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백은 고급화.. 다도는 가볍게 즐기는 '찻자리'로 대중화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2019. 5.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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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해림의 더 맛있는 맛] ②변하는 차 문화
茶, 커피공화국을 깨우다
밀크티·말차·보이차 '넥스트 콜라' 콤부차.. 고급 차 시장 성장세
커피한잔 대신 차 한모금
스타벅스 '티바나 바' 전세계서 한국만 운영
투썸은 TWG 단독수입 차 매출 30%이상 늘어
녹차의 한 부류인 말차는 씁쓸한 맛과 부드러운 고소함이 공존하는 차로 최근 새삼스러운 인기를 끌고 있다. /백이현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흐리멍덩한 아침을 깨우는 것은 명백히 커피의 일이다. 식사 후 비릿한 포만감을 누르는 것 또한 커피의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회의 등 사람을 마주 보고 앉은 자리에도 커피가 여지없이 등장한다. 연간 국민 1인이 마시는 커피가 512잔에 달한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이만하면 한민족은 커피의 민족, 한국은 손꼽히는 커피 공화국. 올해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한국인 챔피언이 부산에서 배출될 정도로 질적인 성장을 이뤘고, 양적인 성장도 못지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 초 배포한 '2018년 가공식품 소비자 태도조사' 조사 대상 중 1년간 커피를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95.6%에 달한다. 한국이 지난해 전 세계로부터 빨아들인 커피는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나타난 바로 무려 15만8385t(6억2729만달러어치)이다.

그에 비해 차 시장 규모는 고적하다. 커피가 득세 중인 음료 시장에서 이제까지의 차는 소수 선택지로 여겨졌다. 이미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을 때, 아예 커피가 몸에 받지 않는 이들이 그래도 무엇인가를 마셔야 할 때나 지지하는 대안적 음료쯤 되는 위치였다. 같은 통계에서 지난해 수입된 차의 양은 커피의 100분의 1, 1514t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나마 2014년 89t에 비해 17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커피의 대안 아닌 새로운 취향으로… 차 시장 성장세

그러나 커피와 차 시장 규모를 동일하게 비교한다면 이 '100분의 1'이라는 숫자는 착시다. 우리는 이미 모두 차를 마시고 있다. 위와 같은 조사에서 지난 1년 동안 차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 또한 85.8%다. 통계가 가리키는 숫자는 오직 수입량만을 나타낸 것이고, 커피는 국내 생산이 어려워 대부분 물량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 차 외에도 유자차부터 우엉차나 버섯차까지 국내에서 생산되는 온갖 차가 더 있다. 전체 차 시장 규모를 놓고 보면 2017년 4167억원으로 추정되며, 몇 년 사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올해 1월 펴낸 '2018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은 차 시장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건강을 생각하는 프리미엄 차에 대한 관심 증가'로 정의했다.



요리연구가 메이씨가 모던한 다기(茶器)로 철관음 차를 우리는 모습. /백이현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아닌 게 아니라 차를 둘러싼 업계 움직임이 몇 해 사이 심상찮다. 특히 급증하는 고급 차 수요에 재빨리 대응하는 움직임이다. 티백으로 종이컵에 우려 마시는 현미녹차로 상징되던 차 소비 패턴은 이제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를테면 커피 전문점들이 커피를 꾸준히 고급화하는 한편으로 비(非)커피메뉴 확장에도 힘쓰고 있다. 파리바게뜨, 파스쿠찌, 던킨도너츠 등 브랜드를 둔 SPC그룹은 작년 말 자체 제조 차 브랜드 '티트라'를 론칭하고 계열 브랜드에서 총 48종의 음료 메뉴를 선보였다. 티백 제품도 파스쿠찌에서 취급하며, 티트라 플래그십 스토어도 연내 개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 커피 전문점인 스타벅스도 2016년부터 진작 차 하위 브랜드인 '티바나'로 차 카테고리 확대를 꾀하고 있다. 전 세계 스타벅스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만 차에 특화한 '티바나 바'를 운영 중이며, 여섯 곳의 지점에서 티바나 바 전용 차 음료 메뉴를 판매 중이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차 브랜드를 수입하는 전략을 택한 곳도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1069개 매장을 운영 중인 투썸플레이스는 2017년부터 싱가포르의 차 브랜드 TWG를 독점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투썸플레이스 상품팀 관계자는 "비커피메뉴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보다 프리미엄한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TWG를 도입한 후 전체 차 카테고리 매출이 30% 이상 신장됐다"며 "명절, 가정의 달 등에는 선물 세트도 인기가 좋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중소 규모의 차 산업에서도 비커피메뉴의 비중은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2018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에 따르면 다류 소매시장 규모는 2017년 4167억원으로 추산됐고, 이는 2014년 3453억원에 비해 20.7% 증가한 수치다. 지난달 열려 5만여 명이 참석한 '2019 서울 커피엑스포'에서도 말차, 밀크티, 보이차가 음료 트렌드의 최신 유행임을 과시하는 한편 홍차, 청차 등 중국 차 외에도 각종 허브티나 기타 국산 차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차를 시큼하게 발효시킨 탄산음료 콤부차도 건강과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을 등에 업고 '넥스트 콜라'로 불리며 작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캐주얼한 문화로 차를 즐기는 새로운 취향, 찻자리

전반적인 고급 차 시장 성장과 맞물려 곁가지로는 취향과 문화로서 새롭게 차를 소비하는 신인류의 관점도 흥미로운 움직임을 자아내고 있다. 경험을 중시하는 가치 소비 시류와 맞물려 요즘 젊은 층에서는 '찻자리'라는 예쁜 말이 회자되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 술 대신, 커피 대신 제각각 취향의 차를 우려 나눠 마시는 자리다. 찻자리는 기존에 다회, 차회를 대체해 진지한 차 모임을 의미하며 쓰였으나 젊은 층에서는 형식을 완화한 캐주얼한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다.

여섯 명 규모의 프라이빗한 티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는 요리연구가 메이씨는 "차는 공부하는 이와 즐기는 이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차를 공부하는 쪽에서는 수십 년을 공부하고도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것으로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는 한편, 즐기는 이들은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기호식품으로서의 차의 맛과 향을 즐기는 데에 집중한다"며 "최근 젊은 층에서 유행 중인 찻자리는 엄격한 다도의 관습을 합리적으로 변형해 차와 차 문화 자체를 캐주얼하게 즐기고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고급 문화로서의 차에는 분명한 장벽이 존재했다. 문턱을 젊은 문화적 호기심이 허물었다.

차 업계 종사자들은 '효리네 민박'을 찻자리 유행의 의미심장한 시작점으로 꼽기도 한다. 앙증맞은 크기의 다기를 갖춰 놓고 보이차를 훌훌 마시는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모습이 털털하게 비춰지며 호기심 많은 젊은 층의 취향을 저격하며 차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지방 분해력이 있다는 설까지 더해져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보이차가 젊은 층에까지 확산되었다. 또한, 중국과 대만 여행이 잦아지며 고급 중국 차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보이차가 속한 흑차뿐 아니라 청차 등 중국의 여섯 가지 차 종류가 고른 관심을 받게 되기도 했다.

그 기세를 타고, 몇 해 사이 가볍고 부담 없이 차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다종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중 몇 곳을 골라 소개한다. 공통된 취지는 차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전무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 마치 가죽 공방이나 꽃꽂이 원데이 클래스처럼, 수많은 차 종류 중 취향에 맞는 차를 골라 나갈 수 있도록 조근조근 알려 주고, 초심자가 처음부터 갖추기는 힘든 다기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는 방법 또한 차근차근 알려준다.

광화문 고요채

'고요채'는 마천루 뒷골목에 솟은 나무의 여린 잎새들을 너른 창으로 내다보고 있다. 숨 막히는 적막 대신 나지막한 소리로 채워진 공간은 광화문 한복판이라 믿기 어렵다. 낮에는 차, 밤에는 술을 파는 이 낙낙한 공간을 운영하는 김나리 대표는 점심 시간 여유를 즐기는 직장인들이 커피 대신 차를 마시러 오거나, 조용히 일하거나 회의할 곳을 찾는 주변 전문직 종사자들이 단골층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회식을 대체한 친목 워크숍으로 원데이 차 수업 의뢰도 많다고 한다. 1인 9000원 하는 다도 메뉴에는 "다기를 사용하여 직접 차를 내려서 드실 수 있어요"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서호용정, 백호은침, 철관음, 금준미, 고수청병 등 열아홉 가지 낯선 이름의 차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좋아하는 맛이나 향의 취향을 말하면 적합한 것을 맞춰 골라 준다.

싱가포르 고급 티 브랜드 TWG의 차 제품. /투썸플레이스



타마유라 티 바에서 차를 준비하는 티 스페셜리스트.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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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알디프

홍익대 인근 경의선책거리 주변 골목 안 반지하에 자리 잡은 '알디프'는 자체 차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편, '티 테이스팅 코스'로 10대부터 30, 40대 여성층까지 폭넓은 인기를 끌고 있다. 딸이 먼저 왔다가 모녀간 데이트 삼아 다시 오는 일도 잦다는 것이 알디프 이은빈 대표의 말. 화장품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다 차 시장에 뛰어든 이은빈 대표는 "처음 차를 접하는 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스트레이트 티보다는 익숙한 과일이나 꽃향이 나는 블렌딩, 가향 차로 접근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밝혔다. 알디프의 티 테이스팅 코스는 파인다이닝의 코스 요리처럼 차를 풀어냈다. 잎차 외에도 밀크티, 차 칵테일까지 포함된 다섯 가지 차를 순서대로 맛볼 수 있다. 계절마다 주제를 정해 티 테이스팅 코스의 구성을 달리한다. 요가와 접목한 코스 등 이색적인 경험을 해볼 수 있다. 티 테이스팅 코스 가격은 시즌마다 다르지만 2만원 선.

서울숲 맛차차

지난해 5월 중순, 차 두 대도 맞물려 지나기 힘든 골목 안에 문을 연 맛차차는 말차만을 취급하는 티 카페. 서울숲과 담을 마주하고 있어 빽빽한 녹음이 통창에 가득 펼쳐진 광경으로도 이름났다. 예약제로 하루 네 번 2시간짜리 티 코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계절마다 코스 내용은 조금씩 달라진다. 예약 외에는 단품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데 말차와 다식 세트가 8000원으로 부담 없는 선이다. 주된 손님층은 20, 30대 여성이 압도적. 중장년층 차 애호가들도 종종 찾는다. 말차의 거품을 내는 '격불'을 직접 해볼 수 있어 티 클래스도 인기가 좋다. 국내 다원과 협업해 "한국 녹차의 깔끔함을 말차로 구현한" 고유의 말차 맛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봄의 티 코스는 인당 3만원이다.

반포동 타마유라

JW메리어트호텔 서울이 작년 리뉴얼 오픈하며 선보인 일식당 '타마유라'는 말하자면 복합 고급 일식 공간. 미로처럼 짜놓은 공간 곳곳에 구획을 나눠 각각 데판야키, 스시 오마카세, 가이세키 요리 등 다양한 일식 스타일 요리를 내는데, 요리와 어깨를 견주어 '타마유라 티 바'도 구획 중 하나로 선보였다. 좌석은 단 여섯 석. 일본식 다도의 격식을 완화한 편안한 '찻시간'을 고요하고 격조 있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일본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등급의 잎차와 말차에 완성도 높은 화과자를 곁들일 수 있다. 회당 여섯 명 정원으로 격주 운영하는 티 클래스는 4일 현재 5월 예약이 모두 끝났고 6월 클래스도 좌석이 몇 남지 않았을 정도로 인기다. 인당 7만원의 참가비로 완성도 높은 일본 차를 온전히 경험해볼 수 있는 만족도 높은 클래스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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