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 개편' vs '경영권 보호' 상법개정안 이견 팽팽
[이코노폴리틱스]
-與 다중대표소송제 등 추진, 한국당 “투기 자본에 뭉칫돈 바치는 꼴”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문재인 정부는 상법 개정안을 경제민주화의 핵심 법안으로 추진해 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 이 법안 추진을 공약으로 제시한 이후 국회에 여러 차례 처리를 촉구했다. 지난 1월 공정경제추진전략회의에서도 “공정 경제를 위한 많은 법안들이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며 “기업 소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의 의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법무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대상 집중투표제 실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전자투표제 도입 등이 핵심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된 내용이다. 여야정은 지난해 11월 국정 상설 협의체를 통해 상법 개정 원칙에는 합의했다.
하지만 국회에선 2017년 11월 20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원회 회의 이후 이렇다 할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주주의 의사결정권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 옥죄기’가 아닌 진정한 ‘기업 살리기’ 법안이라는 여당에 대해 한국당과 재계는 이 제도들은 시장경제와 부합하지 않고 시행 때는 자칫 외국계 투기 자본에 뭉칫돈을 갖다 바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감사위원을 맡을 이사는 선임 단계에서부터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출하고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사의 업무 집행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감사가 대주주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게 법무부와 민주당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의견서를 통해 “감사위원 분리 선임은 외국계 투기 자본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다.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감사위원 분리 선임까지 의무화된다면 대주주의 감사위원 선임에 대한 의사결정권이 과도하게 제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 등 투기 자본이 더 적은 지분으로 큰 힘을 발휘해 경영권이 침해될 소지도 있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경총은 “대주주 3% 의결권 제한 규정을 이용해 외국계 투기 자본이 규합한다면 감사위원 선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지분 매집을 통해 주요 주주가 돼 자신들이 원하는 인사를 경영진에 참여시키거나 사측의 주요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등 기업 경영을 어렵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했다.
◆ “대주주 전횡 막고 소액주주 강화 위해 필요”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던지는 게 아니라 뽑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갖도록 한 제도다. 1주당 복수의 의결권을 가진 주주는 선호하는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 현행 상법은 기업이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어 주요 기업들은 대부분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여권은 소수 주주의 권익을 강화하고 대주주의 경영권 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당과 재계는 소수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가 이사회 운영을 방해하거나 해외 투기 자본 또는 헤지펀드들이 경영권 분쟁의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반대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가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의 위법행위로 손해를 볼 때 모회사 주주들이 ‘출자 기준 50% 초과’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모회사 주식 1% 이상을 확보하면 누구나 손해를 입힌 자회사 이사들에게 소송을 청구할 수 있게 했다. 현행 주주 대표소송에서는 1% 이상의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해당 회사 경영진만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다.
여당은 “소수의 지분으로 전체를 지배하는 기형적인 재벌 기업들에 경영 책임을 쉽게 물을 수 있어 경영이 투명해질 것”이라고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자회사의 독립 경영을 침해하고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외국계 자본이나 투기 세력들이 경영권에 개입하는 수단으로 삼아 부당이득을 챙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행동주의 펀드들의 소송 공격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선진국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며 “이 제도 도입을 명문화한 일본도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갖고 있는 곳에만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전자투표 의무화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전자투표는 주주 1만 명 이상의 상장사에서 주주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아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재계는 제대로 된 토론 절차를 밟지 못하고 해킹 또는 전산 오류로 인한 주총 혼란이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무부가 전자투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도라고 하는 데 대해서도 의무화한 나라는 대만 등 일부 나라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 “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해야”
법무부는 상법 개정안을 올해 상반기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경총·상장사협의회 등 재계 단체와 수차례 만나 합의안 마련에 나섰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재계는 법무부와 민주당안대로 상법 개정을 한다면 차등의결권·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당도 여권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업 경영권을 견제하는 여권의 상법 개정안에 맞서 경영권 보호 장치 내용을 담은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윤상직 한국당 의원은 “글로벌 시장에서 투기 자본이 날로 증가하고 있고 적대적 M&A에 의한 경영권 상실의 폐해가 심각해짐에 따라 주요 선진국들은 차등의결권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경영권 경쟁에 공정성을 도모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은 방어 수단이 거의 없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비용이 훨씬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방안들이 들어 있다. 정갑윤·권성동 한국당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M&A 또는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하면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값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윤 의원의 상법 개정안에는 ‘배임 면제’ 조항도 들어 있다. 경영진이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선의의 판단’으로 경영상 결정을 내렸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특별배임죄 여부를 판단할 때 정상참작하도록 한 것이다.
민주당은 권 의원 방안에 비해 윤 의원 안이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포이즌필의 경우 권 의원은 이사회 결의로 도입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윤 의원은 주주총회 특별 결의 요건(발행 주식 수 3분의 1 참석과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이를 충족하기 쉽지 않아 자칫 무늬만 포이즌필이 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민주당은 정부의 상법 개정안을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올려 처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에 치중하기 위해 막판에 상법 개정안을 패스트 트랙에서 뺐다. 민주당은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서 합의 가능한 부분부터 처리를 시도할 방침이다.
여권은 정부 상법 개정안의 4개 핵심 쟁점 가운데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부터 우선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어 처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선 여당이 “기업 편들기용 법안”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다만 정부와 여당은 비상장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주는 방안은 추진하고 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4호(2019.05.13 ~ 2019.05.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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