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검찰 증거은폐 결정타..누명벗은 이재명 항소심도 유리할까

류인하 기자 2019. 5. 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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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재명 경기지사가 4월 16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1심 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변호인들과 법정을 나서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부 무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이재명 경기도지사(55)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복, 5월 22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 지사 측 변호인들조차 전부 무죄까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검찰의 항소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디를 어떻게 공략해 유죄를 이끌어내느냐에 있다. 물론 항소심 역시 검찰의 완패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법원 인정사실 검찰 공소사실과 배치돼 이 지사에게 적용된 죄명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직선거법위반이다. 이 지사가 경기도 성남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0년 7월에서 2014년 6월 사이 시장이라는 자신의 직권을 이용해 친형인 고 이재선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려 했다는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2018년 5~6월 경기도지사 후보자 토론회에서 ‘형님을 강제로 입원시키지 않았다’는 허위발언을 하고, KBS <추적60분> 취재 협조과정에서 검사 사칭을 했음에도 한 적이 없다고 허위발언을 한 혐의, 경기도지사 선거공보물에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공직선거법위반)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재판장 최창훈 부장판사)는 그러나 5월 16일 이 지사에 대한 모든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지사가 시장의 지위를 이용해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려 한 정황 자체는 인정되나 이는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가 검찰과 피고인 측의 법정공방을 통해 새롭게 구성한 범죄사실은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사실관계와 많은 부분에서 배치된다. 검찰은 이 지사가 자신의 사익(원활한 시정운영)을 위해 방해가 되는 큰형의 각종 행동을 제거할 목적으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킬 것을 지시하고, 성남시 공무원과 성남시 소속 정신보건센터 전문의에게 거짓 진단서를 작성하게 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큰형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성남시 홈페이지에 자신(이재선씨)이 불륜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을 올리거나, 해당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 전화를 건 기자에게 의미를 알기 힘든 말들을 늘어놓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일을 추진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가족에게 해서는 안 되는 험한 말들을 하는 등 애초에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의 이상증세를 보여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재판부는 이 지사의 큰형이 성남시 홈페이지에 6개월 동안 약 156건의 글을 게시하고, 성남시 산하기관 임직원, 소속 공무원, 시민들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은 사실 등을 모두 인정했다. 이 지사가 단순히 자신의 시정활동에 방해가 되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재선(큰형)이 2012년 2월 22일부터 계속적으로 성남시 홈페이지 등에 피고인의 시정운영, 시장의 자격, 성남시나 성남시 소속 공공기관의 운영 및 인사, 피고인과 성남시 소속 공무원 및 산하기관 임직원 등에 관한 지속적인 비판 내지는 비난글을 올리고, 성남시 소속 공무원이나 산하기관 임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전화를 하면서 게시글들과 관련한 무리한 민원 요구·폭언·욕설 등을 행하고, 성남시청 시장실 앞을 점거하면서 소란을 피우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피고인은 그러한 행동들이 이재선의 조울증과 같은 정신병적 증상에 기인한 것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지사 둘러싼 각종 루머 해소되나 이어 “피고인은 이재선이 자신을 향한 적대적인 행위를 반복하면서 시정운영이 어려워지고, 소속 공무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의 상황이 계속됐음에도 모친, 형제자매들의 권유만으로는 이재선과 그 가족들의 협조를 받아 정신건강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받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시장의 권한에 따라 구 정신보건법 제25조의 절차를 통해 법령상 가능한 범위에서 이재선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켜 진단 및 치료를 받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볼 여지가 상당히 있다”고 명시했다.

여기에는 이 지사 측의 적극적인 공소사실 탄핵이 유효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지사 측은 22번의 공판에서 총 55명의 증인 등을 법정에 세워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했다. 판결문 역시 이 지사의 큰형이 저지른 각종 기행을 설시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 지사 측의 한 변호인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어떤 사건보다도 검찰의 공소사실을 탄핵하고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사실 인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지사로서는 아직은 1라운드의 승리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자신의 발목을 잡아왔던 각종 루머 중 하나인 ‘큰형 강제입원’ 건에 대해 이번 판결을 통해 누명을 벗은 셈이 됐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큰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려 한 각종 정황은 있으나 이는 단순히 사익을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정신과 전문의의 ‘환자 직접 대면’이라는 필수요건을 갖추지 못해 결국 강제입원을 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지사의 큰형은 2014년 10월 우울증 에피소드 진단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터키 여행을 떠났으나 여행지에서 다툼을 벌인 뒤 각자 귀국, 이후 부인 박모씨의 요청으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남아있다.

경기도지사 후보자 토론회에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한 적이 없다는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건의 실체를 전혀 모르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피고인이 큰형의 정신병원 입원 시도와 관련해 아무런 사실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인상을 심어줘 그 결과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어 그 범위에서 피고인은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피고인의 답변은 구체적인 행위의 존부를 특정할 수 없는 불분명한 발언이고, 그 발언이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 평가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직선거법위반 관련 혐의의 경우 법관의 자의적 판단이 들어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서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다소 유리한 판단을 한 것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도권 법원 판사는 “피고인의 내심의 의사까지도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한 것은 다퉈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이 지사 측은 “검찰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각종 증거들을 은폐하는 등 사실상 공소사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기소를 한 것”이라며 이 부분을 항소심에서도 강조할 계획이라고 23일 밝혔다.

이 지사 측 변호인은 “이미 1심에서 사실조사가 많이 이뤄졌기 때문에 항소심에서는 법리 위주로 다툴 계획”이라면서도 “검찰은 이재선씨가 교통사고 전에는 정신병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으나 이미 어머니가 치료를 이전에 권유했던 통화기록, 교통사고가 졸음운전이 아니라 자살 시도였다는 통화기록, 의사로부터 조울증약 처방을 받았음에도 안 받은 것으로 하자는 듯 말을 맞추는 통화 등 공소사실에 명백히 반하는 것을 검찰이 숨기고, 변호인 측의 열람·복사를 거부했던 일련의 과정들을 항소심에서도 같이 다툴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지사 1심 판결 사법농단 재판에 유리할까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1심 판결문을 보면 눈에 띄는 이름이 등장한다. 황정근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다. 황 변호사는 사법농단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의 변호사이자,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였던 인물이다.

황 변호사는 지난 1월 재판부가 임 전 차장에 대한 재판을 주 4일 집중심리로 진행하려 하자 이에 항의, 변호인단 전체가 사임하면서 현재는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아니다.

그러나 황 변호사의 등장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있다. 이 지사에 대한 재판이 사실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적용의 또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이재명 1심 재판부의 판결문은 사실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 거론되는 모든 논란을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하급심의 판단이지만 사법농단 피고인들에게는 자신들을 방어할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황정근 변호사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판결은 징계의 대상으로서의 ‘갑질’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서의 ‘직권남용’을 명확하게 구분해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는 사법농단의 핵심쟁점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사법농단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꾸준히 논란이 됐던 이유는 해당 죄에 대한 확립된 판례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검찰 내부에서도 명확하게 확립된 기준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검찰 내 최고 이론가로 알려졌던 이완규 박사(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지난 5월 17일 한국범죄방지재단에서 개최한 학술강연회에서 “직권남용죄는 남용이라는 구성요건적 행위유형 가운데 용어의 모호성과 광범위성으로 인해 행정소송 또는 민사소송으로 해결하거나 공직 내부의 징계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할 문제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해야 할 문제 사이에 기준과 한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직권남용죄의 성립요건’ 원고 중). 검찰 출신조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적용의 모호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13년 전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위헌 여부를 한 차례 판단한 바 있다. 재판관들은 8(합헌)대 1(위헌)의 의견으로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유일하게 위헌의견을 낸 권성 재판관(판사 출신)은 다만 “‘직권남용’과 ‘의무’는 의미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법원의 해석 역시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할 뿐 직권남용의 의미를 파악해내기가 쉽지 않다”면서 “수사기관이 그 규범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해 어떠한 행위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 해당하는지를 일관성 있게 판단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른바 정권교체의 경우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거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에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어디까지가 공무원의 직무범위에 해당하는지를 명시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고, 징계사유로서의 과도한 지시와 형벌로서의 직권남용의 경계가 모호해 자의적 판단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당시 결정은 그러나 사법부 내에서 크게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판사들이 해당 죄의 당사자가 될 일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는 사법부 내에 가장 뜨거운 감자다. 수십 년간 재판실무를 담당하고, 각종 판례를 만들어온 고위법관들이 사법농단의 주범으로 전락해 이 죄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첫 공판은 5월 29일 시작된다. 임종헌 전 차장에 대한 재판도 매주 진행 중이다.

이재명 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재판을 통해 쌓인 노하우가 사법농단 재판 방어에도 활용될까. 황 변호사는 ‘사임계를 냈지만 다시 임종헌 전 차장의 변론을 맡을 계획이 있으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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