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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페루·일본의 연쇄 강진..'불의 고리' 기지개 켜나

이정호 기자 2019. 5. 1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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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7일 오전 7시19분쯤(현지시간) 태평양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 설치된 지진계가 요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침의 고요함을 깨고 규모 7.1의 강진이 감지된 것이다. 다행히 지진이 시작된 지점인 진원지가 땅 표면에서 127㎞나 들어가야 하는 깊은 곳이어서 별다른 피해가 없었지만 만약 진원지가 얕았다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파푸아뉴기니 강진 바로 다음날인 지난 8일 페루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난 데 이어 일본 규슈에서도 지난 10일 하루에만 규모 6.3과 5.6의 강진이 발생한 것이다. 역시 같은 날 러시아 극동 지역인 캄차카반도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더니 12일에는 중남미 파나마에서 규모 6.1, 14일에는 다시 파푸아뉴기니에 규모 7.7의 강진이 닥쳤다.

일주일 사이 동시다발적 지진 모두 환태평양 조산대서 발생 이 중 일본은 가장 위험한 국가

주목할 점은 단 일주일 새 일어난 연쇄적인 강진이 모두 환태평양 조산대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환태평양 조산대는 태평양 주변을 감싸듯 둘러쳐 있는 지진 집중 발생지역인데, 가공할 만한 힘 때문에 ‘불의 고리(Ring of Fire)’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2011년 규모 9.0의 막대한 에너지를 뿜으며 2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동일본대지진도 ‘불의 고리’에서 일어났다.

‘불의 고리’는 지구가 가진 독특한 지질 구조 때문에 만들어졌다. 지구의 지각, 즉 땅은 끈적끈적한 마시멜로 같은 뜨거운 맨틀 위를 여러 개로 나뉘어 둥둥 떠다닌다. 이런 땅의 조각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지진인데, 충돌을 일으킬 만한 땅들이 많이 모인 곳이 ‘불의 고리’인 것이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호수의 얼음이 봄철에 녹아 여러 조각으로 나뉘면 이 얼음 조각들이 물 위를 떠다니며 서로 가장자리를 부딪치는데 자잘하게 나뉜 얼음 조각이 많은 지점에서 더 많은 충돌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금성이나 화성 같은 다른 행성에서는 땅 아래에서 이런 활동이 관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근 연쇄 지진을 ‘불의 고리’가 활성화되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일부 과학계에서는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다면서도 횟수가 잦다는 점으로 볼 때 일단 주목할 만하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불안한 건 우리나라다. ‘불의 고리’ 가운데 가장 지진이 잦은 국가 중 하나인 일본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지진 현황을 살펴보면 불안감은 커진다. 지난달 강원 동해와 경북 울진 인근 바다에서 각각 규모 4.3과 규모 3.8의 지진이 발생했고 이달 초에는 경북 영덕 근해에서 규모 2 수준의 지진이 연달아 일어났다. 바다에서 일어난 탓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규모와 빈도로 지진이 일어나고 있고 발생 시점도 공교롭게 최근 일어난 세계 지진들과 비슷하다.

인접한 한국도 안전하지 않아 ‘규모 4 이상’ 올 들어 2번이나 추가 확대 가능성 배제 못해

규모 4 이상의 중급 지진을 추려보면 한반도 땅속의 움직임은 더욱 걱정스러워진다.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난 2016년 한 해에 규모 4 이상의 지진은 모두 네 번이었다. 포항에서 강진이 있었던 2017년에는 모두 2회를 기록했다가 지난해에는 1회까지 떨어졌다. 잠잠해지는 듯하던 규모 4 이상의 지진은 올해에는 이달까지만 2번이나 일어나며 기지개를 켠 상황이다. 연말까지 꽤 큰 지진이 추가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전반적인 경향은 태평양 주변의 지진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최근 동해와 주변 육지를 중심으로 일어난 지진이 연관돼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과학계에선 이달 초 ‘불의 고리’에서 일어난 연쇄 지진을 두고 일상적인 지질 활동에 무게를 두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규모 7 수준의 지진은 세계적인 수준에선 이례적이진 않기 때문에 인접 지역에서 지진이 났다고 해서 이상 동향으로 보긴 어렵지 않으냐는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특히 동해안이 전에 없던 수준의 지진 영향권에 들어왔다는 데에는 학계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동일본대지진 뒤 우리나라의 지각은 일본 방향으로 당겨지며 땅 아래에 ‘응력’, 즉 스트레스가 쌓였다. 볼을 세게 꼬집으면 통증이 느껴지며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식빵을 강하게 잡아당기면 부서지는 것과 같은 일이 우리나라 땅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원래 자리로 지각이 되돌아가려는 반작용이 생기고 있고, 이게 최근 한반도 지진의 주원인이라는 얘기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전반적으로 약해진 한반도 지각을 통해 지진 에너지가 새어 나오고 있다”며 “지진이 동해 주변을 넘어 국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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