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오랜 친구같은 국립발레단과 6월에 이별"

김시균 2019. 4. 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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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인연 접고 퇴단하는 발레리나 김지영
20년전 무대서 선보였던
'지젤'로 마지막 시즌 장식
경희대 무용과 교수로
9월부터 학생들과 만나
"자신감·겸손 균형잡을 것
최태지·강수진 단장께 감사"
국립발레단 간판 스타인 발레리나 김지영(41)이 6월 '지젤' 무대를 마지막으로 퇴단한다. 발레 무대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며 9월 경희대 무용과 교수로 인생 2막을 열게 된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난 그는 "아직 실감이 안 나고 그저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퇴단을 고민할 시기이긴 했다. 그러다 작년에 특채 제의가 왔다. 애초 교수에 대한 꿈이 없었고 학력이 높지도 않은지라 어려운 일로 여겼다. 그러다 고민 끝에 수락했는데 지금도 머리가 하얗고 멍하다. 아, 원래 말을 잘하는 편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횡설수설하게 된다.(웃음)"

김지영이 국립발레단에 첫발을 디딘 건 1997년. 입단 두 달 만에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승급하면서 2001년까지 뛰었다. 이듬해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들어가 수석무용수로 7년여 동안 활동했고, 2009년 7월 국립발레단에 돌아온다. 14년간 함께한 국립발레단을 떠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 질문에 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갔다. 지나간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을 것이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위로 들던 그가 마음을 추스르며 간신히 말했다. "너무너무 그리울 것 같다. 정말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동료들과 함께한 시간, 농담을 주고받던 순간, 아침에 연습하고 무대에 서고 서로 곁에서 도와주던 모든 것이. 동료들 덕에 그동안 젊음을 유지했다. 그 젊음 역시 매우 그리울 것 같고…."

무대 위 김지영은 언제나 빛났다. 때로는 관능적이었고, 때로는 단아했으며, 때로는 더없이 우아했다. 지젤과 줄리엣, 오데트 공주 등에 이어 지난해 팜파탈 여인 마타하리도 성공리에 초연했다. 김지영은 "1~2년 전부터 '아, 이 작품이 이제 내 생애 마지막 작품이겠구나' 하는 심경으로 임하게 된다"고 했다.

"아직 '지젤'이 남았지만 이것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매 작품 끝내고 나면 '이것도 이젠 안녕이겠지' 하는 심경이다. 작년에 예술의전당에서 올린 '호두까기인형'도 그랬다. 많이 애틋한 감정까진 아닌데 뭐랄까, 덤덤하면서도 온갖 감정이 밀려든다."

그가 퇴단작으로 택한 '지젤'은 농가 출신 소녀 지젤과 백작 앨버트의 사랑을 그린다. 이루기 힘든 관계의 애틋함과 죽음마저 초월한 사랑의 영원성을 그린 로맨틱 발레다. 마지막 무대로 '지젤'을 고른 이유가 뭘까. "언제나 숙제로 남아 있던 작품인지라 의미가 남다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프로 생활을 시작할 때 많은 이가 내가 발랄한 이미지가 어울린다고 했다. 속으로 '아닌데'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20년 전인 1999년 '지젤' 첫 공연 직후 확 빠져들지 못한 찝찝함이 남았던 건 그래서일지 모른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지젤 같은 비련의 여주인공에 점차 매료됐다. 갈수록 여운이 짙어졌달까. 이젠 어느 정도 숙제를 푼 느낌이다."

숙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세월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화제는 자연히 무용수의 나이 듦으로 옮겨 갔다. "춤을 좀 알 것 같으면 무대에서 퇴장하는 게 무용수의 운명"이라고 했다. "예전엔 내가 잘난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젠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제3자의 눈으로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거기에서 오는 혼란도 있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알겠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과 겸손함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을."

그간 함께해 온 두 단장 얘기를 꺼냈을 땐 그의 눈망울에 다시금 이슬이 맺혔다. 최태지 단장과 그는 입단 첫해부터 2013년까지 함께했다. 최 단장이 가장 아끼는 무용수이자 국립발레단의 성장을 같이 지켜봐 온 동지다. 2014년부터 함께하고 있는 강수진 단장과는 사석에서 '언니'라 부를 만큼 가까운 선후배 사이다.

"최 단장님은 지금의 나를 국립발레단 얼굴로 만들어주신 분이다.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눈물을 참으며) 마지막 6년의 마무리는 강 단장님과 하게 됐는데,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마흔이 되면 춤추는 게 오히려 더 편해질 거다.' 내 마지막 무대를 어떻게 장식해야 할지 알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난 어렸을 때부터 정말이지 외로운 아이였다. 아마 이 발레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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