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바늘구멍' 뚫고 취직했지만.. 출근 첫날부터 이직 꿈꿔 [연중기획 - 청년, 미래를 묻다]

남혜정 2019. 4.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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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빙하기에 우는 에코세대 /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취업난 직격탄 / 인구 많은데 불황 장기화.. 경쟁 극심 / 평균 26번 지원서 내고 합격통보 1회 / 대부분 "일단 붙고 보자" 묻지마 지원 / 신입사원 80%가 "처우 불만.. 구직 중" / "청년·기업 미스매치 심각.. 정부 나서야"
“지원하는 분야의 상반기 공채가 전혀 없다는 게 얼마나 불안한지 몰라요. 당장 취직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무기력해지고 공부에 집중도 안 되네요.”
2년10개월째 금융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정모(27·여)씨는 “취업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정씨는 행정고시에 두 차례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바로 일반기업 취업으로 전환했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정씨는 “고시를 계속 준비하고 싶었지만 생활비를 제외하고 학원비 등으로만 18개월간 1000만원이 넘게 들었다”며 “더 이상은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고시 공부로 남들보다 늦게 취업 준비를 시작해 심적 부담이 큰 데다가 공기업 사무직의 경우에는 1차 서류에서만 경쟁률이 100대 1이 넘을 정도로 치열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에코세대’로 불리는 20대 중·후반 청년들이 취업난으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에코세대는 1979년부터 1992년 사이 태어난 20∼30대 청년들로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를 일컫는다. 부모세대의 인구 규모가 자녀세대에 메아리처럼 돌아왔다는 의미다. 이들은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사회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취업의 벽’ 앞에 좌절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다른 세대에 비해 인구 규모가 큰 데다가 장기적인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고용시장도 얼어붙은 탓이다.
취업준비생이 특별히 준비한 자기소개 패널을 손에 든채 한 은행의 현장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평균 26번 원서 내고 최종합격은 1회”

정부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과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다양한 일자리 정책을 통해 실업률 등 고용지표가 개선됐다고 하지만, 청년들이 체감하는 구직 현장은 ‘빙하기’다.

23일 통계청의 만 15∼29세 청년 체감실업률을 살펴보면 지난해 11월 21.6%에서 지난 2월 24.4%, 지난달 25.1%로, 매달 통계 작성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지난 2월 구직자 45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취업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구직자들은 평균 26개 기업에 지원서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서류전형 합격 횟수는 평균 3회였고, 최종합격을 통보받은 경험은 평균 1회에 그쳤다. 그러나 절반이 넘는 61.1%가 최종합격을 하고도 입사를 포기한 것으로 집계됐다. 입사를 포기한 이유로는 ‘연봉·복리후생 등의 조건이 안 좋아서’(50.3%)를 1순위로 꼽았고 ‘입사지원 시 생각했던 기업과 실제가 달라서’(37.1%),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 따로 있어서’(23.2%) 등이 뒤를 이었다.
취준생인 양모(27)씨는 “약 1년6개월 동안 30번 넘게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며 “준비기간이 길어지면서 올해 이후에는 다른 분야도 지원을 해서 무조건 취직을 해야겠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했다. 서울의 한 벤처기업에 입사했다가 퇴사한 박모(28·여)씨는 “정부에서 인력 미스매치를 해소하겠다고 나섰지만 연봉과 처우 등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공기업이나 대기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주변에서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실력을 더 쌓아 연봉이나 처우가 더 좋은 회사에 지원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취업 성공했지만 처우 등에 만족 못 해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이직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 취업 전쟁 속에서 일단 합격하고 보자는 식으로 지원하다 보니 회사의 상황이 본인의 적성이나 희망사항과 달라 실망하는 것이다.
취업사이트 잡코리아에서 지난해 취업에 성공한 신입사원 6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9.6%가 ‘구직 중이거나 이직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가장 불만인 요소는 ‘기대에 못 미치는 연봉 수준’(55.6%)이다. 이밖에 ‘이렇다 할 것 없는 복리후생 제도’(38.6%)와 ‘이 회사에서는 성장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30.1%) 등이 꼽혔다.
지난해 상반기에 서울 소재 한 기업에 입사한 뒤 이직을 생각 중인 정모(29)씨는 “‘일단 어디든 들어가서 시작하자’라는 생각으로 회사에 대한 정보나 성향, 경영 상태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섣부르게 입사했다”며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심하고 회사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아 소수 인원이 과도한 업무를 하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일반기업에 근무 중인 정모(27)씨도 “바라던 일은 아니었지만 취업 경쟁률이 높다 보니 원하는 한 군데만 바라볼 수 없어서 여기저기 지원하다 합격했다”며 “연이은 서류 탈락으로 자신감도 하락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최근 만 23∼36세 1633명(남성 863명, 여성 770명)을 분석한 ‘에코세대의 불안 관련 요인’ 연구를 보면 에코세대는 비정규직일수록, 월 가구소득이 낮을수록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과거에는 당연하게 생각됐던 정규직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면서 에코세대가 안정적인 사회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며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부정적 반응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년들과 기업 양측 간 미스매치 줄여나가야”
전문가들은 기업과 청년층 간의 소통을 높여 미스매치를 줄여가는 동시에 노동시장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과)는 “신규고용 주저하는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경기 침체가 결합하면서 청년실업이 악화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경직성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노동시장 체질을 바꾸는 일은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핵심적”이라고 덧붙였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는 “일자리는 자기실현 수단의 하나이기에 (현재 취업난은 청년들에게) 정체성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실존적 위협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청년세대는 일을 자기실현의 방법이자 삶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만 기업들은 조직을 위해 몰입해서 일하는 사원을 원하는데 이 사이에서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결국 기업과 청년이 서로 간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과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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