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LH 믿고 디자인 건넸는데"..금강수변공원에 떡하니 설치된 위작 조형물

이가영 2019. 4.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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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박용남(55) 작가가 디자인한 조형물 3D 이미지(왼쪽)와 금강수변공원에 설치된 위작 조형물. [사진 박용남 작가 제공]
30년 동안 조각을 해온 박용남(55) 작가는 지난 2013년 8월 세종시에 있는 금강수변공원에 설치할 조형물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사를 주관하는 곳이었기에 박 작가는 별다른 의심 없이 대행 디자인 회사를 통해 조형물 자료를 건넸다. 소설 ‘어린 왕자’를 모티브로 한 조형물의 3D 이미지 정면도, 평면도, 좌우 측면도 등이었다. 이후 업체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박 작가는 계약이 무산됐다고 여기고 잊고 지냈다.

5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박 작가는 갑자기 디자인 회사 대표로부터 항의 연락을 받았다. 금강수변공원에 박 작가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며 “자신 몰래 건설사와 직접 계약했느냐”는 것이었다. 회사 대표가 보내온 사진 속에는 박 작가가 건넸던 이미지를 고스란히 따라 한 조형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색상과 모양, 사막여우와 코끼리 등 작품을 이루는 구성요소도 완전히 일치했다. 확인 결과 LH의 하청을 받은 공사 시공 업체가 박 작가 몰래 그가 전한 디자인을 도용한 위작 조형물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디자인 특허 등록했는데 위작조형물 등장
박 작가는 해당 조형물에 대한 디자인 특허를 등록해놓은 상태였다. 이를 토대로 명백한 지적 재산권 침해라고 생각해 시공 업체인 H개발에 위작조형물 철거와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협의는 결렬됐고 박 작가는 결국 H개발을 상대로 지난 3월 고발장을 접수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경기 분당경찰서에 사건을 내려보내 현재 분당서에서 사건을 조사 중이다. 분당서 관계자는 “지난주 고소인 추가 조사를 마쳤고, 피고발인 조사를 앞두고 있다. 절차대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작가는 “위작은 심지어 옥외조형물로 설치되기엔 조악하고 흉물스럽게 제작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설사는 작품 도용을 인정했지만, 죄의식은 없는 것 같다. 만감이 교차한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박용남 작가가 대행 디자인 업체를 통해 전달한 조형물 3D 이미지(위)와 실제 금강수변공원에 설치된 위작 조형물 모습. [사진 박 작가 제공]


"2차 하청업체에서 위작 만들어"
H개발 측은 위작을 세웠다는 점은 인정했다. H개발 관계자는 “우리도 다른 업체에 2차 하청을 줬는데, 그곳에서 위작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업체가 현재 폐업 상태이다 보니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위작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박 작가가 너무 높은 금액을 원해 합의가 결렬됐다”며 “최대한 수사기관에 협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원청인 LH 측에도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문제 해결에 있어 LH 측은 조금도 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중간에 끼인 우리만 힘들어졌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LH 측은 “하도급사가 대행 디자인 업체와 설치 금액 협의가 이뤄지지 않자 작가에게 의뢰하지 않고 다른 업체를 통해 조형물을 만들어 설치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위작이 설치된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해당 사건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에는 반박했다. LH 관계자는 “박 작가 측의 요청으로 지난해 10월 해당 조형물은 공원에서 제거했다”며 “박 작가와 시공사 간 원만한 해결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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