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시에도 수염을 기를 수 있는 군인들 (하)
[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91] 규정에 의해 수염 기를 권리를 보장받는 군인은 또 누가 있을까. 많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 수염을 기를 수 있다.
1. 영국 해군의 풀-비어드(full beard)
영국 해군은 오래전부터 수염을 길렀다. 그런데 이 수염은 완벽해야 한다. 콧수염, 턱수염, 구레나룻이 이어진 '풀-비어드(full beard)'만 허용된다.


그런데, 수염이 코밑에만 나고 턱에는 제대로 안 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 수염을 기를 수 없다. 영국 해군 규정에 의하면 수염을 기른 지 6주가 지나도 풀-비어드 상태가 되지 않으면 지휘관이 '수염을 깎으라'고 지시할 수 있다.
기르는 것도 까다롭지만, 난 수염을 깎는 것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수염을 다 기르고 보니 별로 맘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자를 수 없다. 수염을 기른다고 보고하고 허가받은 날로부터 6개월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 영국 군악대장과 스코틀랜드 군악대 파이프 연주자
군악대의 경우 전통적으로 수염을 기르는 것이 허용된다. 특이한 것은 군악대장이나 파이프 연주자 같은 대표성 있는 직책에만 '풀-비어드'가 허용된다는 점이다. 다른 대원들은 대개 콧수염, 턱수염 중 하나를 선택하여 기른다.



3. 종교적인 전통에 의한 수염
종교적 전통에 특정 외양이 명시되어 있다면 이를 영내에서도 허용하는 것이 최근 추세다. 2009년 미국 육군은 아래 사진 속 두 장교의 터번 착용과 수염 기르기를 허용하기로 했다. 그들의 종교인 시크교(Sikh) 교리를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물론 특정 종교 교도임을 증명하는 것은 본인 몫이다. 일정한 형식을 갖춘 심사를 통해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군보다 먼저 시크교도의 터번과 수염을 허용한 것은 영국군이다. 영국군은 19세기 중엽 인도 시크교도로 구성된 부대를 창설했는데 그 수가 점점 늘어나 20세기 초에는 5개 연대까지 늘어났다. 시크 연대는 영국군의 일부로 크고 작은 전쟁에서 활약했고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부대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인도 독립 후 시크 연대는 본국에 재배속되었지만 영국은 시크 연대 소속 장병의 영국군 잔류, 영국 귀화를 허용했다. 인도군 시크 연대와 영국군 인도계 시크교도 장병은 지금도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쓴 채 근무한다.


4. '염소 대장(Goat Major)'의 수염
수염을 기를 수 있는 보직 중 '염소 대장(Goat Major)'이라는 아주 특이한 것이 있다. '염소 대장'은 부대의 마스코트인 염소(병사 계급과 고유 군번을 부여한다)를 이끄는 부사관 혹은 병사이다.
영국 웰시 연대(Royal Welsh)는 18세기 중후반 미국 주둔 시절부터 염소를 부대 마스코트 삼아 데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기에는 염소를 아예 부대 편제에 포함하여 정식 부대원으로 삼았다.
기록에 의하면 첫 '연대 염소(The Regimental Goat)' 보직을 받은 것은 '타피 4세'다. 타피 4세는 부대원들과 함께 격전지를 누볐고 전후에는 각종 기념·보훈·자선 행사에서 활약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차례 훈장을 받았으며, 영국 여왕이 주관하는 시가 행진 대열에 서기도 했다.

염소 대장이 수염을 기르는 이유에 대해 '얼굴을 덮은 수염이 특징인 염소와의 유대감 강화를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던데 설득력이 약하다. 연대 염소를 이끌고, 앞서 설명했던 첨병 부사관이나 군악대장처럼 행진 대열의 선두에 서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풀-비어드를 기르는 것이다.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elyzc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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