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8~10걸음마다 CCTV.. 당신의 일상, 전세계에 생중계될 수 있다

이영빈 기자 2019. 4.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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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보안 구멍뚫린 'CCTV 공화국'
해외에서 접속한 CCTV 생중계 웹사이트 ‘인세캠’ 메인 페이지(왼쪽). ‘Korea’라고 검색하자 서울, 인천 등에 설치된 CCTV 화면 약 400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오른쪽). / 이영빈 기자

당신은 9초에 한 번 CCTV 화면에 포착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다. 전문가들은 전국에 설치된 CCTV 대수가 약 800만 대라고 추정한다. 세계 최다 수준이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CCTV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확인한 결과만으로도 민간용 카메라는 대부분 비밀번호가 걸려 있지 않았고 공공기관의 CCTV 관제센터는 전문성이 없었다.

지난해 11월 프로그래머 등 10여 명이 남의 집 안에 설치된 IP 카메라를 해킹해 방을 엿보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감시용 카메라 구매자의 인적사항 같은 간단한 정보로 집 안에 설치된 5000여 개의 CCTV를 해킹해 관찰하고 녹화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혼자 생활하는 여성들이었다. 재작년에도 녹화한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다 적발되는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들은 전문적인 해킹 기술이 없었다. 카메라에서 사용하는 IP를 찾아내 접속하는 것뿐이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카메라의 기본 비밀번호는 대부분 '0000' 또는 '1234'로 설정돼 있었다. 설치하며 비밀번호를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쓰기 때문에 피의자들이 쉽게 접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월 IP 카메라, CCTV 등을 처음 켤 때 사용자가 직접 비밀번호를 설정해야 기기가 작동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미 사용되고 있는 500만~600만 대의 IP 카메라는 여전히 개인 정보 보호의 사각지대다.

방 안이 아닌 길거리에 설치된 CCTV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경우에는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긴다. 전 세계의 길거리 CCTV를 해킹해 인터넷에 게시하는 '인세캠'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에 서버를 둔 이 사이트에서는 우리나라의 길거리, 헬스장, 옷가게 등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2016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내 이용자들의 접속을 차단했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접속이 가능하다. 외국에서 접속해보니 서울, 인천 등의 길거리를 훤히 볼 수 있었다.

서울의 길 몇 군데를 걸으며 CCTV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먼저 행인들이 CCTV에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 살폈다. 대학생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성북구 보문사 인근 주택단지. 500m를 걷는 동안 원룸 빌라, 카페, 창고 등의 입구에서 CCTV 32대를 발견했다. 이 중 공공기관 통제하의 CCTV는 6대뿐이었다. 의식하며 찾으니 대략 8~10걸음에 하나씩은 발견할 수 있었다. '움직이는 CCTV'라고 불리는 차량 블랙박스 카메라까지 포함하면 50개가 훌쩍 넘었다.

CCTV는 많았지만, 관리는 허술했다. 한 건물 입구에 설치된 CCTV에 비밀번호를 걸었느냐고 관리자에게 묻자 "그게 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가 많은 서울 광화문 인근의 빌딩에 들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CCTV를 보여달라고 해봤다. 신분 확인 없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법에 따르면 개인 정보 보호를 이유로,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있는 경우에만 영상을 제공해야 한다.

공공기관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2017년 기준 208개의 시·군·구 상당수는 CCTV 통합관제센터 관리를 외부 용역업체에 맡기고 있었다. CCTV 통합관제센터 관리에 특별한 자격 요건은 없다. 관련 법률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충청남도 논산시는 지난해 한 청소업체에 CCTV 통합관제센터 관리를 위탁했다. 논산시 관계자는 "매년 입찰을 통해 선정하는데, 직원 중 경비원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문제없이 통과됐을 것"이라고 했다. 경비원 자격은 13만원을 내고 사흘 동안 24시간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쉽게 획득할 수 있는데도 업체 측은 '경비 자격증을 가진 직원이 있느냐'는 질문에 "올해는 관리하고 있지 않다"며 답변을 피했다. 2015년에는 관제업무를 담당하는 용역업체 76곳 중 '고엽제전우회'와 '재향군인회'와 같이 전문성과 상관없는 단체가 업무를 맡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자체로부터 관제센터 관리를 위임받은 외부 업체는 일용직 직원을 모집하기도 한다. '사람인' 등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시 CCTV 관제센터 요원 구함. 학력, 성별, 나이 무관'이라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률 근거 없는 CCTV 통합관제센터 운영은 인권침해"라는 판단을 내렸다.

많은 CCTV가 범죄자 검거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늘어나는 대수에 비해 관리 체계는 아직 철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치안을 위해 CCTV 대수를 늘리자는 사회적 합의는 명확하지만, 아직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어떻게 사생활을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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