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 식인종은 없다
다른 사람의 몸을 먹는 행위는 끔찍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동종포식(같은 종을 먹는 일)은 포유류에서 흔하지 않습니다. 포유류 바깥의 세계에서는 종종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어미 몸을 먹고 태어나는 새끼 뱀이나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거미 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역시 일상의 먹거리를 동종에서 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몸을 먹이거나,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있도록 자기 몸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자신의 유전자 번식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포유류에서 보이는 동종포식은 새로운 수컷이 집단에 합류할 때 암컷의 배란을 유도하기 위해 새끼들을 죽여서 먹는 경우입니다. 사자나 침팬지 등에게서 나타납니다. 이때 죽는 새끼들은 쫓겨난 수컷이 만들었던 새끼입니다. 이 역시 새로운 수컷이 자신의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습적으로 동종을 잡아서 식단에 포함시키는 종은 없습니다.
인류 역시 상습적으로 다른 사람의 몸을 먹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른 동물처럼 번식을 위한 동종포식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을 내주어서 아이가 태어나도록 하거나, 섹스한 다음 암컷에게 자신의 몸을 먹거리로 내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에서는 정글에서 살고 있는 원시인들에게 잡히면 가장 먼저 ‘잡아먹히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 유행한 ‘식인종’ 시리즈는 한국에서 코미디와 개그 소재로도 많이 쓰였습니다. 1989년에 나온 컬트 코미디 영화 <식인녀들이 사는 죽음의 아보카도 정글(Cannibal Women in the Avocado Jungle of Death)>도 원시인은 식인종이라는 등식에서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제가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가 촬영 장소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인류학과 교수가 교실 창문을 통해 도망치는 장면을 찍은 곳이 제 연구실 바로 앞이었습니다.
죽은 이의 몸을 나눠 먹는 의미
개그, 코미디와 영화 소재로 쓰이기는 하지만, 인류학계에서는 식인종 원시인이 없다고 봅니다. 식인종 가설이 학계에서 받아들여진 적이 있긴 있습니다. 1970년 미국의 저명한 보건 인류학자 스탠리 간은 ‘영양학적으로 부족한 식인주의(The limited nutritional value of cannibalism)’라는 제목의 논문을 미국 인류학지에 실었습니다.
영양 보충을 위해 사람 고기를 먹는 일을 정상 행위로 삼는 문화를 식인주의, 그런 문화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식인종이라고 한다면, 인류 역사에서 식인주의나 식인종이 한 번이라도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식인 행위는 아직도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주제입니다.
‘식인 행위의 증거’로 제시된 고인류 화석 대부분은 장례 풍습으로 죽은 이의 뼈를 다듬은 결과입니다. 장례 풍습으로 죽은 이의 뼈를 다듬는 행위는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럽 크로아티아의 크라피나 유적은 20세기 초에 발굴된 동굴로, 1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수십명의 네안데르탈인 화석 중에는 특히 젊은 여성과 아이가 많았습니다. 뼈가 부서져 있고, 칼자국이 나 있으며, 얼굴 부위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식인 행위의 증거로 해석되었습니다. 크라피나 뼈에서 보이는 칼자국은 짐승을 잡아먹기 위해 칼로 손질한 흔적이 아니라 ‘2차장’처럼 장례를 위해 뼈를 세심히 손질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다음에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기다린 뒤 다시 사체를 꺼내서 뼈를 정돈하는 일은 2차장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뼈에 붙어 있던 조직을 칼로 손질해서 깨끗이 정돈합니다.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에게는 독특한 장례 절차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모계 친족 여성들이 시신을 다듬으면서 살, 뇌, 장기 등을 먹습니다. 포레족의 장례 풍습은 쿠루가 전염병으로 돌았던 1960년대에 금지되어 더 이상 이런 장례를 치르지 않습니다. 아마존의 야노마미족 역시 죽은 이를 화장한 뒤 재를 죽에 섞어서 먹습니다. 이것은 죽은 이의 몸을 나눠 먹음으로써 죽은 이와 함께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물론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은 식인 풍습도 있습니다. 전쟁이나 복수전에서 잡아온 상대를 죽인 다음 심장, 피 등 상징적인 부위를 먹는 행위입니다. 증오의 상대를 먹음으로써 궁극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뜻입니다. 사랑도 미움도 모두 인간다운 열정이며, 이것이 식인 풍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 역시 2차장과 같은 의례를 치렀다면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일 뿐입니다.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의 신석기 시대 유적인 엘토로 동굴에서 발견된 인골에는 칼자국이 나 있습니다. 머리뼈에도 섬세한 칼자국이 있습니다. 머리뼈를 바가지 모양으로 다듬은 칼자국도 보이고, 끓는 물에 고아서 반들반들하게 만들었습니다. 바가지 모양으로 다듬어낸 머리뼈는 신석기 시대에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떠났던 유학길에서 동굴을 찾아 밤을 지내며 물을 떠 마신 바가지가 사람의 머리뼈였다는 것을 알고 큰 깨달음을 얻어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효대사의 이야기는 7세기경이므로 머리뼈 바가지가 발견되는 신석기 시대와 몇천 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머리뼈를 다듬어서 그릇으로 이용하는 풍습이 전설로 승화되었을까요?
그렇지만 사람 뼈에 남겨진 칼자국이 모두 장례의 흔적은 아닙니다. 1999년 발표된 프랑스의 네안데르탈인 유적인 물라 게르시 동굴에서는 장례가 아니라 식사를 위해 뼈를 칼로 손질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발견된 사슴 뼈에 남겨진 칼날 흔적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물라 게르시 동굴의 고인류는 12만 년 전으로 연대 측정이 되어 네안데르탈인임이 밝혀졌습니다. 동굴에서 발견된 어른 2명, 청소년 2명, 그리고 아이 2명의 뼈에는 사슴 뼈와 똑같이 뼈를 자르고 긁어내고 깨뜨린 흔적이 남았습니다. 살을 저며낸 흔적은 팔과 다리뼈는 물론이고 머리뼈와 턱뼈에도 남아 있습니다.
결국 네안데르탈인들은 우리가 옛날에 생각했듯이 식인종이었을까요? 먼저 떠나간 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장례를 치러주고 죽은 이의 몸 일부를 먹으며 그리운 사람과 하나 되기를 바랐던 지극한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좋아하는 고기를 먹기 위해 다른 사람을 잡아먹었을까요? 1999년 발표된 이후, 물라 게르시 동굴에서 보인 식인 행위의 흔적에 대해선 지난 20년 동안 논쟁이 붙었습니다. 물라 게르시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뼈 손질 흔적은 좀 달랐기 때문입니다. 장례 의식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과 반대 주장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환경 변화에 처한 네안데르탈인의 선택
드디어 12만 년 전 남프랑스의 기후에 대한 연구를 통해 네안데르탈인 식인 행위의 배경이 밝혀졌습니다. 잘 알려졌듯이 네안데르탈인은 수만 년 동안 빙하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냈습니다. 이들은 눈 덮인 계곡에서도 매머드나 순록처럼 큰 몸집의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빙하 시대에 이런 동물을 사냥해낼 수 있으려면 큰 몸집이 필요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다부진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지탱하기 위해 하루 평균 3000~5000㎉ 정도를 먹어야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당한 열량입니다. 프로 운동선수들이 하루에 필요한 열량과 맞먹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수렵 적응을 해오던 네안데르탈인들에게 큰 시련이 닥친 것은 13만 년 전 온도가 잠깐 상승했던 무렵입니다. 이때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2℃ 가량 높았습니다. 광활한 초원 지대는 눈 깜짝할 새에 우거진 숲으로 변했습니다.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은 매머드같이 거대한 몸집보다는 토끼같이 작고 빠른 동물에게 유리합니다. 네안데르탈인이 필요로 했던 엄청난 양의 고기를 제공하던 큰 몸집의 동물들이 사라졌습니다. 매머드 대신 토끼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물라 게르시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의 치아에는 성장기에 영양부족을 겪은 흔적이 보입니다. 굶주림 끝에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같은 네안데르탈인을 먹는 일이었습니다. 물라 게르시에는 사람의 치아 자국이 분명하게 나 있는 손가락뼈도 발견됩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이 다른 네안데르탈인을 먹은 일과 비슷한 극한상황은 인류 역사에서 종종 나타납니다. 식인 행위는 분명 있었습니다. 심지어 현대 사회에서도 식인이 용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데스 산맥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 예지요. 이들은 생존을 위해 죽은 동료의 시신을 먹었습니다. 미국에서 서부 개척을 위해 이주하다 길을 잃고, 결국 식인으로 연명하다가 모두 사라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극한상황에 몰려 예외적인 행위를 한 이들을 식인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오래전 네안데르탈인들은 현대의 2차장처럼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뼈를 손질했을까요? 신석기인들은 현대의 야노마미처럼 죽은 이의 일부를 끓여 먹음으로써 함께하려고 했을까요? 플라이스토세라는, 척박한 빙하기의 극한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선택을 했을까요? 평균 2℃만 상승해도 서로 잡아먹어야 할 정도로 먹을 것이 없어지는데 지금의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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