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의 퍼스펙티브] 강사법으로 대학 교육 파탄 나는데도 교육부는 불구경

2019. 4. 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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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처우 위한 강사법으로
이미 2만 명이 일자리 잃어
턱없이 부족한 대학 공교육비
확 늘려 대학 교육 정상화해야

강사법의 현실
지난달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개정 강사법에 반대하는 참가자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젠장, 100원만 더 주지.”

1999년 4월 어느 날, 교육자로서의 첫 월급 명세서를 받아 들고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말이다.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사회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고등학생 때부터 품었다. 국내에서 학부 4년, 석사 2년, 미국에 유학해서 박사 6년 반. 합쳐서 12년 반이라는 세월을 그 꿈에 바쳤다. 그리고 내가 받은 한 달 강의의 대가는 24만9900원이었다. 100원만 더 주면 25만원이 될 수 있었는데. 흩날리는 벚꽃 아래 100원의 결핍이 그리도 서운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사의 삶은 달라진 게 없다. 쥐꼬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데 그나마 방학 때면 끊어지는 수입, 피교육자인 학생들조차 만만하게 대하는 불안정한 지위, 다음 학기에는 어느 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가르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에 위태롭다.

박사 논문을 끝마치면 연구자의 삶에서 가장 생산적이어야 할 시기가 시작된다. 10여년간 축적해온 지식과 아이디어, 연구 방법과 통찰력을 마음껏 발휘해서 연구 업적을 쏟아내야 할 창의성의 시기다. 이 시기에 우리의 연구자들은 생계비에 못 미치는 돈을 벌며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박사 학위 소지자 중 아주 일부만 교수가 될 수 있다. 그나마 교수가 된 소수조차 인문사회계의 경우 평균 43~44세에 처음 교수가 된다. 대학 졸업 후 20년간 불안정한 삶을 산 끝에 간신히 교수가 되는 것이다. 연구자들을 이렇게 대우할 거면 혁신이니, 노벨상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게 도리다. 당신이라면 한 달에 24만9900원 받으면서 노벨상에 도전하겠는가.

그래서 나온 것이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이다. 이 법이 앞서 설명한 강사의 현실, 더 나아가 이 나라 교육과 연구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까. 강사법의 주요 내용을 보자. 올해 8월 1일 이후 임용되는 강사는 전임 교원의 지위를 가지고, 강의하는 과목 수와 상관없이 1년 단위로 계약하며, 3년까지 재임용 절차가 보장된다. 1년 내내 3대 보험이 보장되고 방학 때도 급여를 준다. 강사가 맡는 강의는 학기당 6학점(보통 두 과목) 이하로 한다. 의도대로라면 강사의 지위는 대폭 안정되고 급여도 늘어날 것이다.

현실은 일대 혼돈이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금까지 강사가 가르쳐온 과목이 네 개가 있었다고 치자. 새로운 강사법 하에서 네 개의 과목을 각각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강사를 초빙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1년에 한 과목이라도 강의하면 전임 교원으로 채용하고 3년간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네 개의 과목을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강사를 각각 초빙하면 네 명을 채용해서 3년간 보장해야 하는데, 현재의 대학 재정으로 어림도 없는 얘기다.

강사법에 학기당 두 과목 이하로 강의하게 되어있으니 결론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한 명의 강사를 채용해서 1년에 네 개의 강의를 맡기는 것이다. 그가 나머지 세 과목을 잘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강사법의 요구와 대학의 재정을 조합해보면 그것밖에 답이 없다. 대략 한 달 후면 새 강사법에 따라 9월 1일 자로 임용될 강사들에 대한 공채가 시작될 텐데, 지금까지 강의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오던 강사의 다수는 임용될 수 없을 것이다.

비정규교수 노동조합의 추산에 따르면 전국의 약 7만5000명의 강사 중 이미 2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나는 다음 학기가 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수가 결국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상당수 대학은 강사 과목을 아예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렇지 않은 대학들도 과목을 줄이거나 혹은 임용된 소수의 강사에게 최대한 많은 과목을 맡길 것이다.

강사법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이 있기는 있는가. 대학은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 강의의 질이 떨어지고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강의의 수가 줄어든다. 임용되지 못하는 다수의 강사는 생계가 막막해진다. 게다가 향후 3년간 새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신진 연구자들은 지원해볼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없을 것이다. 그나마 임용되는 소수의 강사도 한 학기에 두 과목으로 제한된 강사료를 가지고는 생계는 턱도 없을 것이다. 모든 학교에 강사법이 적용되니 다른 학교에 가서 추가로 강의할 수도 없을 것이다. 대학은 임용된 강사에게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많은 강의를 맡길 테니 잘 알지도 못하는 과목을 강의하게 되는 괴로움은 덤이다.

알고 지내는 현직 강사 6명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도 강사법에 찬성하지 않았다. 주변에 찬성하는 강사도 한 명도 없단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흔히 접하게 되는 반응은 대학을 악마화하는 것이다.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철밥통이라고 말하면 진짜 책임질 사람들은 비판에서 벗어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일각에서는 대학 재정의 2~3%밖에 안 되는 강사료에 대학이 엄살을 피운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이 2.5%, 기아자동차의 영업이익이 2.1%였다. 대학 재정의 2~3%가 그리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돈인가? 대학 등록금은 10년째 묶여있고 학생 수는 줄어들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2~3%를 쉽게 꺼내 쓰고도 멀쩡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총장으로 모시겠다는 대학이 줄을 설 것이다.

대학의 재단 적립금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도 한다. 적립금을 당장 꺼내 쓰면 교육과 연구를 위한 투자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당신의 자녀들이 10년 후에도 지금과 똑같은 강의를 받아도 상관없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적립금에서 강사료를 지급하다 10년 후면 적립금조차 고갈될 수 있다. 적립금으로 부동산 투기하는 게 아니냐고? 그런 대학들도 있을 것이다. 법과 정관이 정한 목적 이외의 투기 목적에 적립금을 쓰는 대학이 있다면 철저히 조사해서 그 대학만 엄벌하면 될 일이다. 전체 대학을 악마화한다고 해서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회와 교육부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비정규 교수 노조는 강사법으로 인해 2000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대학들은 3000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맞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강사법을 시행하면서 국회가 통과시켜준 예산은 288억원뿐이므로. 대학이 예수님이 아닐진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행할 수는 없다. 결국은 부담의 상당 부분을 강의 수 축소와 같은 형태로 강사들과 학생들에게 돌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국회도 교육부도 이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의 근원과 해법은 어디에 있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자(그래픽 참조). 2014년 한국의 고등교육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9570달러로, OECD 꼴찌에서 여섯 번째다. OECD 평균의 절반을 조금 넘고, 슬로바키아·체코·폴란드보다 낮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 교수에 따르면 스탠퍼드 대학의 1년 재정이 7조5000억원인데 한국은 400여 개 대학을 통틀어 2조9000억원이다. 이 상태에서 대학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가장 시급한 강사 문제를 포함하여 대학을 정상화하려면 현실을 인정하고 고등교육 재정에 돈을 써야 한다. 국회-교육부-대학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대학에 폭탄 돌리기를 할 일이 아니다. 정책의 결과가 정책의 의도와 정반대로 가지 않도록, 정상적인 정책을 설계할 때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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