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완역 천병희 교수 "고전 보면 시야가 넓어집니다"

2019. 5. 1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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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 외국서적 참고해 번역..글은 싫증나지 않고 재미있어야"
"이제는 새로운 책 옮길 생각 없어..서양 고전 번역에 지원 필요"
플라톤 전집 완역한 천병희 교수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플라톤 전집 번역을 마무리한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송파구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미국 사상가 랠프 에머슨(1803∼1882)은 세계 도서관에 불이 나면 안전한 곳으로 서둘러 옮겨야 할 책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과 셰익스피어 전집, 그리고 플라톤 전집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소크라테스 제자인 플라톤은 저술 대부분을 대화 형식으로 남겼다. 대표 저작으로 꼽히는 '국가'와 '법률'도 대화편이다.

문답 형식으로 이뤄진 플라톤 책은 철학자들이 논지를 치밀하게 전개해 나가는 글보다는 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용이 난해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는 쉽지 않다.

플라톤 전집이 한 학자에 의해 드디어 한국어로 완역됐다. 그 주인공은 고대 그리스·로마 원전 번역에서 독보적 위치를 굳힌 천병희(80) 단국대 명예교수. 그는 2012년 도서출판 숲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을 선보인 뒤 플라톤 전집 마지막 책인 제7권을 최근 펴냈다.

지난 9일 송파구 천 교수 자택을 찾아가 서양 고전을 번역한 계기를 물었더니 62년 전인 1957년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그는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2학년이었다.

"장익봉 교수와 함께 플라톤의 '향연' 원전 텍스트를 읽었습니다. 서너 명이 1년간 봤어요. 세계를 보는 눈이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 하지 않으면 제가 플라톤 책을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천 교수는 서울대에서 공부한 뒤 독일로 떠나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독문학과 고전문학을 수학했다. 그는 독일에서도 희랍어와 라틴어 검정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고대 그리스·로마 원전에 관심이 컸다.

1972년 휘문출판사가 펴낸 '세계의 대사상' 시리즈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부분을 일부 번역한 천 교수는 꾸준히 서양 고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부터 '변신 이야기', '영웅전', 헤로도토스의 '역사',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그는 "전공이 문학이었기 때문에 그리스 비극이나 로마 시인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먼저 작업했고, 역사서를 거쳐 플라톤으로 갔다"며 "플라톤 저작은 여러 사람이 모여 대화를 하는 형식이어서 생동감이 있는데,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원전을 두고 영어·독일어 번역본을 참고해 플라톤 전집을 번역했다. 그는 논문처럼 딱딱하지 않게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싫증 나지 않는 글, 쉽게 읽히고 재미있는 글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원전을 훌륭한 한국어로 표현하면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낍니다. 기본적으로는 직역하되 때로는 과감하게 의역을 했습니다. 직역 중심으로만 번역하면 의미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아 독자가 알쏭달쏭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천 교수는 번역된 글을 다시 옮기는 중역(重譯)보다는 원전을 직접 번역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잘못된 번역본을 접하면 안 해도 될 고민을 하게 된다"며 "외국 번역본을 참조해 며칠 작업을 하면 어떤 번역이 좋은지 금방 알 수 있는데, 서양에서는 번역 스타일이 장문에서 단문 위주로 바뀌는 듯하다"고 털어놨다.

플라톤 전집 완역한 천병희 교수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플라톤 전집 번역을 마무리한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송파구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말수가 많지 않은 천 교수는 고대 그리스에서 문화가 꽃핀 배경으로 '사회 분위기'를 꼽은 뒤 플라톤 사상의 특징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이데아론을 언급했다.

그는 "플라톤 사상 중에 사물에는 실체가 있다는 것,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몸보다는 영혼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며 "이상적인 국가는 무엇인가, 법률을 어떻게 입법해야 하는가 등 주제가 무척 다채롭다"고 말했다.

이어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인간이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가를 이야기하는데,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를 암시하는 내용이 많다"며 "플라톤이 하는 말을 따라가다 보면 재미도 느껴지고,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진다"고 덧붙였다.

천 교수는 번역 작업을 집에 있는 작은 서재에서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한 뒤 쉬었다가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다시 책을 봤다. 저녁에는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클래식 CD를 골라 들었다. 그리고 1주일에 두 번 정도 남한산성 산책을 하며 건강을 관리했다.

플라톤 전집 완역이라는 과업을 마친 천 교수는 표정이 홀가분해 보였다. 그는 이제 새로운 책을 번역할 마음이 없다고 했다. 기존에 번역한 글을 다시 읽으면서 고칠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정암학당 같은 곳에서 젊은 학자들이 그리스·로마 원전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고전 관련 예산을 배정해 서양 고전 번역을 지원해야 합니다. 최소한 제가 하지 못한 원전 50종 정도는 추가로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플라톤 전집 [도서출판 숲 제공]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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