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억'소리 나던 연봉에서.. 이젠 '악'소리 나는 신세로

정경화 기자 2019. 4. 2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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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요즘 애널리스트 "아 옛날이여"
여의도 족집게 애널리스트들, 그들은 왜 비인기 종목이 됐나

한때 '자본시장의 꽃'이라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목표 주가를 맞히지 못하면 투자자들에게 비난받기 일쑤고, 증권사에서는 수익을 더 많이 내는 기업 금융(IB)이나 자산 관리(WM) 조직에 밀리는 추세다. 업무 강도는 여전히 센데 일부 스타 분석가가 아니면 연봉도 기대만큼 높지 않다. 애널리스트들은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돈 많이 주는 자산 운용사 펀드매니저로 전직하기도 하고, 인터넷 방송이나 강연 등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과 접점을 넓히는 경우도 있다.

/그래픽=박상훈

◇선망 직업 1순위에서 구조조정 1순위로

국내에서는 IMF 위기 이후 주식시장이 반등하면서 애널리스트 전성기가 시작됐다. 반도체나 바이오 등 신산업이 발전하면서, 해당 분야 전문 인력을 모시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당시에는 애널리스트로 데뷔하면 연봉이 1억원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시장에 돌기도 했다. 대학생 선망 직업 1위에 애널리스트가 오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국내 애널리스트는 1020명으로 전년보다 52명 줄었다. 애널리스트는 2010년 1575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리서치센터 규모를 2017년 말 76명에서 현재 54명으로 급격히 줄였다. 증권사 신입 사원의 1지망 부서도 더 이상 애널리스트가 일하는 리서치센터가 아니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 대표는 "똘똘한 신입 사원일수록 애널리스트가 아니라 기업 금융(IB)이나 파생 상품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증권사들의 수익 구조가 브로커리지(주식 위탁 매매)에서 기업 금융이나 자산 관리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개별 종목 분석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줄어들었다. 애널리스트들의 고객인 기관투자자도 국내 주식시장보다는 해외 투자, 대체 투자 비중을 높이는 추세다 보니, 자연히 리서치센터의 이익 기여도가 낮아졌다. 증권업 업황이 좋지 않으면 '비용 부서'라는 리서치센터가 구조조정 1순위에 오른다. 20년 경력의 한 유명 애널리스트는 "사내에 리서치센터를 키워봤자 돈이 안 된다는 시각이 커졌다"며 "좋은 애널리스트를 외부에서 영입하지도 않고, 잘하는 애널리스트가 다른 회사로 간다고 해도 잡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다른 증권사로 자리를 옮겼다.

◇억대 연봉도 옛말 그렇다 보니 억대 연봉도 옛말이 됐다. 업계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요즘 '잘나가는' 시니어급 애널리스트 연봉이 약 2억~3억원 정도다. 경력이 짧은 애널리스트 연봉은 평균 7000만~8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한 중형 증권사 임원은 "기업 금융 본부의 한 과장급 직원이 지난해 연봉 5500만원에 성과급을 10억원 받았다"며 "애널리스트가 다른 직종에 비해 많이 받긴 하지만, 성과급 수준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분석 기업에 대해 소신껏 '매도' 의견을 내놨다간 해당 기업에서 문전박대당하고, 반대로 '매수' 의견을 내놨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에게 거센 질타를 받는다는 애널리스트들의 푸념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과 투자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커서 애널리스트가 가진 기업 정보 가치가 높았지만, 정보기술 발달과 공시 제도 정착으로 그 의미도 점차 퇴색한다는 평가다. 지난 2015년 한미약품 미공개 정보 유출 사건 이후, 금융 당국이 증권사 임직원의 불공정 거래 처벌 기준을 강화한 것도 애널리스트 인기가 한풀 꺾인 계기가 됐다. 이제는 애널리스트가 상장사의 미공개 중요 정보나 미발표 정책 정보를 펀드매니저 등에게 전달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살길 찾아 변신하는 애널리스트들

최근 애널리스트들은 제각기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연봉이 높은 자산 운용사 펀드매니저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지만,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이나 블로그를 통해 개인 투자자들에게 다가가는 애널리스트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보고서 내용을 투자자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실시간으로 고객의 궁금증을 상담해준다.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들은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하루에 3~4개씩 투자 전략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고 있는데, 구독자가 2만3000명에 달한다.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들도 올해 초부터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실시간 투자 설명회를 매달 열고 있다.

리서치센터들도 국내 주식만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수는 줄이고 최근 투자 트렌드에 맞게 글로벌 투자 정보를 분석하거나 자산 배분 전략을 짜는 팀을 신설하고 있다. 예컨대 현대차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을 위해, 현대차뿐 아니라 도요타와 같은 글로벌 경쟁 업체에 대한 정보도 같이 제공하는 식이다. 오태동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한국 주식시장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불과하다"며 "이제 애널리스트들도 국내 주식시장, 자기 전문 업종에 국한하지 않고 넓은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AI가 황금알로 바꿔드립니다" 로봇에 치이는 인간 애널리스트

'찬바람'을 맞고 있는 애널리스트 업계의 또 다른 복병은 인공지능(AI)이다. 금융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역할을 로봇이 대신하면서 애널리스트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 투자 회사들은 이미 자체 로보어드바이저를 개발하거나 관련 스타트업을 사들이면서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AI '켄쇼(Kensho)'는 연봉 50만달러를 받는 인간 애널리스트가 40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불과 몇 분 안에 처리하는 능력이 있다. 예컨대 최근 30년간 미국 S&P500 지수가 두 달 만에 5% 이상 오른 적이 몇 번 있었는가, 지난 10년간 겨울 한파가 닥쳤을 때 상승하는 종목은 무엇이었나 같은 질문에 켄쇼는 뚝딱 하는 순간 답을 내놓는다. 켄쇼의 능력을 확인한 골드만삭스는 지난 2017년 직원 600명을 줄이는 대신 컴퓨터 엔지니어 200명을 채용했다. RBS도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을 통해 투자 자문 인력 550명을 감축했다.

우리 증권 업계에도 로보어드바이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금융 당국은 최근 로보어드바이저의 펀드 자산 운용을 허용했다. 지금까지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하더라도 최종적인 투자 의사 결정은 인간 전문가가 내렸지만, 앞으로는 로봇이 혼자 결정할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공시 정보를 빨리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로봇에 금세 따라잡힐 것"이라며 "더 깊이 있는 분석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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