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알까고 푸드덕.. 아파트 점령한 '비둘기 떼'

이재은 기자 2019. 5. 25.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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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약 100만 마리 서식.. 야생서 '암벽' 살던 습성, 도심서 '아파트'에 둥지 틀기 선호.. 비둘기 퇴치 업체 성행, 근본적으로 개체수 조절 필요
따뜻한 서풍이 유입되며 초여름 더위가 찾아온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비둘기가 물을 마시고 있다./사진=김휘선 기자

#초여름, 점차 더워지는 날씨에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연 A씨는 깜짝 놀랐다. 베란다에 설치해둔 에어컨 실외기 쪽에서 '구구' 소리와 '푸드덕'하는 날개짓 소리 등이 나서다. 실외기 쪽을 들여다보니 나뭇가지들과 깃털, 새똥들이 가득했다. 조금 지켜보니 비둘기가 A씨 실외기로 들락날락했다. A씨는 "이후 물로 실외기를 씻어도 보고 막대기로 비둘기를 내쫓아 보기도 했지만 계속 다시 돌아온다"며 "시끄럽고 냄새나서 미칠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따스해진 날씨에 '비둘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도시의 비둘기가 길을 넘어 집안까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위치해 비둘기가 선호하는 데다가 바깥에 있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아파트 베란다가 비둘기들의 주타겟이다.

25일 비둘기 퇴치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에만 비둘기 퇴치 업체 20여곳이 성업 중이다. 수도권에 많은 수의 비둘기가 서식해서다. 대한조류협회에 따르면 전국에는 약 100만 마리의 비둘기가 서식하고, 이중 수도권에만 50만 마리가 있다.

도심에서는 비둘기가 하루에 필요한 먹이량(약 35g)을 쉽게 섭취할 수 있는 데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비둘기를 날려 보낼 목적으로 서울시청 옥상에서 대량 사육해 수도권에 많은 비둘기가 서식하게 됐다. 보통 비둘기는 산란시 한번에 2알 정도를 낳는데, 야생에서는 연 1~2회 산란에 그치지만 먹이 등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도심에서는 보통 연 7~8회 산란한다.

비둘기 퇴치 업체들은 날이 따뜻해지면서 비둘기와 관련한 문의 전화가 늘었다면서, 초여름인 현재는 하루 평균 문의 전화가 10~20통 정도 온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업체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고 밝혔다.

비둘기 퇴치 업체 '비둘기김반장'의 김대업씨는 "보통 추위가 끝난 2월25일쯤부터 관련 상담이나 퇴치 요청 등이 들어오는데, 올해는 퇴치 물건 주문량이나 퇴치 상담 등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정확히 2배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이유로 "매년 비둘기 개체수가 매섭게 늘고 있는 데다가, 이번 겨울이 별로 춥지 않았기 때문에 비둘기가 알을 많이 낳아서 개체수가 더 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비둘기 퇴치 관련 요청이 들어오는 곳은 상가, 철도나 지하철 역사, 빌딩 등으로 다양하다. 비둘기는 야생에서 높은 암벽 사이에 서식하는 만큼 도심에서도 비둘기는 높은 곳을 선호한다. 문제는 이 같은 습성 때문에 최근 아파트가 비둘기의 주 서식지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ytn 사이언스 자료화면

김씨는 "아파트 주변엔 상권이 형성돼있어 먹을 것이 풍부하고, 아파트는 콘크리트로 지어져 암벽 느낌이 나는 데다가 높이가 높아 비둘기가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비둘기는 주로 3~15층을 선호하는데, 최근에는 독수리 등 천적이 줄어들면서 32층까지도 드나든다.

자연히 아파트 거주 시민들의 고충이 끊이지 않는다. 시민 B씨는 "어머니가 화분을 아파트 베란다 밖에 두고 식물을 기르시는데, 그 화분 안에 비둘기가 알을 2개 낳아 놨다"고 말했다. 이어 "알을 버리기도 뭐해서 그냥 놔뒀더니 자꾸만 비둘기가 베란다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비둘기는 귀소 본능이 강해 한번 찾아온 곳은 다시 찾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초기에 비둘기를 퇴치하지 않으면 비둘기와 원치 않는 동거를 하게될 수 있다.

문제는 비둘기가 주는 불편함이 단순히 소리나 냄새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양대 의대 세포생물학교실 지희윤 교수팀이 2003년 비둘기 배설물의 유해성을 조사한 결과, 비둘기 배설물에서 나온 '크립토코쿠스 네오포만스'라는 곰팡이가 사람에게 뇌수막염과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비둘기 깃털은 아토피성 피부염이나 비염 등을 유발한다고 알려져있다.

온라인에서 판매 중인 비둘기 퇴치 관련 상품들.

이에 시민들은 아파트 베란다에 비둘기가 깐 알과 둥지를 치워버리거나, 매나 독수리 등 맹금류 연을 설치하거나, 강한 냄새로 고라니 등 동물 퇴치에 효과가 있는 크레졸·과산화수소 등을 사용해 비둘기를 퇴치하려 노력하곤한다.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 결국 비둘기 퇴치 전문 업체를 찾는다. 업체들은 비둘기 똥과 깃털 등 진공 청소, 알·새끼 제거와 소독, 퇴치망·버드스파이크(끝이 가늘고 뾰족해 새가 앉지 못하도록 고안된 플라스틱 제품) 시공을 하고 보통 25만~30만원을 받는다.

이처럼 비둘기 관련 정신적 고통 뿐만 아니라 돈을 써서 비둘기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일까지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비둘기 개체수 증가가 문제인 만큼 당국이 나서 해결해야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다.

지난 11일 서울시민 유한선씨는 서울시 시민청원 홈페이지 '민주주의 서울'에 비둘기 관련 청원글을 올렸다. 그는 글에서 "비둘기가 서울시내에 매우 많은데, 그간 정책들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 같다"면서 "단순히 비둘기 밀집지역에 '먹이 제공 금지' 현수막을 설치하는 등의 방안 뿐만 아니라 비둘기에게 피임약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는 '나이카바진'(Nicarbazin)이라는 성분의 피임약을 사료와 섞어 비둘기에게 먹여 개체수를 조절하자면서, 서울시내 비둘기 밀집장소에 번식억제 사료 자동공급기를 설치하자고 주장했다.

201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진=위키커먼스

실제 이 같은 방식은 스페인 카디스, 알리칸테, 발렌시아, 바르셀로나 등에서 사용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경남 김해시도 지난해 2월 집비둘기 번식억제 사료(나이카바진 성분이 섞인 사료) 자동공급기를 설치해 비둘기 피해가 큰 진영읍 아파트 단지 3곳에 설치했다.

환경부 역시 비둘기 관련 문제를 인지한 상태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비둘기의 유해성 때문에 2009년 도시에 주로 서식하는 비둘기 종인 '집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하면서 비둘기가 생활에 과도한 불편을 초래할 경우 포획까지 가능하도록 법령을 마련했다"면서 "우리 매뉴얼에 따라 구체적인 관리는 지자체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나이카바진'에 대해서는 "비둘기가 매우 많은 특정 지역에는 제한적으로 설치할 수 있겠지만, 다른 조류들까지 사료를 먹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는 남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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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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