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마저 사라진 日신도시, 주민들은 '트럭수퍼' 기다리고

도쿄=최은경 특파원 2019. 5. 2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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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창 NOW] 몰락한 다마뉴타운의 분투

지난 17일 오후 3시, 1970년대 개발된 도쿄도(東京都)의 첫 신도시가 있는 다마(多摩)시내 한 아파트. 1200여 세대가 사는 이곳 주차장 한편에 1t 트럭 한 대가 섰다. 다마시와 도쿄를 잇는 철도 회사 게이오전철에서 운영하는 '판매 트럭'이다. 이 트럭이 이날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미니 수퍼'다. 화물칸 한 면엔 냉동·냉장고가 설치돼 돼지고기, 숙주, 양배추, 냉동식품을 판다. 반대편엔 과자, 빵, 식용유 같은 식품과 키친타월, 화장지 같은 생필품이 있다.

최은경 특파원

이 트럭은 지난해부터 일주일에 두 번(월·금) 오후 3시부터 딱 30분간 이 아파트에 선다. 트럭이 영업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나타나면 10여 명의 주민이 줄을 선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편의점이 문을 닫은 이후 생긴 변화라는 게 주민 설명이다. 트럭 앞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주민 대부분이 노인 아니면 어린아이를 둔 젊은 부부"라며 "지하철역 대형 마트까지 10분 넘게 오르막·내리막길을 걸어 쇼핑하기가 힘들어 간단한 쇼핑은 이 트럭에서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쇼핑 난민(가까운 곳에서 생필품을 구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다. 도쿄에서 30㎞ 떨어진 다마 신도시에선 요즘 이런 '판매 트럭' 세 대가 하루 네다섯 곳을 방문해 '쇼핑 난민'을 돕는다.

◇1970년대 '꿈의 도시'에서 반세기 만에 쇠락한 다마뉴타운

다마뉴타운은 도쿄 중심부에서 서남쪽으로 약 25~40㎞ 떨어진 다마시, 마치다(町田)시, 하치오지(八王子)시, 이나기(稻城)시 등 네 도시에 걸친 구릉지 약 3000㏊를 지칭한다. 도쿄 신주쿠(新宿)역에서 게이오 사가미하라선(線) 급행 지하철을 타면 30여 분 만에 도착할 정도로 가깝다.

17일 오후 도쿄도 다마(多摩)시 나가야마(永山) 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게이오전철의 ‘이동 판매 트럭’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대형 마트가 있지만 아파트 단지가 언덕 위에 있어 노인들이나 어린 자녀를 둔 부부들이 주로 판매 트럭을 이용한다고 한다. /최은경 특파원

고도 경제성장과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으로 도쿄 인구가 매년 10만~20만명씩 늘어나던 시절, 일본에선 한국의 1990년대처럼 신도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1963년 신주택시가지개발법을 제정한 것을 계기로,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 주변 뉴타운 개발 사업이 본격화됐다. 도쿄 인근 첫 신도시인 다마뉴타운은 1971년 다마시 스와·나가야마 지구에서 첫 입주가 시작됐다.

개발 당시 목표했던 인구 규모는 34만명. 입주 시작 3년 만에 아파트 8000여 가구가 분양되면서 다마뉴타운 인구는 3만명 넘게 불어났다. 분양된 아파트는 도쿄로 출근하는 월급쟁이 4인 가족을 위한 방 3개 구조였다. 도쿄 인근의 지바현과 사이타마현에도 다마와 같은 뉴타운 개발이 시작됐다. 일본 언론들은 1970~1980년대를 "뉴타운 붐이 일던 시기"라고 했다.

1974년 오일 쇼크로 주택 수요 감소 전망이 대두되자, 다마뉴타운도 대규모 단지 아파트 분양 일변도에서 벗어나 타운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의 주택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저밀도 개발과 함께 뉴타운 인기는 지속돼 1979년 첫 일반 택지 분양 때엔 경쟁률이 최고 3422배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1980년대에는 도쿄 시내 대학들이 뉴타운 인근에 제2 캠퍼스를 속속 건립, 대학이 9개가 생기면서 학원 도시로 거듭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다마는 '꿈의 뉴타운'에서 쇠락한 올드타운으로 급격히 몰락했다. '버블 경제' 붕괴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고, 도쿄 신도시 주택 수요도 추락했다. 설상가상으로 다마보다 가까운 교외에선 경쟁 뉴타운 개발이 계속됐다. 금방 30만명을 넘길 듯했던 다마뉴타운 인구는 2005년에야 20만명을 넘었다. 2017년 22만4000여 명을 기록한 뒤 2018년부턴 줄어들기 시작했다. 2050년에는 7% 넘게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입주 당시 30~40대였던 가장들은 은퇴했다. 취업한 젊은 자녀들은 도쿄 도심의 원룸으로 떠났다. 젊은 도시였던 다마뉴타운의 고령화율(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2018년 23.9%에 이른다. 다마뉴타운에서 가장 먼저 입주가 시작된 스와·나가야마 지구가 있는 다마시의 고령화율은 29.9%로 도쿄도 전체 고령화율(23.6%)보다 높다. 1970년대엔 최신형이었던 아파트도 늙었다. 대부분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다. 노인들이 오르내리기 불편해 집을 내놔도 팔리지 않아 빈집이 속출했다. 10가구가 있는 아파트 한 동의 절반만 채워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마뉴타운의 약 2만 가구가 강화된 일본 정부의 내진(耐震) 기준에 못 미치는 상태다.

구릉을 개발해 만든 지형적 특성, 녹지를 살린 친환경 개발도 사는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문제가 됐다. 집에서 어디를 가려고 해도 거리가 멀다. 구릉 위에 있는 아파트는 버스정류장과의 고저(高低) 차이가 30m가 넘어 노인에겐 버겁다. 뉴타운 곳곳에 나이 든 어르신들에겐 힘겨운 육교와 계단, 등산로와 같은 오르막길투성이다.

◇다마뉴타운의 분투(奮鬪)

일본 내에서 다마뉴타운과 같은 수도권 교외 뉴타운이 공동화(空洞化) 위기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2000년대 도쿄 도심 재개발이 활성화되면서 도심 회귀 현상만 더 심화됐을 뿐이다. 뾰족한 수 없이 활기를 잃어가는 뉴타운들의 고민은 깊어지기만 하고 있다. 그나마 다마뉴타운은 2010년 나가야마 지구에 있는 아파트 640가구를 재건축하기로 지역민들의 뜻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1971년 입주한 지 40년 만이다. 1200가구로 규모를 두 배 늘려, 나머지 600여 채는 분양했는데 아이를 둔 젊은 세대들을 다수 입주시키는 데 성공했다. 분양 경쟁률도 최고 27대1을 기록했다. 도쿄도와 다마뉴타운 지자체들은 일단 지역 내 도영(都營) 주택부터 다시 지어, 도심이나 인근의 젊은 가족 단위를 끌어오겠다는 방침이다. 주택 노후화 문제가 일단 해결되면 다마뉴타운이 아직 주택 가격·도쿄 접근성·인프라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다마뉴타운에선 올해부터 자녀들이 다마의 부모님댁 근처로 이사하면 현금 30만엔을 지원한다. 도쿄까지 가지 않고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오피스 공간도 시에서 제공한다.

교통 인프라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신칸센보다 더 빠른 기차'로 개발 중인 리니어 중앙 신칸센이 다마에서 지하철로 10~20분 거리에 정차하기 때문이다. 다마시는 가나자와중앙교통과 함께 올 2월 자동 운전 미니 버스 시범 사업을 시행했다. 다마뉴타운 도로가 도쿄 도내에 비해 비교적 깔끔한 데다,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 인구가 많아 자동 운전 대중 교통 실험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주민들이 집 바로 근처에서 (자동 운전) 버스에 탑승하는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게 다마뉴타운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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