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5달러 vs 미국 343달러.. 1인당 정신질환 보건 예산 '빨간불'
한국인 1인당 예산 65달러 수준
유럽 선진국의 16~18% 그쳐
美 주거ㆍ취업 등 사회적응도 도와줘
진주 방화ㆍ살인사건을 계기로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ㆍ지원체계의 열악한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사이에선 예산의 대폭 확대는 물론, 필요하면 정신질환만이라도 치매와 같이 국가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인당 예산, 선진국의 16% 수준
실제로 정부 자료를 종합하면 한국의 1인당 지역사회 정신건강보건 예산은 2017년 기준 3,889원이다. 같은 해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라 계산한 한국의 1인당 정신건강보건 예산은 65달러 수준으로 WHO가 국민총소득(GNI) 수준으로 한국과 함께 묶은 일본ㆍ프랑스 등 고소득 국가 29개국 평균치(80달러)에 못 미친다. 미국(343달러) 독일(395달러) 등 선진국에 비하면 16~18%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 정신보건 예산은 절반 가량이 장기입원환자를 돌보는데 쓰이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일찍 발견하고, 응급상황에서 입원시켰다가, 사회 복귀가 어려워지기 전에 퇴원해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에는 예산이 거의 투자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정신건강 예산은 총 1,704억원으로 47%(817억원)는 만성 정신질환자들이 생활하는 정신요양시설의 인건비, 관리비 등에 투입된다. 한국 조현병 환자의 연평균 입원기간은 196일로 2016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로 평균치(49일)의 4배 수준이다.

정신건강 보건예산 중 나머지 887억원이 모두 정신질환자 치료ㆍ지원에 쓰이는 것도 아니다. 24%는 자살예방사업(217억원)에 쓰이는 등 시스템 구축과 무관하게 쓰인다. 전문가들은 진주 방화ㆍ살인사건 피의자 안인득이 미국에 살았더라면 참극을 저지를 때까지 사회에서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미국에서 정신질환자가 응급상황에서 입원했다가 사회로 돌아가도 고립되지 않고 치료를 계속하도록 돕는 ‘적극적 지역사회 치료 시스템(ACT)’이 널리 보급돼 있기 때문이다. 전문의ㆍ직업재활전문가 등 7개 분야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ACT팀은 입원환자들과 함께 퇴원계획을 세울 뿐만 아니라, 집을 구하거나 취업할 때 어려움이 발생할 경우에도 도와준다. 미국의 1인당 정신보건예산은 OECD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조현병 환자의 연평균 입원기간도 한자릿수(2010년 10일)다.
윤석준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고려대 의대 교수)은 “정신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환자 30%는 의학적으로 당장 퇴원이 가능한 ‘사회적입원’ 환자들”이라면서 “장기입원 유지에 쏠려 있는 재원을 (사회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매처럼 국가책임제 도입하라”
의료계에선 중증 정신질환자만이라도 치매처럼 정부가 치료를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을 골자로 한 ‘중증정신질환 정책 백서’를 발표했다. 치매처럼 조기발견과 응급치료, 사회복귀를 돕는 인프라를 구축하라는 것이 골자다. △급성기 집중치료 기반 확충 △정신건강복지센터 공공성 강화 △당사자와 가족 활동 지원 등의 내용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치매 국가책임제는 2017년 도입 이후 불과 2년만에 전국 보건소 256곳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됐고 189개소가 장소와 인력을 완비했다. 김정숙 여사가 직접 치매안심센터를 방문하고 사회관계장관회의가 안심센터에서 열리는 등 정부 차원의 관심도 높다. 예산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의지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인건비 등 안심센터 예산은 지난해 1,035억원에서 올해 2,087억원(국비 기준)으로 급증했다. 반면 올해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운영예산은 370억원에 그치는 상황이다.
윤석준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단장은 “일본 요코하마(橫浜)시의 경우, 정부가 재정을 지원한 병원 중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면 하루 4개 병상은 정신질환자 응급상황용으로 비워놓는다”면서 “(일반 예산 지원 확대가 어렵다면) 국민건강증진기금만이라도 연구개발비 등으로 전용하지 말고 정신건강증진에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환자단체ㆍ가족단체들은 국가책임 강화에 동의하면서도 정부의 추진의지에는 회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신질환자 당사자 단체인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박환갑 사무총장은 “의료비 지원, 후송체계 강화, 인프라 구축에는 당연히 동의한다”면서도 “국가 책임이라면서 강제입원 기준만 완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라고 밝혔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