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첫 중간고사 뭐길래.."이번 시험 망치면 인생 망할 것 같아요"

2019. 4. 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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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중간고사 앞둔 고1 교실

수시 70% 시대..내신성적 가장 중요
자신의 '위치' 확인하는 첫 상대평가
"한번 적히면 대학갈 때까지 남잖아요"
불안한 마음에 '내신 학원'에 등록
6회에 45만원..팀 수업은 더 비싸
'사교육 막으러 수시 확대' 취지 무색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ㄱ여고 자습공간에서 고1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중간고사에 대비한 공부를 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성동구 ㄱ여고에 입학한 1학년 김지유(가명·16) 학생은 그동안 없던 습관이 하나 생겼다. 교실에 들어가면 여기서 나보다 공부를 잘 하는 애가 몇 명인지 손바닥을 펴고 세어보게 된다. 접는 손가락이 많을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몇 번째인가’, ‘나는 몇 등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요. 등수가 올라가려면 공부를 얼마나 해야 할까 생각해요.” 지유가 말했다.

지난 16일 ㄱ여고에서 만난 학생들은 오는 30일부터 시작되는 중간고사를 2주 앞두고 “긴장이 많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중학교 때부터 4월이 되면 늘 맞이하는 1학기 중간고사이지만 올해는 각별하다. 1등급부터 9등급으로 서열이 나뉘는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지유는 학교에서 상대평가로 시험을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초등학교 때는 ‘잘함’, ‘보통’, ‘노력’이 표기된 정성평가 성적표를 받았다. 수행평가 외 시험지로 보는 지필평가는 없었다. 중학교 때는 중간·기말고사를 봤지만 5등급(A~E) 절대평가였다.

김지유 학생은 요즘 이번 중간고사에 대비해 국어 내신 학원에 다닌다. 영어와 수학은 중학교 때도 학원에 다녔지만, 국어는 처음이다. 처음 내신 학원을 알아봤을 때 수강료가 비싸서 깜짝 놀랐다. 총 6회 강의에 45만원이었다. 엄마한테 “너무 비싸. 이건 아닌 것 같아”라며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시험 공부를 시작하니 혼자 하기 막막했다. 시험 전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시험범위 전체 내용을 충분히 익히기 어렵게 느껴졌다. 학원에 가니 과거 ㄱ여고 시험에 나왔던 기출문제를 뽑아 풀어주고 뭐가 중요한지 찍어줬다. 지유는 “혼자 불안에 떨면서 공부했는데 지금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냥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전교생이 209명인 이 학교 1학년 교실 게시판엔 ‘내신 등급별 예상 인원’이 붙어있다. 내신 1등급(4%)을 받으려면 전교 8등 안에 들어야 하고 22등까진 2등급(11%), 48등까진 3등급(23%)이다. 일반적으로 3등급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노려볼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불린다.

※ 그래픽을 누르면 확대됩니다

“고1 성적 끝가지 간다”는 공포

그렇다고 중간고사 대비에만 ‘올인’할 수도 없다. 지난 17일 충남 서산시 ㄴ고 1학년 교실엔 점심시간이 되자 수학 문제집을 풀며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리코더 같은 악기를 꺼내 연습을 하는 학생들이 함께 보였다. ㄴ고등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주변의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다. 이 학교 1학년들은 오는 24일부터 국어, 수학, 영어, 통합사회, 통합과학, 한국사 총 6과목의 지필평가를 보지만, 5월초에는 음악과목 악기 수행평가도 있다. 학생들은 어느 것 하나 놓을 수 없다. 내신성적을 평가할 때 음악, 미술 등 전과목 성적을 보는 대학들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종은 내신성적(교과) 외에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독서 등 비교과까지 ‘종합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실에서 만난 한 학생은 “시험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생활 모든 것을 평가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인 이 학교 1학년 이태진(가명·16) 학생에게 친구들은 ‘수시 파이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내신성적 외에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등 학생부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최근 관악부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점심시간을 쪼개 동아리 연습에도 빠지지 않는다. 태진이는 “중간고사가 다가와 요즘 밤을 새워 공부하려 하는데 마음이 불안해 집중이 잘 되진 않아요. 이번 시험을 망치면 인생이 망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한번 (학생부에) 적히면 대학 갈 때까지 남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고등학생들은 3년 동안 상대평가 지필시험을 20차례 이상 이른다. 중간·기말 고사를 학년마다 4번씩 3년간 12번 치른다. 내신성적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수능에 대비하기 위한 전국 모의고사(교육청 주관)도 학년마다 4번씩 12번 보고 고3이 되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모의고사가 두 차례 더 있다.

이 중에서도 고등학생들에게 1학년 첫 중간고사가 유난히 두려운 건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첫 시험이기 때문이다. 또 이 성적이 3년 내내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크다. 실제 입시학원인 종로학원하늘교육의 분석 자료를 보면, 2017년 2월 일반고를 졸업한 전국 4322명의 학생 중 3학년 1·2학기 내신 등급이 1학년 1·2학기 내신 등급보다 0.1등급이라도 오른 학생은 1308명(37.4%)이었다. 두 등급 이상 올린 인원은 2명(0.1%)뿐이었고, 1등급 이상을 올린 경우도 40명(1.1%)으로 많지 않았다. 0.5등급 이상을 올린 경우는 356명(10.2%)이었다. 내신 등급은 등수를 상당히 올려도 한 개 등급이 오를까 말까라서 1학년 때 내신이 만족스럽지 않은 학생들은 논술전형이나 정시(수능) 등 학생부전형 외에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이렇다보니 고3이 되면 중간고사는 고1때와 달리 그저 형식적인 시험에 불과하게 된다. ‘막판 뒤집기’ 같은 역동적인 변화는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ㄱ여고에서 만난 3학년 김아무개(18) 학생은 중간고사를 앞두고 “반포기 상태다. 1학년 내신이 과목 통틀어 3등급 아래다. 학종은 가망이 없다. 난 수능 아니면 답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입시업체 등은 “수능 다음으로 중요한 게 고1 첫 중간고사”, “학교에선 고1 중간고사 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등 공포감을 주는 글을 많이 올린다. 인터넷 맘카페엔 ‘내가 다시 고1맘이 된다면’같은 제목으로 고3맘들의 후기가 올라온다. 내신 경쟁이 더 치열한 특목고나 자사고에 아이를 입학시킨 부모들은 고1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뒤 일반고로 전학을 시켜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실제 1학년이 지나고 나면 전학을 가는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내신 경쟁 시대’ 사교육 기승

고1 첫 중간고사를 마치면 학생뿐 아닌 학부모들도 ‘멘탈 붕괴’에 빠진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진 성적표에 석차가 나오지 않으니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다 영재인 줄 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상대평가를 본 뒤 석차가 나오면 부모들은 현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런 학부모들의 불안을 먹고 크는 곳이 내신 대비 학원이다. ㄱ여고 앞엔 ‘○○여고 내신 완벽 대비’를 써붙인 학원들이 성행 중이다. 해당 학교 교과서로 진도를 나가주고 그 학교의 과거 기출문제 집중 풀이는 물론 교사별 출제 경향까지 분석해준다. 5~10명 정도 소수학생으로 ‘팀’을 꾸려 수업하기도 한다. ‘○○여고 대비 특강’을 개설한 성동구 한 학원은 주 6시간에 32만원을 받고 5명 정원의 소수반으로 내신 대비를 해준다. 성동구와 인접해있는 강남구에도 ㄱ여고의 내신을 대비해주는 ‘○○여고 내신 대비 특강’이 개설돼있다. 3월 말 문을 연 이 특강은 주말에 4회 강의를 하고 28만원을 받고 있다. 이 학교 시험이 2주 남은 지난 16일 등록을 문의해봤다. 이 학원 상담실장은 “준비를 이제 하신다고요?” 반문하며 “지금은 남은 자리가 없어 등록이 어렵다”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선행학습은 ‘기본’이 됐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준비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고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ㄱ여고에서 만난 정이슬(가명·16) 학생은 “주변 친구들 중에 중1 때 고1 수준 수학을 공부하는 걸 많이 봤다”며 “주변 친구들을 보면 나도 ‘저런 것’(선행학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바심이 들었다”고 했다. 중3 마지막 시험이 끝났을 때는 학교 선생님들까지 고등학교 내용을 미리 공부하라고 다그쳤다. 이슬 학생은 “중3 기말고사가 끝나니까 담임선생님이 저희한테 ‘얘들아, 고1 모드야 고1 모드’ 하시며 미리 선행을 하라고 하셨어요. ‘고등학교 올라가서 공부하면 늦는다’, ‘중학교 때 미리 해야 한다’고 했어요. 솔직히 국영수는 다 선행해요”라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ㄷ고에서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이아무개 교사는 최근 수업시간에 놀란 일이 있었다. 교과 내용을 설명해준 뒤 문제풀이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데, 학생들이 생각보다 문제를 빨리 풀어나가는 것이다. “너희들, 미리 공부를 해온 거니?”라고 물었더니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했건 학원을 다녔건 수업시간 진도를 미리 끝내고 온 학생들이 많았어요. 내신이 중요하단 걸 아니까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죠.” 이 교사는 “수능이나 내신이나 좋은 등급을 받으려면 선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시험 범위 진도가 끝난 뒤 곧바로 시험인데, 미리 해두지 않으면 짧은 시간에 내용을 익히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학입시는 내신성적과 학생부를 중심으로 하는 수시모집(현재 입시의 77.3%)과 수능성적을 중심으로 하는 정시(22.7%)로 나뉜다. 수시는 학생부교과전형(내신성적 위주), 학생부종합전형(내신성적+비교과활동), 논술·특기자전형으로 나뉜다. 각각 전체 입시의 42.4%, 24.5%, 10.5%를 차지한다. 사실상 내신성적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여년 간 정부가 대입에서 정시 대신 수시를 늘려온 주된 이유는 사교육을 잡기 위해서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를 기반으로 한 내신 시험을 통해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면, 사교육 없이 학교 수업만으로도 대입 준비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수시 비중이 늘어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시 ‘내신 사교육 시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금 시험으로 내 인생 정해질까”

고등학생들이 모이는 입시 사이트 등을 보면 현재 고1들은 자신들을 ‘저주 세대’라고 부른다. 자신들이 치르는 대학입시 제도를 두고 지난해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 등 전 국민이 갑론을박 토론을 해가며 홍역을 앓는 사이, 이들은 미래의 불투명성 때문에 불안감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8월 결정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선에서 마무리됐다. 현재 20%대인 정시 위주 전형을 30% 이상으로 조정하는 것에 그쳤다. 지금 고1 학생들에게도 여전히 내신관리가 가장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하지만 많은 대학이 수시에서도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두고 있는 탓에, 또 내신이 ‘망할’ 경우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수능 준비 또한 병행해야 하는 것이 현재 고등학생들의 처지다.

학교 현장에서 만난 한 학생은 고1 중간고사를 앞둔 자신이 ‘경주마’ 같다고 했다. “인생에 다양한 길이 있을텐데 수시와 정시, 단 두 가지 길만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에요. 양 옆을 가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그 경주마 같아요”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같은 반에서 만난 다른 학생은 “어른들은 대학교를 어디 다녔는지를 두고 사람을 판단한다고 하던데, 지금 보는 시험에 따라 제 인생이 달라질까요?”라고 물었다. 기자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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