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콤' 하루 1000대 팔리던 화창베이, 파리만 날립니다

선전=오로라 기자 2019. 4. 3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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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전자상가의 몰락]
- 바보도 부자 되는 '대륙의 용산'
작은 매장서 억만장자 나온다던 中 최대 전자상가, 불황에 휘청
공실 쓰나미 '쿵푸차오' 시달려

"5평짜리 매대(賣臺)에서 억만장자가 나온다고요? 그건 10년 전에야 가능했던 얘기죠."

선전=오로라 기자

지난달 17일 오후 1시 중국 선전시 화창베이(華强北)의 신야저우(新亞洲)전자상가 1층. 한 전자부품 가게 사장 천(陳·42)모씨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천씨의 가게 앞 200m의 긴 통로에는 1시간 동안 지나가는 고객이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주변 가게 직원들은 엎드려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천씨는 "화창베이에 가게를 차리면 바보도 부자가 된다는 신화는 꺼진 지 오래"라며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빚지고 가게를 접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중국 IT(정보기술) 굴기의 상징인 화창베이가 휘청이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화창베이를 찾는 발길이 뚝 끊기면서 급기야 화창베이의 '쿵푸차오(空鋪潮·공실 쓰나미)'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145만㎡(약 43만9000평) 크기의 화창베이는 한때 연간 거래액만 2000억위안(약 34조원)에 이르는 '중국 최대 전자 상가'였다.

이날 상가에는 대낮인데도 셔터 문을 닫아놓은 점포가 수두룩했다. 주변 점포에 문의하니 "가게를 내놨는데 새로 입주할 사람을 못 찾아 전기료라도 아끼려고 문을 닫은 곳"이라고 했다. 상인 리옌(李燕)씨는 "화창베이가 한참 잘나갈 때는 여기에 점포 하나 얻기 위해서 몇 개월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며 "요즘은 최소 수십만위안(약 수천만원) 규모였던 권리금도 안 받을 테니 입점만 해 달라는 광고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중국 선전시 화창베이의 신야저우 전자상가 1층 매장에서 상인들이 가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가인 화창베이는 최근 고객이 크게 줄면서 가게 문을 닫는 상인이 많아졌다. /오로라 기자

◇'금싸라기 땅'에 부는 공실 쓰나미

화창베이는 스마트폰에서 게임기, 가전, 가상 화폐 채굴기에 이르기까지 취급하지 않는 부품이 없는 곳이다. 제품 설계도만 들고 가면 모든 부품을 사서 완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짝퉁 제품 제조지로도 악명 높다. 역설적으로는 중국의 전자 제조를 떠받친 부품 제조창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5~6년 전만 해도 상가 대부분은 공실률 0%에다가 임대료도 6개월마다 급등했던 곳이다.

지난 2009년 4월 중국 선전시 화창베이의 한 짝퉁 휴대폰 전문 매장에 수백명의 고객들이 몰린 모습. /조선일보DB

이날 찾아간 화창베이는 전혀 딴판이었다. 화창베이에서 15년 넘게 휴대폰 장사를 했다는 저우(周)모씨는 "원래 가게 5곳 운영했었는데 지난해 말부터 3곳으로 줄였다"며 "지금도 남은 점포 중 1곳을 내놓은 상황"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을 하루에 1000대 이상 팔았지만 요즘은 10대도 안 팔린다고 했다. 그는 "7~8년 전엔 1만8000위안(약 305만원)까지 치솟았던 월 임대료가 요즘은 9000위안까지 떨어졌지만, 그래도 새 임차인을 찾지 못한다"고 했다. 화창베이의 임대 중개 업체인 선전싸이거그룹의 자료에 따르면 면적 기준으로 2015년에 총 25만288㎡를 임대했었지만 지난해 6월에는 14만1157㎡로 줄었다. 이 지역에 대형 건물 수채를 보유한 선전화창그룹은 선전 1빌딩(3575개 점포)의 공실률이 2015년 5%에서 지난해(1~9월 기준) 8%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짝퉁 전자제품 안 팔리는 데다 중국 내수 경기 침체 덮쳐

상인들은 "화창베이의 핵심인 짝퉁 산업이 흔들렸다"고 했다. 예컨대 2000년대 말 화창베이에서는 '사스망(Sasm ang)'· '애니콤(Anycom)'과 같이 삼성을 베낀 휴대폰이 버젓이 팔렸지만, 최근에는 화웨이·샤오미·오포·비보와 같은 중국 업체들이 초저가 스마트폰을 쏟아내면서 오히려 짝퉁폰의 경쟁력이 사라진 것이다.

지난 2009년 4월 중국 선전시 화창베이의 매장에서 팔리던 '사스망(Sasmang)' 브랜드의 애니콤(Anycom) 휴대폰. 삼성 애니콜을 카피한 '짝퉁' 제품이다. /조선일보DB

한 상인은 "요즘은 1000위안(약 17만원)이면 쓸 만한 스마트폰을 살 수 있는데, 아무리 짝퉁을 만들어도 가격이 그보다 쌀 수 없다"고 말했다. 예전에 짝퉁이 넘쳐났던 소니·닌텐도의 게임기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상인 후잉(胡瑩)씨는 "근근이 남은 짝퉁 아이템은 에어팟(애플의 무선 이어폰)이나 애플워치·갤럭시워치(스마트워치) 정도"라고 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것도 악재다. 컴퓨터 부품과 노트북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최근 불황이 닥치면서 회사들이 전자제품 교체 시기를 뒤로 미루거나, 전체적인 구매 규모도 줄이고 있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할인전을 벌여도 물건을 살 고객의 주머니가 빈 상태니 효과가 없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화창베이는 '전자상가'에서 종합상가로 변신하고 있다. 화창베이 내 전자상가인 '웬왕상청'은 작년 말부터 건물 1~2층에 전자제품 매장과 재계약을 하지도 않고, 신규 매장도 안 받고 있다. 웬왕상청 관계자는 "1~2층에 남아 있는 전자 상가도 계약이 만료되면 내보낼 것"이라며 "전자제품 대신 화장품이나 패션 가게를 들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창베이(華强北) 중국 선전시 푸톈구에 있는 145만㎡(약 43만 9000평) 크기의 전자 상가 밀집 구역. 전자 기기 부품부터 모조 스마트폰, 가상 화폐 채굴기까지 다루지 않는 전자제품이 없는 '중국 최대 전자 상가'다. 한때 연간 거래액만 2000억위안(약 34조원)에 이를 정도였다. 4만여 점포에서 22만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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