체 화면에서는 앞서 본 나무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더욱 나무 오른편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들고 있고, 나무 줄기가 울퉁불퉁하게 표현되어 사실적인 느낌을 주고 있어, 귀족들이 즐기고 있는 현실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그런데 나무 왼쪽에는 무덤 주인공인 듯한 인물이 나무를 향한 자세로 자리 잡고 있고, 나무 오른쪽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무인지 주인공인지를 향해 무릎을 꿇거나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나무를 가운데 놓고 주인공 인물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 모습으로 처리된 이 화면에서 나무는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나무가 신성한 성격을 갖는 존재로 그려진 것인지 여부는 충분히 확인되지 않지만, 나무의 크기나 우뚝 선 모습이 시각적으로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위상을 부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무용총이나 각저총의 나무 그림과 비교할 때 그 형상이나 표현 기법뿐만 아니라 화면상에서 나무가 차지하는 비중과 성격도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6세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나무 그림은 그 자체가 독립된 재개가 될 뿐만 아니라 사실적 묘사 등 표현 기법 등에서 상당히 진전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평양 동명왕릉 주변에 위치한 진파리1호분의 널방 북벽에 그려진 나무 그림이 대표적이다.

8.진파리 제1호분 북벽 수목도2

진파리 1호분 북벽 현무와 수목도2

화면에서 나무는 현무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대칭을 이루듯 두 그루씩 자리 잡았다. 그런데 두 나무가 아주 가까이 있으며 좌우로 나누어 가지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실상은 한 그루의 모습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게 표현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몰골법으로 처리된 나무 줄기는 살짝 휘어지면서 멋을 부리고, 부채살처럼 펼쳐진 잔가지 끝에 달린 푸른 잎은 풍성하게 흐드러져 있다.

조선시대 소나무 그림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줄기와 가지, 잎의 표현이 무척 세련되었다. 북벽 전체 화면에서는 가운데 현무를 보위하는 구성이지만,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소나무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아도 충분하다. 동시에 좌우 소나무와 현무가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아마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산수풍경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6세기 후반에서 7세기로 넘어가면서 고구려 벽화에서 사실적 표현이 풍부해진다. 여기서 '사실적 표현'이란 관찰을 통한 현실세계에 대한 묘사력이 높아진다는 뜻만이 아니라 비록 상상의 세계라도 그 대상의 구체성에 대한 표현이 풍부해진다는 뜻이다. 이는 사생(寫生) 등 회화적 기법의 발달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 및 사유와 연관될 것이다. 이 무렵 고구려 사회에서 세계관이나 사생관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알기 어렵다.

필자는 이 진파리 4호분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문득 조선시대 일월오봉도를 떠올렸다. 일월오봉도는 하늘에 해와 달을 두고, 암괴가 층층이 쌓인 다섯 봉우리가 산악을 이루고 그 좌우로 붉은 줄기에 푸른 잎이 가득한 소나무가 좌우 2그루씩 대칭을 이루며 굳건하게 서 있다. 소나무 그림은 사실적이지만 정적인 자태로서, 전체 화면에서 하단에 일렁거리는 파도를 제외한다면 매우 정적인 구도와 표현이다.

9.일월오봉도

조선시대 일월오봉도

진파리 2호분 북벽 현무수목도의 하늘세계에서는 구름인지 기운인지가 오른쪽으로 힘차게 휘몰아 흐르고 그 사이를 연꽃 등이 흩날리고 있다. 좌우의 소나무 역시 이런 바람 기운에 흔들리는 율동감이 가득하다. 화면 전체에 역동성과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아마 이렇게 역동적인 표현은 동시대 어디 그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조선시대 일월오봉도와 이 현무수목도는 우선 정적 분위기인지, 동적 분위기인지부터 다르다. 하지만 두 그림 사이에는 좌우에 두 그루 소나무가 마치 우주목처럼 땅과 하늘세계를 연결하는 구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이 양자를 과연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두 그림 사이에 비록 1000여 년 시간의 격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땅에서 여기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 면면이 흐르는 어떤 문화적 맥락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큰 시간적 차이를 두고 이어지는 문화 전통을 발견하는 것이 역사 탐구 또 다른 매력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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