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春情과 純情 사이..노골적 노출 없이 원초적 본능 자극하다

기자 2019. 5. 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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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엽이 만난 美感의 세계 - ⑩ 에로티시즘

제프 쿤스 그린 ‘메이드 인 헤븐’

아내와의 性행위, 사진·조각으로

불쾌해한 관람객이 작품 훼손도

귀스타브 쿠르베 ‘잠자는 여인들’

사실적 묘사로 동성애 문제제기

20세기 페미니스트들 분노 유발

구스타프 클림트의 性유희가

황금빛 침대 위 황홀경이라면

에곤 실레의 육감적인 표현은

창고안 나무 침대처럼 음습해

色·性愛 묘사정도는 다르지만

에로티시즘 품위 격상 ‘호평’

춘정과 순정은 어떻게 다를까. 춘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낸 마음이라면 순정은 살며시 감춘 마음쯤 될 것이다. 표현하는 농도가 조금 다를 뿐, 똑같은 사랑의 마음이다. 마음에만 담는 사랑은 일방적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랑에 순정이 깃들면 가슴 시린 짝사랑으로 끝나기 쉽고, 춘정으로 풀어내면 스토커가 되기 십상이다.

마음을 주고받으면 온전한 사랑이 된다. 그쯤 되면 춘정이나 순정 모두 열정이 된다. 열정으로 피어나는 춘정은 분출하는 용암과도 같다. 곁에 있으면 사랑의 열기에 마음을 데일 수도 있다. 열정을 머금은 순정은 마그마 같은 것이다. 이런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다. 뻔한 결말이지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춘정을 표현하는 그림에는 노골적인 재미가 있어야 제격이다. 거기에 풍자나 해학, 혹은 비판을 싣는다 해도 노골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볼거리의 즐거움을 주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살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해도 용서가 되는 그림. 그게 바로 춘정이 녹아든 그림이다.

순정을 품은 그림에는 은유와 상징이 묻어 있다. 이런 그림은 보는 재미보다는 풀어내는 재미가 있어야 제맛이 난다. 자신의 안목을 믿고 한 꺼풀 벗겨서 (그 안목이) 적중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쾌감을 얻을 수 있는 그림. 바로 순정이 스며든 그림이다. 그리고 춘정과 순정 사이에서 보이는 것이 에로티시즘이다.

에로티시즘은 인간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예술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특히 직접적인 시각 표현이 가능한 회화에서는 강력한 설득력을 보여준다.

에로티시즘으로 현대미술의 스타가 된 작가는 미국 키치 팝의 대가 제프 쿤스(1955∼)다. 그가 표현한 에로티시즘은 예술과 외설의 경계선에 서 있다. 문제의 작품은 1989년 발표한 ‘메이드 인 헤븐’ 시리즈.

포르노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노골적인 표현을 담은 이 작품은 미술계를 논란에 휩싸이게 했고, 급기야는 전위미술의 집합장인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사달까지 불러일으키고 만다. 분노한 관람객이 작품을 훼손한 것이다.

‘메이드 인 헤븐’은 제프 쿤스가 이탈리아 포르노 배우 출신인 아내 치치올리나와 실제 성행위 장면을 촬영해 사진, 회화, 조각으로 제작한 시리즈다. 다양한 성행위 자세가 등장하고 성기가 노출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장면이 포함돼 있어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관람하는 것조차 낯 뜨겁게 만든다. 이 작품이 발표됐을 때 사람들은 부도덕한 내용은 물론, ‘천국에서 만든’이라는 성스러운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 더욱 분노를 토해냈다. 마치 성서의 내용을 상징하는 듯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쿤스의 노골적 성 표현에 결코 뒤지지 않는 도발적인 작품은 이미 19세기에 등장한다. 본격적인 춘화를 제외하면 미술사 전면에 당당하게 얼굴을 내민 작품 중에서는 가장 에로틱한 것으로 보인다. 장본인은 사실주의 대표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 사회 현실을 심각한 분위기로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다소 의외다.

‘세상의 기원’이라는 작품인데, 여성이 가랑이를 쩍 벌리고 음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모습이다. 쿠르베의 뛰어난 묘사력 때문에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성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서 실제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는 여성의 출산 능력에 보내는 찬사라고 했지만, 세상은 호색가라 부르며 악평을 쏟아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예술계에서는 성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옹호했다. 이런 논란은 20세기로 이어지면서 페미니스트의 분노를 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서양미술사에서 가치 있는 회화로 인정받고 있다. 터키의 외교관 출신 컬렉터의 주문에 따라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칼릴 베이라는 인물인데, 에로틱 미술 수집가로 유명했다. 쿠르베는 동성애를 다룬 작품도 여러 점 그렸다. 역시 그의 주문으로 그린 것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잠자는 여인들’이다. 두 젊은 여성이 알몸으로 엉겨 붙어 곤하게 자고 있는 장면이다. 헝클어진 침대 시트와 여기저기 나뒹구는 장신구가 잠들기 전 두 여인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여인들의 탱탱하고 하얀 속살은 관음증의 엉큼한 속내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사실주의 미술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쿠르베의 솜씨 덕분이다.

이 그림은 동성애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에로틱한 분위기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주문자의 성향으로 볼 때 그림의 목적은 분명하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변태적 성적 관음증을 위한 춘화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춘화적 성격만을 위한 것으로만 보기에도 마땅치는 않다. 에로틱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지만 여성 누드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 현실에 관심이 많았던 쿠르베의 성향으로 볼 때, 당시 은밀하게 성행했던 동성애에 관심을 표명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관심을 에둘러 보여주는 작품이 몇 점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쿠르베의 예술성을 평가하는 데 거론되기도 한다. ‘센 강의 처녀들’과 ‘미역 감는 여인들’ 같은 작품들이다. 두 작품 모두 르 살롱 전에 출품해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미술사에서 에로티시즘을 품위 있는 아름다움으로 격상시킨 작가로는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와 에곤 실레(1890∼1918)가 있다. 두 사람은 에로티시즘에 접근하는 태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클림트가 성적 쾌감과 황홀 속에서 환상적 세계를 끌어냈다면, 실레는 성의 불안한 심리와 고통 속에 놓인 인간의 적나라한 몸을 보여준다. 클림트가 보여주는 성애는 황금빛 비단 침대에서 벌어지는 우아하고 노련한 성의 유희라면, 실레는 음습한 창고의 나무 침대 위에서 어설프게 치르는 사춘기 성장통에 가깝다.

클림트 하면 섹슈얼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여성과 화려한 색채가 떠오르고, 여기에 퇴폐적이며 자유분방한 화가의 이미지가 겹친다. 세기말 유럽 예술계의 자유정신이란 이렇겠거니 하고 넘겨짚게 되는 것도 클림트와 그의 그림에서 비롯됐다고 믿게 된다. 여성의 풍만한 아름다움을 담은 세련된 선, 육감적인 여성의 육체미 그리고 에로틱한 표정으로 완성한 에로티시즘 미학 덕분이다.

클림트는 빈의 카사노바로 불릴 정도로 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눴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채 묻혀 있다. 그래서 에로틱한 분위기의 작품이 신비감을 증폭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토록 부도덕하고 무절제한 사람이 아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주도면밀한 인물이었고, 빈둥거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부지런한 화가였다. 타고난 그림 재주로 열여덟 살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만큼 건실한 사고를 지닌 성실한 생활인이었고, 오로지 그림을 통해서만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랐던 철저한 예술인의 면모를 지녔던 인물이었다.

실레는 28년의 짧은 삶 동안 천재만이 가능한 놀라운 작품 세계를 완성했다. 두 살 때부터 그림에 재주를 보였던 그는 유난히 몸에 관심이 높았다. 열다섯 살 때에는 거의 완벽한 드로잉 실력을 보였고, 자신의 알몸과 여동생의 몸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10대 소녀의 몸을 탐색하듯 그리기를 즐겼는데, 이 때문에 아동 성 추행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에로티시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걸작으로는 ‘죽음과 소녀’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았던 천재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31년의 짧은 생애 동안 1000여 곡을 남겼다)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죽음이 소녀를 끌어안는다는 요절의 상징적 의미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남녀가 포옹하는 구성의 설정은 클림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키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키스’의 남녀가 클림트와 그의 연인이라는 은유 역시 이 그림에서도 통하고 있다. 검은 옷을 입은 죽음의 상징이 실레 자신이고, 소녀는 연인이었던 발레리에 노이칠이라는 해석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실레의 독보적 작품 세계를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발레리에는 원래 클림트의 모델이었다. 실레는 스물한 살 때 당시 열일곱의 발레리에를 만나 4년간 동거하면서, 생생한 에로티시즘을 완성한다.

이 작품을 완성할 무렵, 그들은 헤어진 뒤였다. 그래서 실연과 이별이라는 비극적 배경을 깔고 있다. 그런 분위기는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음울함에서 단박에 느낄 수 있다. 특히 고통과 체념의 표정이 역력하게 묻어나오는 남자의 초점 잃은 눈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포옹의 자세도 불안하다. 금방이라도 옆으로 쓰러질 듯 보인다. 배경의 어지러운 형상에서도 정신 분열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실레는 발레리에와 헤어지고 나서 에디트라는 여자를 만났고, 그녀와 결혼한다. 짧은 삶의 말년을 함께한 에디트는 따뜻한 심성의 여인이었다. 그녀를 모델로 그린 그림에서 행복한 분위기가 보인다. ‘죽음과 소녀’와 같은 구성의 ‘포옹’에서 그런 느낌이 나온다. 살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홍색으로 그린 남녀는 올 누드로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다. 실레와 에디트다.

에로티시즘 회화 하면 춘화를 떠올리게 되고 그 언저리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골적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림이 예술적 에로티시즘이다. (문화일보 4월 16일자 22면 9 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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