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표지석] <38>한성전보총국(漢城電報總局)터

김정욱 기자 2019. 6. 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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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전신 도입 기관인 한성전보총국 터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다.

고종 22년인 1885년 청나라와 체결한 조청전선조약에 따라 한성전보총국이 세워졌다.

이후 평양·의주와도 전선이 연결돼 해당 지역에도 분국이 생겼고 한성전보총국은 이를 총괄했다.

전신 도입 기관을 세울 무렵 조선 정부는 인천~서울~평양~의주 구간에 대한 장거리 전선 연결 공사에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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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는 한성전보총국터.
[서울경제]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 도입 기관인 한성전보총국 터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다.

고종 22년인 1885년 청나라와 체결한 조청전선조약에 따라 한성전보총국이 세워졌다. 당시 전신시설은 청나라의 기기와 장비 등에 의해 가설돼 관련 기술자들도 대부분 청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최초의 전신은 서울~인천에 개통됐고 인천에는 분국이 설립됐다. 이후 평양·의주와도 전선이 연결돼 해당 지역에도 분국이 생겼고 한성전보총국은 이를 총괄했다.

전신 도입 기관을 세울 무렵 조선 정부는 인천~서울~평양~의주 구간에 대한 장거리 전선 연결 공사에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기도 했다. 또 청나라는 전선 연결 사업이 끝난 후 유지비를 수탈했고 이 과정에서 조선 농민을 대상으로 한 착취와 횡포도 심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전보국을 없애야 한다”며 강한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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