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 야구에서도 혈통은 먹힌다

2019. 5. 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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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전 세계 누비는 미국 야구 명문家'

[주간동아]

스캇 반슬라이크가 지난해 두산 베어스에서 뛰던 모습. [동아DB]
4월 26일(이하 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 센터'.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2회 말 공격을 앞두고 노란 드레드록스(레게머리) 위로 파란 헬멧을 눌러쓴 타자가 성큼성큼 타석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2만8688명 관중은 너나없이 일어서 이 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레게머리 선수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20).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괴수' 블라디미르 게레로(44)의 아들입니다. 아들 게레로가 이날 데뷔전을 치르면서 아버지 게레로는 아들을 메이저리거로 키운 235번째 메이저리거가 됐습니다. 동시에 아들 게레로는 아버지가 메이저리거였던 250번째 메이저리거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두 숫자가 차이가 나는 건 아들 두 명을 메이저리거로 키운 사례가 15번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프로야구 진출한 미국의 야구 가족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가운데는 케이시 켈리(30·LG 트윈스)가 부자(父子) 메이저리거 출신입니다. 포수 출신인 그의 아버지 팻 켈리(64)는 마이너리그에서 13년을 보냈지만 메이저리그 경기는 1980년 3경기 출전이 전부입니다. 그 대신 오랜 마이너리거 경력을 살려 1986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마이너리그 지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대체 외국인 선수로 두산 베어스에서 뛰었던 스캇 반슬라이크(33)도 부자 메이저리거 출신. 아버지 앤디 반슬라이크(59)는 1990년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보비 보니야(56), 배리 본즈(55) 등과 '킬러비 타선'을 구축했던 올스타 외야수 출신입니다. 스캇의 형 A. J. 반슬라이크(36)도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에는 실패하면서 형제 메이저리거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반면 쿨바 형제는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에도 형제 선수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당시 현대 유니콘스가 스콧 쿨바(53)를 지명했고, 동생 마이크 쿨바(1972~2007)는 2003년 두산에서 뛰었습니다. 참고로 야구경기에서 1, 3루 코치가 모자가 아닌 타격용 헬멧을 쓰게 된 건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1루 코치로 나가 있던 마이크가 타구에 맞아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친·인척 모이면 야구 이야기만 하겠네

kt 위즈의 외국인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 [동아DB]
쿨바가(家)를 비롯해 메이저리그 형제 선수를 배출한 가문은 총 389개며 총 802명이 형제 선수로 뛰었습니다. 여러 형제를 배출한 가문도 있다는 뜻입니다. 델라한티(Delahanty) 가문이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형제 메이저리거 5명을 배출해 이 부문 최다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델라한티 가문이 인원은 제일 많지만 출전 경기(3597경기)나 안타(4216개) 수에서는 알루(Alou) 삼형제에 뒤집니다. 펠리페(84), 매티(1938~2011), 헤수스(77) 알루 삼형제는 메이저리그에서 5129경기를 뛰면서 5094안타를 남겼습니다. 이 삼형제는 모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통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는데 1963년 9월 15일 경기 때는 나란히 외야 세 자리에 서기도 했습니다(좌익수 매티, 중견수 펠리페, 우익수 헤수스). 

사실 이 가문의 이름은 원래 알루가 아니라 로하스(Rojas)가 맞습니다. 제일 먼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펠리페 알루의 전체 이름은 '펠리페 로하스 알루'. 이 가운데 펠리페는 자기 이름(First Name)이고, 로하스가 아버지 쪽에서 물려받은 이름(patronym) 그러니까 성(姓)이며, 알루는 어머니 쪽에서 내려온 이름(matronym)입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스카우트가 알루를 성이라고 생각해 '펠리페 알루'가 됐고 자연스레 동생들도 알루라는 성을 쓰게 됐습니다. 

펠리페는 부자 메이저리거 출신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들 모이세스(53) 역시 원래는 모이세스 로하스가 맞지만 아버지가 알루이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는 모이세스 알루로 통합니다. 모이세스의 이복동생인 뉴욕 메츠 코치는 형만큼 유명하지 않은 탓에 루이스 로하스(38)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현역 시절 루이스는 마이너리그에서 8시즌을 뛰었지만 AAA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못했습니다. 

펠리페-모이세스 부자는 1990년대 초반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감독과 선수로 한솥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당시 몬트리올에는 펠리페에게는 조카(형의 아들), 모이세스에게는 사촌인 멜 로하스(53)라는 구원 투수도 있었습니다. 멜 로하스의 아들 멜 로하스 주니어(29)가 바로 kt 위즈에서 뛰는 외국인 타자 로하스입니다. 

이 가문 출신 중에는 알루 4명, 로하스 1명 외에 알루 삼형제와 사촌지간인 호세 소사(1952~2013)도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습니다. 이 가문에서 메이저리거를 총 6명 배출한 것입니다. kt 외국인 타자 로하스는 "마이너리그에서 뛴 것까지 모두 포함하면 친척 총 10명이 미국 프로야구 경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고 자란 게 야구뿐이라

NC 다이노스에서 맹활약한 후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에릭 테임즈. [동아DB]
범(凡)로하스 가문은 아시아 진출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매티 알루는 1974~1976년 일본 프로야구 다이헤이요(현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뛰었고, 멜 로하스는 2004년 말 대만 프로야구 싱농 불스(현 푸방 가디언스) 유니폼을 입은 적이 있습니다. 작은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아시아 야구가 은퇴 무대였지만, 마이너리그에서 8시즌을 뛰고 한국에 진출한 로하스는 여전히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로하스는 "에릭 테임즈(33·밀워키 브루어스)가 NC 다이노스에서 3년을 뛰고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지 않았나. 동기 부여가 된다. 나도 꼭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로하스가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하면 이 가문은 3대에 걸쳐 메이저리거를 배출하게 되지만, 로하스의 할아버지가 메이저리그에서 뛴 적이 없기 때문에 직계 3대는 아닙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92년 분(Boone) 가문을 시작으로 △1995년 벨(Bell) △1998년 헤어스톤(Hairston) △2010년 콜먼(Coleman) 가문이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 메이저리거를 배출했습니다. 이 가운데 분 가문은 가까운 미래에 4대 연속으로 메이저리거를 배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손자 메이저리거가 된 브렛 분(50)의 아들 제이크(20)가 프린스턴대 야구부에서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이크는 2017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때 워싱턴 내셔널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했습니다. 

4대 연속이 아니어서 그렇지 증조부와 증손자가 메이저리거인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1985~1988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왼손 투수로 활약한 빌 윌킨슨(56)과 1914~1916년 역시 투수로 뛴 짐 블루재킷(1887~1947)이 혈연으로 엮여 있는 것. 짐의 딸의 아들의 아들이 바로 빌입니다. 체로키족 피가 흐르는 짐은 1914년 9월 7일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투구 수 0개(주자 견제 아웃)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빌 관점에서 보면 할머니의 아버지가 짐입니다. 여러분은 할머니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알고 있나요? 할머니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물어보세요. 언젠가는 (저처럼) 물어볼 수 없는 때가 올 테니까요. 언제든, 바로 지금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늦을 수 있습니다.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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