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아들만 비켜간 의정부 일가족 사망 비극, 일요일 밤 무슨 일이?

의정부/권오은 기자 2019. 5. 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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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 사건 이틀 전 지인 등에 ‘급전’ 문자
사업체 폐업 후 억대 빚 굴레…월 이자만 수백만원
경찰 "父, 아내·딸 살해 후 극단적 선택에 무게"
휴대전화 포렌식·흉기 유전자 감식 결과 이번주 나올듯

"부모님이 자살한 것 같아요. 빨리 집으로 와주세요."

경기 의정부소방서 119상황실에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지난 20일 오전 11시 30분쯤 아버지 A(50)씨와 어머니 B(46)씨 누나 C(18)양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고자는 막내인 아들 D(15)군. 늦잠을 잤던 D군은 시신을 발견하고 조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상황을 알린 뒤, 곧장 119에 신고했다.

의정부경찰서의 현장감식 결과, 현장에선 흉기 3점이 발견됐고 외부의 침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A씨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계단식으로 출입문과 엘리베이터 내부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 CCTV 녹화 영상에는 범행 추정 시각을 전후로 외부인이 들어가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21일 오후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 앞에 폴리스라인이 처져 있다./권오은 기자

그러나 현장에선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가족 3명이 흉기에 찔려 숨졌는데 함께 집에 있던 아들만 살아남은 점도 의문으로 제기됐다. 정말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인지를 두고 사건 초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분석이 엇갈렸다. 과연 일요일인 지난 19일 밤과 월요일인 20일 오전 사이 A씨 아파트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경찰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 가족이 사건 전날까지 억대의 빚 등 경제적 문제로 고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A씨의 목에서 주저흔(躊躇痕·자해 전 망설인 흔적)이 발견됐고, 딸 C양의 손에서 방어흔(防禦痕·흉기를 막으려 한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일단 경제적 문제로 고심하던 아버지가 아내와 딸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자택 담보로 약 1억 8000만원 빚…범행동기는 ‘경제적 이유?’
경찰에 따르면 아버지 A씨는 빚 문제로 고민해왔다. 그는 경기 포천시에서 7년간 목공예 사업체를 운영해왔으나 경영난으로 최근 사업을 접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이들 자택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지난해 12월 보험사로부터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채권최고액은 1억6000여만원이다. 이어 지난 1월에도 저축은행에 추가로 집을 담보로 채권최고액 4800여만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은행권의 채권최고액 설정이 110%~130%인 점을 고려하면 약 1억7000여만원의 빚을 냈던 것으로 보인다.

담보 대출 외에도 빚이 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달에 갚아야 할 이자도 수백만원대 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단순 노무직을 해야 했고, 아내가 구한 일자리도 이자를 감당하기엔 월급이 부족했다.

아들의 진술내용 등을 종합해보면 일요일인 19일 오후 4시쯤 귀가한 A씨와 아내는 이후 딸과 함께 생계 문제를 논의했다. 마땅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던 이들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고 한다. 다만 이웃 주민들은 "특별한 고성이나 소음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은 또 A씨의 휴대전화에서 사건 발생 2~3일 전 친척과 친구들에게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확보했다. 아들 역시 "사건 전날(19일) 오후 4시쯤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금전 문제를 갖고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며 "누나와 대화 과정에서 비관적인 말을 여러번 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확한 부채 규모와 금전 문제가 생긴 배경을 추가로 조사할 방침이다. 특히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A씨가 사채를 썼는지도 살피고 있다. 관련해 숨진 세 사람의 휴대전화도 포렌식(디지털 증거분석)하고 있다. 포렌식 결과는 빠르면 2~3일 내로 나올 전망이다.

일가족 3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 앞. 20일 오후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뉴시스

◇ 아들만 비켜간 비극…프로파일러 "부검·포렌식 등 결과봐야"
일가족 3명이 숨진 이 사건에서 유일한 생존자는 15세인 중학생 아들이다. 경찰에 따르면 D군은 사건 발생 전날(19일) 초저녁에 잠깐 잠들었다가, 자정쯤 일어났다. 이후 사건 당일 오전 4시까지 숙제를 했다고 진술했다. D군은 늦잠을 자고 깨어나다가 부모와 누나가 숨진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직접 신고했다고 한다.

사건 초기 늦잠을 자서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D군의 주장이 석연치 않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경찰은 D군의 신체조건이나 시신 부검 결과에서 확인된 상처의 형태 등으로 볼 때 D군이 이 사건에 직접 연관됐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따로 알람 등을 맞추지 않았고, 평소에도 부모님이 깨워줬기 때문에 월요일 등교 시간을 놓치고 늦잠을 잤다는 D군의 진술도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D군이 119에 신고할 때 극단적 선택이라고 본 것은 전날 가족들의 대화 내용 중 비관적인 말이 많았기 때문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나이가 어린 D군이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아 경찰 조사가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경찰은 조사와 별개로 심리 치료도 병행할 계획이다. 장례비용 등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의 추정대로 경제적 문제로 아버지 A씨가 가족을 흉기로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왜 아들만 남겼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금전적 문제로 가족과 함께 죽기로 했을 때 흉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좀 더 면밀한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도 "아버지가 평상시 지인들에게 ‘중학생이 뭘 알겠느냐’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볼 때,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어린 막내는 배제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남겨진 아들을 양육할 수 있는 조부모가 생존해있는 점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목으로 꼽았다.

의정부 경찰서 전경. /권오은 기자

◇흉기 3점 혈흔 많이 묻어 지문감식 불가…유전자 감식 진행中
경찰은 국과수 부검 결과 아버지 A씨의 목에서 흉기에 찔린 상처와 함께 주저흔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주저흔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사람이 한 번에 치명상을 만들지 못해 남긴 상처를 뜻한다. 또 아내 B씨의 목에는 베인 상처가 있었고, 딸 C양의 복부에는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C양의 손에서는 방어흔(가해자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생긴 상처)이 발견됐다.

현장에서 ‘비산(飛散)한 혈흔’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아내와 딸의 시신도 침대 위에서 발견됐다. 잠든 아내와 딸을 A씨가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정황과 증거들이다.

경찰 역시 A씨의 범행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아직 단정하지는 않고 있다. 중요한 증거인 흉기에 혈흔이 많이 묻어 지문 감식이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은 일단 흉기에 남은 유전자를 분석해달라고 국과수 등에 의뢰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 분석 결과도 이번 주중으로 나올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의 정황으로는 아버지의 범행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며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없도록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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