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의 티타임] End 아닌 And..'에스카' 김인재의 끝나지 않은 전설

지난 1월 12일 2019 PUBG 아시아 인비테이셔널(PAI)의 막이 내리고 2019 PUBG 코리아 리그(PKL) 페이즈1의 개막이 다가오자 많은 사람은 '에스카' 김인재의 행보에 주목했다. 91년생이기에 군대 문제가 걸려 있어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인재는 은퇴 대신 스트리머 전환을 선언했다. 김인재는 군 제대 후 선수 복귀를 꿈꾸고 있기에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은 셈이다.
김인재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뤄낸 업적은 '전설'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2009년 스페셜 포스 선수로 데뷔한 김인재는 스페셜 포스, 스페셜 포스 2, 블랙스쿼드,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에서 우승을 기록했다. 모든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오버워치 루나틱-하이 선수 시절 그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새로운 활로를 찾았을 때도 평가절하 당했다. 그럼에도 김인재는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고, 한국 e스포츠 역사상 5개 종목에서 우승을 일군 유일무이한 프로게이머라는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더불어 2018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8 PUBG 글로벌 인비테이셔널(PGI)에서 차지한 3인칭 우승은 한국의 FPS 강세를 보여준 신호탄이었다.
당장은 선수가 아닌 스트리머지만 김인재는 종목, 팀, 신분이 바뀌어도 한결같이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 고민하고 피드백을 통해 발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수 생활 때 못지 않게 방송에 정성을 기울이며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인재. 아직 끝나지 않은, 잠시 쉬어가는 기간을 갖게 된 '한국 FPS의 전설' 김인재로부터 지난해의 이야기와 현재를 들어보았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새로운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로게이머에서 스트리머로 전향한 '에스카' 김인재라고 합니다.
스트리머로 전향하면 자투리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프로게이머 때처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대신 그 시간을 방송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프로 시절 때 방송은 팬들과 소통하는 정도로 생각하며 서너 시간만 방송했어요. 이젠 스트리머가 주된 일이다 보니 방송 시간도 10시간 정도로 늘리고 마냥 게임에서 실력만 보여주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재밌는지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됐습니다.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더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이 군 문제로 휴식기를 가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 기분이 어땠나요
프로 생활을 워낙 오래 했고 몇 년 동안 달려서 많이 지쳐있었어요. 막상 그만두니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선수들이 경기를 뛰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습니다.
예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승하면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쉬운 점이 있었던 걸까요
제 생활 자체가 프로게이머에게 적응되어 있었고 그 삶이 잘 맞았어요. 경기하는 것이 재밌기도 하니까요.
특별한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어요. 시즌 사이사이 어떤지 물어보고 우승했을 때 축하한다고 말해줬습니다. '멘틀' 임영수와 '빠뽀' 최성철 모두 원래 잘 하는 선수인데 이번 시즌에 기량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젠지 소속일 때 휴식을 취하며 입대를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이적 소식이 나왔죠. 당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요
원래 박수칠 때 떠나자는 마음으로 그만 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경기력이 좋고 자신감도 있어서 그만 두기엔 아쉬웠고, 국내 리그 우승을 해보지 못해 한 번만 더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젠지에서 뛰려고 했는데 국제 대회를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걸렸죠. 그 때 OP게이밍에서 공식적으로 이적 제의가 왔고 군 문제도 도와주고 연봉도 최고 대우를 해준다고 했어요. 팀원들도 제가 인정하는 선수들이자 같이 해보고 싶어서 고민 끝에 이적하게 됐습니다.
제홍이가 군대에 있었을 때를 빼면 계속 같은 팀이었어요. 그런데 어차피 제홍이는 오버워치 리그 때문에 미국에 갈 예정이어서… 같이 있는 것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야 했죠.

OP게이밍 레인저스로 이적한 후에도 응원하겠다는 팬분들이 많았습니다
팬들은 제 선택을 믿어주시는 분들이에요. 사실 젠지에서 이적할 때 욕 먹을 것도 생각했는데 제 선택을 따라주신다고 하셔서 감동 받았습니다.
PGI에서 한 차례 정점을 찍은 후 국내 대회 우승을 새로운 목표로 잡고 도전해보니 어땠나요
제가 OP게이밍 레인저스에서 2018 PKL 하반기 리그 정규 시즌 3위, 결승전 준우승, 그리고 PAI 5등을 기록했어요. 하나라도 우승했으면 좋았을 거예요. 잘하긴 했지만 기대보다는 아쉬운 성적이었어요. 제가 이적하면서 오더 역할을 맡았는데 오더로서 경험이 있었다면, 그리고 팀원끼리 유대감을 잘 쌓았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다 잘하는 선수들이니 각자 주장들도 강해서 처음엔 하나로 어우러지기 힘들었어요. 갈수록 호흡이 잘 맞았는데 작년 하반기를 끝으로 리빌딩이 된 것이 조금 아쉽죠. 그래도 저희끼리 재밌게 해서 큰 후회는 없습니다.
매번 국제대회 열릴 때마다 와주셔서 응원해주시는 것을 보면 감사하고 감동 받아요. 그런 곳에서 팬미팅을 하면 느낌도 새롭고요.

게임단 측에서 스트리머로 전향할 때 행사를 열어주고 팬들이 응원 영상을 보내줬어요
저는 내용을 전혀 몰랐는데 영상을 보고 감동 받았어요. 이벤트를 기획해주신 오피지지와 하나하나 준비해주신 팬분들께 감사했죠. 앞으로 스트리머로서 더 잘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피드백에도 더욱 신경을 쓰게 됐어요. 어떤 분들은 일일이 신경 쓰면 답도 없다며, 한 사람의 생각이 다수의 생각은 아니니 무시하라고 조언해주기도 해요. 그래도 제 입장에선 피드백 해주시는 팬들은 애정이 있어서 제게 피드백을 보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하게 말씀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무시하지 못하고 신경 쓰게 돼요. 스트레스 받지만 제가 팬들께 느끼는 감사함을 떠올리며 최대한 수용하려고 합니다.
스무살 때 스페셜포스 선수로 데뷔했을 때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당시에 전 월급 백만원을 받았는데 우승하고 최고 대우를 받고서야 월급이 200만원으로 올랐거든요.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은 억대 연봉도 있었고,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었어요. 저희는 못 해도 비판조차 듣지 못하고 잘 해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없었죠. 스타크래프트 선수처럼 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지만 게임의 한계로 인해 아무리 잘하고 스타성이 뛰어나도 그 레벨에 다다를 수 없었습니다. 마냥 어린 마음에 연봉 1억과 많은 관심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잘하는 것이 게임 하나 밖에 없으니 포기하고 싶을 때도 더 잘 하자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김인재라는 오랜 기간 활약해준 훌륭한 선수가 있었기에 한국에서도 FPS가 관심을 받고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e스포츠가 다시 떠오르고 선수들이 인정받고 있잖아요. 정말 의미가 남달라요. 한국 FPS 판은 서든 어택 이후로 끝났다는 말이 많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잘하는 분들이 많은데 조명 받지 못하는 것도 아쉬웠는데 이젠 노력하면 예전과 다르게 인정 받을 수 있으니 보기 좋아요.
스페셜 포스 때부터 오랜 기간 프로게이머로 활동했습니다. 기억나는 동료나 상대팀 혹은 선수가 있을까요
같이 했던 동료는 지금의 절 있게 해준 오버워치 루나틱 하이 선수들이죠. 특정 누군가를 인상 깊었던 상대로 고르기엔 제가 라이벌 구도란게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오버워치 APEX 시즌2 결승전이요. 제가 옛날에 스타 선수들을 보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경기를 하고 싶었는데, APEX 시즌2 결승전에서 역전하고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 팬분들께서 우시는 것을 봤어요. 제게도 너무 꿈 같았고, 그런 경기를 펼치고 많은 분께 축하받았기 때문에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종목과 팀, 현역 활동 여부 상관 없이 꾸준히 응원해주시는 팬들은 본인의 어떤 점을 보고 지지를 보낸다고 생각하시나요
제일 많이 들었던게 비난을 들으면서 어떻게 멘탈을 굳건히 지키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배틀그라운드로 넘어오고 우승했을 때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닮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죠. 제가 팬들의 응원에 늘 감사함을 느끼는 것을 알고 계시니 더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본인의 발자취를 보면서 용기를 얻는 팬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라는 사람을 보고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 과분하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면 뭐든 할 수 있어요. 힘내세요!
지금 자신이 잘났다고 자만하거나 다른 선수들을 깔보는 선수들은 오래 못 가더라고요. 늘 겸손하고 언행을 돌아보며 조심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건 누가 봐도 열심히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열심히 해야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슬럼프를 겪었음에도 몇 번이나 일어나는 모습은 많은 선수들에게 용기를 줄 것 같아요. 힘겨워하는 배틀그라운드 프로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건 선수들 만의 탓이 아니라 게임 탓도 있어요. 지금이야 나아졌지만, 예전엔 대회 때 프레임 40으로 경기를 하고 옆자리 선수들이 하는 브리핑이 다 들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열심히 준비했는데 말도 안 되게 경기가 터질 때도 있죠. 정답이 없는 게임이라 모두 각자의 핑계가 있어서 양보를 하지 않으면 감정 싸움과 불화가 생깁니다. 그런 것들을 다 합쳐지면 회의감이 들어요. 저도 그랬고, 모든 선수들이 다 겪을 거예요. 최정상에 오르지 않는 이상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죠.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 하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기지 않을까요? 사실 어떤 조언을 주기 참 어렵습니다. 무작정 열심히 하면 저처럼 된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오버워치는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게임이고, 배틀그라운드는 오버워치로 다져진 저를 완성시켜준 게임입니다. 오버워치에선 우승을 해도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배틀그라운드에선 PGI 우승을 통해 누구에게나 인정 받았으니까요.

입대하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일시적으로 단절됩니다. 공백기 동안 팬들이 본인을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나요
선수 시절 제 목표는 열심히 하고 인성 좋은 선수로 기억되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비슷합니다. 무작정 저를 기다려주시기 보단 저를 기억 한 켠에 두시면 좋겠어요. 팬분들께서 "다시 이 사람의 팬이 되어도 좋겠다"고 느끼도록 제대 후 노력하겠습니다.
선수나 스트리머 외에 e스포츠 내에서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이 있나요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그걸 하지 못해서 현실적인 길을 택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죠. 하고 싶은 일은 제대 후에도 프로게이머를 하거나 스트리머를 하는 것입니다. 안 된다면 e스포츠 내에서 다른 일을 생각해볼 수 있겠죠.
오랜만에 프로게이머가 아닌 스트리머로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최근에 팬분들께 소통할 수 있는 일이나 인터뷰가 기회가 많지 않아 말씀을 드리기 어려웠어요. 이번 인터뷰 통해서 팬분들께 다가갈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얼마나 더 방송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기간동안 열심히 하면서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요.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한빛 기자 mond@fomos.co.kr
사진=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포모스와 함께 즐기는 e스포츠, 게임 그 이상을 향해!
Copyrights ⓒ FOMOS(http://www.fomos.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포모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