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타타라타] 91년생 김아영은 울보 탁구코치

# 인간은 감정에 의해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다른 동물은 소리나 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눈물이라는 생체작용을 더 이용하는 것이다. 생화학자인 윌리엄 프레이의 연구에 의하면 자극물(양파)로 인한 눈물과 감정으로 인한 눈물은 다르다. 후자의 경우 단백질 농도가 24% 더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감정팔이’라고 못되게 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눈물의 미학이 지극히 인간적인 것만은 확실하다.
# 생뚱맞게 눈물 이야기를 한 것은 지방도시에서 탁구를 가르치는 20대 여자 코치(김아영)가 얼굴도 모르는 기자와 전화인터뷰를 하면서 두 번이나 울었기 때문이다.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상황. 낮에 좋은 성적을 냈고, 늦은 밤 지인들과 즐겁게 맥주를 먹다가 한 인터뷰였다. 그것도 30분 넘게 이것저것 나름 기분 좋게 얘기하다가 나온 ‘갑툭튀’ 울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인터뷰의 계기도 특이했다. 전날 김 코치의 대성여중에게 패한 팀의 지도자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우리가 졌는데 기분이 아주 좋아요. 대성여중과 김아영 코치 이야기는 꼭 좀 기사로 써주세요.”
# 팩트는 간단하다. ‘어려운 환경에서 딴 소년체전 은메달’이다. 청주 대성여중은 지난 27일 군산에서 열린 제48회 전국소년체육대회 탁구 여중부 단체전에서 울산화엄중에게 게임스코어 1-4로 져 2위를 차지했다. 은메달인데도, 체육관의 탁구인들은 대성여중 선수들과 김아영 코치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또 축하를 받을 때마다 김 코치와 선수들이 울먹였다. 이런 분위기는 대성여중이 8강에서 경북선발을 이기고, 전날 강호 문성중(서울)을 4-3으로 이기면서 시작됐다. 대회 최대 이슈였던 것이다.
![지난 27일 소년체전 탁구 여중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대성여중 선수들. 맨 왼쪽이 김아영 코치. [사진=월간탁구/더핑퐁]](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5/31/ned/20190531045953295ikvn.jpg)
# 대성여중-대성여상을 졸업하고, 실업과 대학에서 선수생활을 한 김 코치는 2016년 초 사석에서 “니네 학교가 전국 최약체야. 심각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선수 은퇴 후 분당지역에서 생활체육 레슨으로 돈도 제법 벌고, 살 만했던 김아영은 오기가 발동했다. ‘모교에 가서 후배들을 가르치자’라고. 수소문을 하니 마침 탁구부에 문제가 생겨 코치를 새로 뽑는다고 해서 그해 3월 새 학기 시작과 함께 모교로 내려왔다. 그런데 놀라고 말았다. “학교에 왔는데 선수가 딱 2명이었요. 전임 코치가 관두면서 선수들을 죄다 다른 학교들로 전학시킨 것이었죠. 정말 황당했어요.” 전국 꼴찌라는 것은 알았지만, 가르칠 선수가 부족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남아 있는 2명의 경기력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 이쯤이면 대회에 나가지 말아야 하는데, 학교와 충북체육회는 “성적이 나지 않아도 좋으니 선수들을 꾸려 대회는 다 출전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하면 팀은 해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팀 해체는 막아야 하니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힘들었다. 김 코치도 초보 지도자인데, 선수는 실력이 떨어지는 두 명뿐. 코치까지 셋, 혹은 사정이 생기면 선수와 코치 둘이 연습을 했다. 연습상대가 없으니 한 명을 데리고 다른 학교에 사정해 훈련하러 다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년체전에 나가라고 해서 스포츠클럽에서 취미로 탁구를 치는 일반학생 4명을 데려와 대회에 나갔다. 경기는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지경이었다. 11-1, 11-2가 보통이었다. 득점도 상대선수가 민망해서 부러 실수를 해준 경우들이었다. 보다 못한 심판들이 “니네 탁구 한 지 얼마나 됐니?”라고 물을 정도였다.
# 김아영 코치는 대회장에 가는 것이 고역이었다. 이때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해서 울었다. 그만두던지, 아니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후자를 택했다. 2016년은 틈이 나는 대로 초등학교를 다니며 선수들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탁구는 잘하는 학교로 보내야 기량이 늘기 때문에, 대성여중은 노상 지는 아이들 외에는 스카우트가 힘들었다. 한 학생은 “선생님, 저 초등학교 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한 번이라도 이겨보기 위해 중학교에서도 탁구를 계속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인터뷰의 첫 번째 울음이 나왔다.

# 결론은 엄청난 연습밖에 없었다. 2017년 초등학교에서 허예은 등 신입생을 받으면서 모든 것을 훈련에 걸기로 했다. “탁구계에서 저희 별명이 뭔지 아세요? 실미도에요. 영화 아시죠? 저희 정말 열심히 훈련했어요. 다른 팀은 탁구 2세들이 많은데, 우리는 한 명도 없어요. 나도 백도 없고, 너네도 실력이 없다. 그래서 탁구를 하려면 연습밖에 없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워낙에 기량차이가 커 성적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2017년도 대회에 나가면 지는 게 일이었고, 대성여중을 만나는 팀들은 ‘한 경기 쉬어간다’며 좋아했다. 대성여중은 탁구대회장에서 존재감이 아예 없었다. 그럴수록 김 코치와 선수들은 지독하게 훈련에 몰입했다. “가르치는 것도 참 힘들었어요. 다른 팀들은 초등학교에서 어느 정도 기초가 잡힌 선수들이 오지만 저희는 기본기가 부족해서 제가 드라이브를 처음으로 가르쳐준 선수도 있었어요. 창피하지만 다른 팀 선생님들에게 수시로 물어보면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 기적은 서서히 나타났다. 2018년 대성여중은 한번씩 이기기 시작했다. 몇 번 8강에 들기도 했다. 개인전에서도 허예은 등이 이기는 경기를 늘려갔다. 그리고 해가 바뀐 지난 3월 대성여중은 보령에서 열린 제56회 전국남녀 중고학생종별탁구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김아영 코치가 부임한 이후 3년 만에 메달을 딴 것이다. 눈물바다였다. 그리고 이번 소년체전에서는 은메달까지 딴 것이다. 에이스 허예은은 여중부 랭킹이 1학년 때 114위에서 지금은 15위로 점프했다. 금천구청의 추교성 감독이 “감각이 아주 좋다. 지금처럼 성장하며 국가대표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칭찬할 정도다. 초등학교 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선수는 피를 말리는 8강전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따냈다. 경쟁학교들이 인정할 정도로 대성여중의 탁구는 상전벽해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 압권은 김아영 코치의 두 번째 울음이다. “저 사실 지난 달(4월)에 결혼했어요. 그런데 이때부터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정말 엄하게 대했거든요.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좀 못됐지만 제 욕심 때문에 말이죠. 선수들이 저한테 혼나서 운 게 수도 없이 많아요. 요즘 스포츠인권이 중요한 거 저도 알아요. 누가 저한테 이런 거 문제 삼으면 저는 솔직히 잘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 3월 3위하고, 이번에 은메달 따고 저도 많이 울었지만 아이들도 다 한데 엉켜 울었어요. 저희는 만날 지니까 대회 끝나면 다음날 바로 훈련에 들어갔어요. 이번 은메달 후에도 저도 쉴 겸,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며칠 쉬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먼저 ‘샘, 우승도 해야하니, 저희 그냥 운동할게요’라고 답했어요. 이거 어떡하면 좋아요. 애들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고... 그냥 눈물이 나요.”
# 김아영 코치는 대성여중 코치 부임 후 지금까지 3년 2개월 동안 선수들의 훈련, 먹은 것, 특기사항 등을 하루도 빠짐없이 비공개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을 흘린 날도 모두 기록해놨다고 한다. 탁구 때문에 애인(지금은 아내)이 툭하면 울어대니,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제발 탁구 좀 그만두라”고 울면서 부탁하기도 했단다. 이쯤이면 신파 느낌이 들 정도로 눈물의 연속이다. 뭐, 상관없다. 미셸 퐁테뉴는 “우는 것도 일종의 쾌락”이라고 했다. 울보 코치님,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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