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이란 죄, 정치보복 수단인가 [이범준의 판결VS판결]
[경향신문] ㆍ사법농단과 직권남용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된 법관들이 줄줄이 직권남용 무죄를 받으리란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고 나면 사법관료로 불리던 판사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을 반격하리라는 시나리오다.
그런가 하면 공무원에게 직권남용 피해를 입었다는 고소가 급증하고 있다. 2015년까지도 5000건 안팎에 불과하던 고소가 3년 만인 지난해 1만5000건에 이르렀다. 이러한 직권남용 고소는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등 잇따른 고위공직자 수사가 계기다.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범죄 의혹을 수사하라며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목한 혐의가 직권남용이다. 구속 청구가 기각됐지만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받는 혐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크게 늘어난 직권남용 고소 가운데 검사가 기소하는 것은 1%도 안 된다. 이렇다 보니 판사들 가운데도 직권남용 사건을 다뤄본 사람이 드물다. 다들 직권남용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소문만 무성한 직권남용, 직권남용이란 무엇인가.
직권남용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직감이 판례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 재건지원단 본부 지원과장은 부하인 인사장교와 군수장교에게 점심도시락 심부름을 시켰다. 국방부 검찰단은 직권남용을 인정했다. 지원과장은 직권을 남용하지 않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검찰단이 혐의가 있다면서도 기소유예를 결정해 지원단장은 사건을 법원이 아닌 헌재로 가져갔다.
국정·사법농단 수사 계기로 ‘공무원에 직권남용 피해 입었다’는 고소 급증, 작년 1만5000건
임종헌은 “정치보복에 이용”…“오히려 권력자를 견제하기 위한 법, 운용의 문제” 반론도
“일반 시민들은 이런저런 말로 다 엮으면서…” 직권남용을 더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
헌법재판소는 직권남용 혐의가 없다고 했다. “청구인은 지원과장이고 상대는 (업무가 다른) 인사장교와 군수장교다. 청구인이 인사장교와 군수장교에게 자신의 점심도시락을 가져오도록 지시할 일반적인 직무권한(직권)이 없다. 따라서 형법 123조에서 정한 ‘직권의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도시락을 가져오라고 지시할 직권이 있고, 그걸 남용해야 하는데, 당초 그런 직권이 없던 것이다.
형법 123조는 이렇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러한 직권남용을 쉽게 알려주는 판결이 있다. 2001~2002년 울산지검 강모 검사는 부산구치소 수감자 모씨를 검사실로 5차례 불렀다. 이듬해 수원지검으로 가서도 3차례 불렀다. 수감자가 가족들과 면회하도록 편의를 봐주고 장인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강 검사는 수감자를 검사실로 호송한 구치소와 교도소 교도관들에 대한 직권남용으로 기소됐다. 2006년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 “참고인으로 조사하기 위해 교도소장에게 호송을 요청하는 것은 검사의 직무권한에 속한다. 이렇게 검사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업무에 가탁(假託·거짓 핑계를 댐)하여 실질적·구체적으로는 교도관리에게 직무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
이쯤에서 한창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을 보자. 최근 사법농단 문건을 만든 정다주 판사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말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보고서의 주요한 내용을 구술해줬습니다. 단어라든가 짧은 문구로 불러주면 보고서에 적합한 문장으로 제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보고서 포맷을 갖추어 편집하는 문서작업도 했습니다.” 피고인 임종헌 전 차장이 정다주 판사를 상대로 신문했지만 이 부분을 묻지 않았다. 덕담을 건넸다. “증인과 오랜 인연이 있는데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되어 마음 아픕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데 대해 상급자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오히려 재판부가 휴정하고 나가자 임종헌 전 차장은 변호인과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이날 발언들을 언론에서 크게 다뤘는데 어쩌면 두 사람의 의도에 말려든 것이다. 이들은 사법농단 문서작성이 사실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재판부가 받아들인다면 결론은 무죄다.

직권남용을 무죄로 만드는 사실행위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법률행위가 아니란 것이다. 이를 설명한 게 2011년 대법원 판결이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실무 담당자에게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도록 하더라도 공무원 자신의 직무집행으로 귀결될 뿐이다. 따라서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도 그래서 무죄가 났다. 다스 문제로 분쟁 중이던 김경준씨에 대한 범죄인인도청구 검토를 지시한 부분이다. “자신을 보좌하는 대통령실 공무원에게 그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 정다주 판사의 증언을 법률의 언어로 통역하면 이렇다. “임종헌 전 차장과 나는, 실무 담당자에게도 직무집행의 기준이 적용되고 절차에 관여할 권한과 역할이 있는 그런 일을 시키고 한 것이 아니다.”
직권남용죄는 최근까지도 기소가 드물었고 그나마 결론도 대부분 무죄였다. 그래서 판례도 직권남용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못하고 무엇이 직권남용이 아닌지만 알려줬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에게 기자회견용 가짜 메모를 보고토록 지시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1991년 대법원 무죄를 받았다. 메모작성이 국과수의 보고의무가 아니고 메모작성 지시 역시 치안본부장의 직권이 아니라는 이유다. 비슷하게 1998년 진형구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한국조폐공사 사장에게 “직장폐쇄를 풀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라”고 말한 것도 2005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났다. 공안부장의 직무와 무관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과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했다. 배경에는 대검찰청 중수부장 출신 안대희 대법관이 주심으로 내린 판결이 있다. 사실행위는 직권남용이 아니라던 그 대법원 판결이다. 실은 2011년 이 판결이 “사실행위는 직권남용이 아니다”라고 선언만 하고 해당 사건은 유죄로 확정했다.
2006년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승진후보 순위 41위인 장학사를 장학관에 승진시켰다. 당시 인사담당 장학관은 41위 장학사를 승진후보자 8명에 넣어 최종 4명에 뽑히게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공정택 교육감이 인사담당 장학관에게 직권을 남용했다고 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직권남용 대상이 자신이 지휘하는 공무원으로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공정택 판결을 두고 직권남용은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 누구를 처벌하는 조항이냐는 논란이 생겼다. 우리나라 직권남용죄는 일본에서 따왔는데 일본에서도 설명이 갈린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설명, 공무의 적정(適正)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각각 있다. 1882년 시행된 일본의 옛 형법에는 권리방해죄가 있는데 개인(국민)의 권리·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1907년 새 형법에서 권리남용죄로 이어지면서 공무의 적정성을 보호하는 조항이 됐다. 그러다 전쟁을 거치면서 주요하게 개인의 권리·자유를 보호하고 부차로 공무의 적정성을 보호하는 성격을 갖게 됐다고 와세다대 마쓰바라 요시히로 교수는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정택 판결이 공무의 적정성을 가미한 것도 고민 끝에 나온 것이다.
법정을 이론의 전투장으로 선언한 임종헌 전 차장이 형법 123조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직권남용죄 합헌 결정 뒤로 10년이 넘게 지났고 그 사이 대법원 해석도 달라진 만큼 가능한 선택이다. 실제로 임종헌 전 차장은 2006년 합헌 결정 당시 권성 재판관의 소수의견을 법정에서 읽기도 했다. “전임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들추어내거나 정치보복을 위하여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고 때로는 악화되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에 이용될 위험성도 매우 크다.” 권성 재판관은 판사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면서 “항장불살”이라고 했다.
권성 재판관의 얘기도 일리가 있지만 문제는 운용이라는 반박도 있다. 박판규 변호사는 “업무방해죄도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 이 조항으로 노동자의 파업을 제한하는 데 써오니 문제가 됐다. 직권남용이 아닌 조항도 얼마든 부당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근본적으로 직권남용죄는 권력자를 견제하고 제어하기 위한 법”이라고 했다. 법원이 지금도 공무원 범죄에는 지나치게 너그럽다는 지적도 있다.
조용환 변호사의 설명이다. “부하직원에게 아무리 부당한 일을 시켜도 직무권한이 아니라며 직권남용 무죄를 선고한다. 그러는 법원이 시민들에 대해서는 위험범이니 묵시적 공모공동정범이니 해서 다 엮는다. 법을 거꾸로 작동시키는 것이고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국가주의 사고다. 직권남용은 지금보다도 훨씬 넓게 해석하는 게 맞다.” 직권남용이 무엇인지 법원과 헌재가 밝힐 때가 왔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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