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현장 보면 '타살'인데..검안 과정서 '스스로 극단적 선택' 드러나기도 [서중석의 법의학 이야기-침묵 속의 진실을 찾아서]

서중석 2019. 6. 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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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자의’와 ‘타의’ 까다로운 규명

변사사건 현장에서 사인을 규명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현장은 타살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로는 아닌 경우도 있다. 특히 질식사의 경우가 그렇다.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기 위한 문구가 적혀 있다. 정지윤 기자

단순한 변사라고 여겼던 죽음이 경찰 검시관, 과학수사요원들의 철저한 현장조사와 법의관들의 세밀한 법의 감정을 통해 타살로 확인되는 경우가 있다. 나아가 범인까지 체포하게 되면 대다수 시민들은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정의가 실현됐다며 환호한다. 다른 경우도 있다. 타살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 사건인데 법의학 전문가 등의 조사결과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난 때다. 이런 경우 대부분 조용하게 마무리돼 국민이나 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억울하게 의심을 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한 점, 국가적으로 볼 때 수사력의 낭비를 막았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2000년대 미혼 여성 자택서 숨져 발견 당시 열쇠·월급 등 행방 묘연 수사 초기 ‘살해 가능성’에 무게

2000년대 중반, 수도권의 한 오피스텔에서 혼자 거주해온 미혼 여성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직장 여성인 그가 이틀 동안 연락이 되지 않고, 직장에도 출근하지 않자 남자 친구가 사고 현장을 찾은 것이다. 남자 친구의 신고로 경찰관들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녀는 청바지와 블라우스를 입은 채 방에 반듯하게 누워 사망한 상태였다. 방에는 옷가지, 가재도구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목에는 끈 자국이 있고 시신 옆에는 허리띠가 놓여 있었다.

현장 상황을 보면, 누군가 허리띠로 피해자의 목을 졸라 타살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사기관은 감식요원들을 신속하게 투입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도 법의관들이 현장에 올 수 있는지 물어왔다. 필자를 포함한 우리는 현장으로 급히 갔다. 현장에 도착하니 증거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변이 통제됐고,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감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감식이 워낙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진행되고 있었기에 우리는 밖에서 대기했다. 그사이 이틀 전에 사망한 것이며, 사건 현장에서 오피스텔 열쇠가 보이지 않고, 숨지기 전날 월급을 받았는데 사라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우리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시신을 볼 수 있었다.

당시 대전 지역에서의 현장검안은 감식에 앞서 법의관들에게 가장 먼저 사후 경과시간을 추정할 수 있도록 시신과의 접촉을 허용하는 매뉴얼이 있었다. 따라서 법의관은 과학수사요원들과 함께 의복을 벗겨 손상을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현장상황도 함께 점검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수도권 지역에서는 국과수의 검안이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였다. 일반 검안의는 시신을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영안실로 옮긴 후에야 검시하는 상황이었다. 이 사건도 타살이라 생각해 철저한 현장 보존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아주 제한된 외표 검사만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목 앞부위에서 끈자국(삭흔) 일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인을 경부압박질사(목졸림 질식사)로 잠정 판단했다. 그러나 목을 맨 것인지, 목을 졸린 것인지에 대한 감별까지는 하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야 했다.

부검 결과 저항 흔적 등 없어 의심 사건 장소 재조사서 새 증거 수집 결국 ‘직접 목매 사망’으로 확인

다음날 정식으로 부검이 의뢰됐다. 외표 검사상 목에서 끈 자국을 볼 수 있는 것 외에 특기할 만한 것은 없었다. 끈 자국은 뒤통수를 향하여 비스듬하게 형성됐고, 형태로 봐서 변사자 바로 옆에서 발견된 허리띠 모양을 그대로 본뜬 압박흔이었다. 목을 절개하니 출혈, 골절은 물론 빗장뼈 부위의 억압손상이나 저항손상 등도 보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부검 소견은 목맴에 합당했고, 타살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다시 현장을 방문했다. 다행히 우리가 확인하고자 하는 증거들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돼 있었다. 우선 목을 매는 데 사용했던 허리띠는 버클 이음 부분이 파손된 상태였다. 목을 매고 사망에 이른 후에 축 처진 시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버클 이음 부분이 파손된 것이다. 아울러 혁대 구멍 중 힘을 받아 심하게 우그러진 부위도 확인했다. 통상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허리띠를 꽉 매지 않을뿐더러 우그러진 부위는 최근 변형된 것으로, 변사자의 허리둘레와 비교할 때 허리띠를 착용하면서 평소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즉 허리띠를 매단 지점(현수지점)에 걸기 위해 혁대 구멍에 버클 핀을 고정한 것으로 판단됐다. 현수지점을 찾는 것도 중요했다. 목을 매는 장소가 비교적 높은 곳일 경우는 딛고 올라서기 위해 보조물을 이용한다. 법의관은 목을 맨 곳이 불분명할 때 보조물이 존재하는 곳부터 살펴본다. 이 사건 현장은 보조물이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목을 맬 가능성이 있는 장롱을 먼저 조사했다. 그런데 장롱 위의 모서리 부분은 이미 파손된 상태였는데, 최근 망가진 양상이었다. 아마 최초의 목맴 시도에서 이곳을 이용하려 한 듯했다.

현장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니 닫힌 벽장 문틈 사이에 옷가지가 끼여 있었다. 벽장 손잡이에는 흰옷이 걸려 있었는데 그 옷에는 자유낙하 형태의 혈성액이 묻어 있었다. 문에서도 혈성액이 보였다. 벽장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내부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특히 벽장문 윗부분의 모서리에 반짝거리는 미세한 이물질이 묻어 있었다. 확대경으로 보니 허리띠 표면과 같은 형태의 물질이어서 채취, 미세증거물 분석을 의뢰했다. 벽장문을 열어둔 채 허리띠로 목을 맨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이었다. 변사자가 누워 있던 주변에 옷 등이 많이 흐트러져 있으나 전기청소기 등은 넘어지지 않은 채 잘 세워져 있었다. 타살 때 저항하면서 여러 물건이 넘어진 형상은 볼 수 없었다.

필자는 이 모든 자료를 근거로 현장을 재구성해 보기로 했다. 당시 교통공학과 박성지 박사는 ‘마디모 프로그램’을 운영, 강력사건은 물론 교통사고에 대한 물리학적 재구성을 하는 감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벽장문에 허리띠를 이용해 목을 맸다가 변사자의 몸무게 때문에 허리띠가 파손돼 시신이 방바닥으로 나뒹굴고, 이때 사후 머리뼈 골절이 발생했으며, 동시에 벽장문도 닫히면서 허리띠가 시신 옆에 놓일 수 있는 상황을 마디모 프로그램으로 정확히 재현했다. 한편 그녀가 입고 있었던 옷은 평소 가장 아끼던 것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밀수색 결과 열쇠도 실내에서 찾았고, 현금으로 받은 월급은 통장에 잘 입금돼 있었다. 이처럼 추가로 조사된 사건 현장의 모든 증거는 타살이 아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남자 친구와의 갈등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살인사건의 현장검증 장면.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현장에는 이처럼 많은 정답이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간과하거나 읽어내지 못할 뿐이다. 이 사건의 경우 당시 대전 지역에서처럼 법의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검안을 할 수 있었다면 더 일찍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법의학에서 질식사는 외인사에서 흔히 보는 사인 중 하나다. 2017년 국과수 발표에 의하면, 총 부검 8777건 가운데 질식사는 689명이었고, 이 중 목졸림 질식사가 538명으로 약 78%였다. 목졸림 질식사 중에는 목맴이 446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끈 졸림사(교사) 53명, 손 졸림사(액사) 36명의 순이었다. 또 모든 부검 사례 중 극단적 선택은 1316명인데 이 중 목맴 사망이 446명이다. 사망자의 3분의 1이 목을 맨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 타살이 아닌 것이 확실시되면 아예 부검을 의뢰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이 통계가 완벽한 대표성을 갖는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목맴이 우리나라 부검실에서 병사(내인성 급사) 다음으로 많은 사망의 형태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법의학 현장에서 보는 질식사는 사실 간단하지 않다. 목을 매고 사망한 경우 발견자가 신고 전후에 대개 사용된 끈을 자르거나 변사자를 끈으로부터 분리시켜 바닥에 누이면서 사건 현장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인, 사망의 종류에 대한 해석이 어려워진다. 유족으로부터 타살당했을 가능성을 조사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받기도 한다. 유서가 없으면 더하다. 그뿐만 아니다. 목을 맬 때 변사자의 몸의 일부 혹은 상당 부분이 바닥에 닿게 되면 체중 일부만 작용해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유가족이 “이런 자세로는 스스로 죽을 수 없다”며 항의하는 사례도 많다. 그런데 목맴의 경우 기도가 막혀 질식하는 것이 아니라 끈에 의해 경부혈관이 폐쇄되고 결국 뇌에 저산소증 상태가 되면서 짧은 시간 내에 의식을 잃고 호흡중추가 마비되면서 사망에 이른다. 즉 일단 목을 매게 되는 순간 곧이어 의식 소실이 오면서 치명적 상황에 돌입한다. 보험문제가 있는 경우 심지어 끈을 숨기는 등 병사한 것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법의학 현장에서는 목을 매고 사망하는 목맴(의사)과 끈으로 목을 조르는 끈 졸림사(교사)를 감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목에 난 끈 자국이 어느 한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진행하는가 아니면 평행하게 진행하는가다. 여기에 사용된 끈, 발견된 상태, 특히 부검을 통해 종합적으로 파악해 의사와 교사를 감별한다. 물론 전문가의 분석을 사회적으로 적극 수용하는 분위기도 중요하다.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기본원칙의 중요함이 확인된다. 복잡한 변사 사건인 경우 반드시 법의관이 현장을 방문해 검안해야 하고, 현장에서는 시신을 철저하게 관찰한 후 법의학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안 행위는 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고 대충 하면 반드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많은 지역에서 경찰 공의들은 주로 영안실에서 검안을 시행하기 때문에 대부분 죽음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법의관은 사망력을 추정해 낼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사고 현장에서의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성범죄의 경우 현장에서 증거물 확보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법의관은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 세심한 현장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법의관 현장 조사 인력 절대 부족 1차 검시 때 협업 여전히 어려워 현장 방문 제도화 등 시스템 필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변사 현장에서의 검시 상황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국과수 법의관들의 절대적인 인력 부족으로 법의학을 제대로 전공하지 않은 공의와 경찰 검시관, 과학수사요원들에 의한 1차 현장 검시가 이뤄지고 있다. 필자는 타살이 의심되거나 사회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큰 사건의 경우,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법의관에게 현장방문을 의뢰하고 협업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줄 것을 계속 제안하고 있다.

최근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뉴스가 쏟아지는데,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 있는 사체가 있는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222조의 검시에 관한 내용이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된다.

■ 필자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중앙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으로 국과수에 들어간 뒤 법의학부 부장, 원장 등으로 25여 년을 국과수에서 지냈다. 대한법의학회장·아시아법과학회 회장, 중앙대의대 겸임교수, 경찰대 외래교수, 대전보건대 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장 및 성균관대 교수로 검안, 부검과 강의활동 등을 통해 법의학 발전에 역할을 하고 있다.』

서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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