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유인하고, 독자를 유혹하다

박송이 기자 2019. 4. 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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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감각적이고 신선한 디자인으로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 민음사 제공

◆BOOK DESIGN

전자책 시장이 커지면서 북디자인도 전자책의 섬네일(축소판)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북디자인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개인 소셜미디어에 책을 올려 북디자인을 평가하거나 특정 출판사의 독특한 북디자인에 열광해 시리즈를 전부 구입하는 독자들도 있다.

북디자인이 책을 선택하는 하나의 기준이 됐다. 책 표지만이 아니라 지질, 무게, 감촉 등 책의 ‘물성(物性)’을 극대화한 북디자인은 독서가 주는 또 다른 쾌감이다.

“책 표지, 이게 최선인가요.” 지난 1월 곽재식 작가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신간 <한국 괴물 백과>(워크룸프레스)의 표지를 올렸다. 푸른색 하드커버에 노란색 괴물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분홍색 띠지를 둘렀다. 그의 책을 기다려온 팬들은 책 표지에 아우성을 쏟아냈다. 주로 책 내용과 무관하다는 불만이었다. 출판사 워크룸프레스는 당황했다. <한국 괴물 백과>는 워크룸프레스가 발간한 책 중 지극히 얌전한 축이었다. 워크룸프레스는 상식을 깬 북디자인을 주로 해왔다. 책 표지에 제목을 표기하지 않거나 본문과 연관된 이미지를 전혀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북디자이너이기도 한 김형진 대표는 “좋은 표지란 책의 내용을 적절히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믿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 디자인을 사는 독자

‘책이 내용만 좋으면 됐지’는 옛날이야기다. 북디자인은 책의 표지만이 아니라 책의 전체적인 만듦새, 본문까지 아우른다. <글자풍경>(을유문화사) 유지원 작가는 “본문도 북디자인이다. 섬세하게 잘 조절된 본문디자인이어야 읽을 때 피로가 덜하다”고 말했다. 독자들은 북디자인에 반응하고, 북디자인에 반해 책을 사고, 북디자인에서 책의 소장가치를 찾는다. 민음사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감각적으로 디자인한 ‘쏜살문고’ 시리즈를 내놓았다. 유성훈 쏜살문고 편집자는 “단순히 자극적이기만 해도 안되고, 문구처럼 그저 예쁘기만 해서도 안된다. 표지는 그 외양을 통해 독자를 유혹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잘나가는 북디자이너

북디자인이 주목받다보니 북디자이너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출판사를 배경으로 한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는 잘나가는 북디자이너가 등장한다. 작가들이 앞다투어 원고를 맡기고 싶어 하는 ‘몸값’ 높은 북디자이너가 현실에도 존재할까. 현실에선 보통 출판사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북디자이너들에게 의뢰를 한다. 이 과정에서 드물지만 특정 북디자이너를 고집하는 작가들도 있다고 한다. 계약은 한 권당 100만~150만원이 기본이지만 북디자이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작업을 누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이보다 훨씬 많이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구체적인 액수는 출판사와 북디자이너 당사자밖에 모른다”고 말했다.

■ 화제의 북디자인

1977년 출간된 한수산의 <부초>(민음사)(왼쪽)는 새로운 북디자인으로 화제가 됐다. 1990년대에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해냄) <외딴방>(신경숙·문학동네) 등 글자꼴을 다양하게 변형한 북디자인이 많았다. 최근 들어 부드러운 일러스트레이션 중심의 북디자인이 주요 흐름이 됐다.

북디자인도 물론 ‘시대’를 탄다. ‘화제의 북디자인’의 시초는 1977년 출간된 한수산 작가의 <부초>(민음사). 파란빛이 도는 어두운 추상화를 배경으로 제목을 크게 부각시켰는데 ‘1세대 북디자이너’의 상징처럼 거론되는 정병규 디자이너 작품이다. 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그의 자서전 <책>(민음사)에서 “가수 윤복희가 처음으로 미니스커트를 입고 등장했을 때만큼이나 충격을 받는 듯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말했다. 1990년대는 서기흔·홍동원 등 ‘2세대 북디자이너’들이 두각을 드러냈는데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는 <깊은 슬픔>(신경숙·문학동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해냄), <화두>(최인훈·민음사) 등을 당시 대표적인 북디자인으로 꼽았다. 이때는 제목이 크게 들어간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만 해도 글자꼴이 다양하지 않아 별도로 손을 쓰기도 했다. 유지원 작가는 “복사를 10번씩 하면 글자가 닳게 된다. 낡거나 먼지 낀 느낌을 주고 싶을 때 그런 방식을 썼다”고 말했다.

■ 대세는 일러스트레이션

최근 북디자인 트렌드는 뭘까. 서점에서는 파스텔톤의 일러스트레이션 북디자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심지어 표지가 같은 책들도 나왔다. <주말에는 더 행복하기로 했다> <웃으면서 할 말 다하는 사람들의 비밀>은 출판사도 저자도 다르지만, 공교롭게 같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했다. 비슷비슷한 북디자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북디자인의 다양화 흐름도 있다. 북디자인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독립출판사들이 생겼고 디자인 집단이 출판을 겸하면서 전통적인 북디자인의 관습이 깨지기도 했다. 또 상업출판물과 독립출판물이 상호작용하면서 북디자인의 다양성이 증대되기도 했다.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의 위기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북디자인은 종이책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이다. 정민영 대표는 “독자는 내용만 읽는 존재가 아니라 책의 물성과 북디자인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읽는 존재”라고 말했다.

◆“스토리텔링이다”이혜진 북디자이너
“북디자인은 ‘스토리텔링’이다.” ‘마음산책’의 이혜진 북디자이너(34·사진)는 북디자인 핵심을 이같이 말했다. ‘마음산책’은 사진, 회화 등의 이미지를 활용 감각적인 북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박완서의 말>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등 ‘말’ 시리즈에는 강렬한 인상의 인물 사진이 전면에 담겼다. 작가 제임스 설터의 <아메리칸 급행열차> <어젯밤> 등 북디자인에는 던컨 한나의 회화 작품이 쓰였다. 지난달 21일 서울 서교동 ‘마음산책’에서 이 북디자이너를 만났다. - 해외 화가들과 협업하며 북디자인을 한다. “제임스 설터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복잡하다. 사소한 기미들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예민하다. 그 캐릭터를 이미지화한다면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던컨 한나의 작품 속 여성들은 무표정하고 때로는 생기가 없어 보인다. 소설 속 여성 캐릭터와 맞닿은 이미지라 협업을 시작했다. 화가의 작품이 좋아 책을 산다는 독자들도 있다.” - 지난해 5월 출간된 <뉴욕은 교열 중>의 북디자인을 본 저자 메리 노리스(Mary norris)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놀랍다’는 반응을 남겼다. “<뉴욕은 교열 중>의 원서 표지는 단순했다. 저자 메리 노리스는 미국의 잡지 ‘뉴요커’의 책임 교열자로 별명이 ‘콤마 퀸’이다. 원서 표지에는 문장부호인 콤마, 즉 쉼표가 점점이 찍혀 왕관 모양을 그리고 있다. 영어는 콤마 하나로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북디자인이다. 하지만 한국은 콤마를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콤마보다 익숙한 ‘뉴요커’를 앞세우기로 했다. ‘뉴요커’ 창간호 표지, ‘뉴요커’ 타이포그래피는 한국 독자들의 눈에도 익숙한 것들이다. 이 두 가지를 표지에 같이 쓰다보니 정작 제목은 작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이미지와 로고를 살리고 제목은 확 죽인 셈이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인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독자를 찾아가는 ‘스토리텔링’으로는 만족한 디자인이었다.” - 북디자인은 어떻게 이뤄지나. “내부에 편집팀을 두고 있는 출판사는 북디자이너가 출판 기획 단계부터 같이 작업을 시작한다. 원고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저자에 대한 정보나 책의 큰 얼개들은 알고 있다. 북디자이너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편집자, 타 부서 직원들과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자판기는 안된다”이기준 북디자이너
선, 도형,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간결하면서도 추상적인 이기준 북디자이너(44·사진)의 작업은 출판계에서는 이미 독보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눈 밝은 독자들은 그가 디자인한 책을 단박에 알아본다. 특히 그가 전담해서 디자인해온 유유출판사의 책들은 여러 권이 함께 있을 때 더 아름답다며 표지 때문에 일부러 소장하는 독자들도 있다. 이 북디자이너는 오는 여름에는 인도로 떠나 북디자인으로 유명한 ‘타라북스(TARABOOKS)’와 6개월 정도 공동작업을 진행하게 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이기준 북디자이너를 만났다. - 한 출판사의 책을 전담해 출판하는 게 흔치 않다. 유유출판사 거의 모든 책을 디자인했다. “유유출판사 조성웅 대표가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제안을 했다. 나도 한 출판사의 책을 전부 맡아 디자인하는 데 흥미를 느껴 제안을 받아들였다. 곧 유유출판사에서 100번째 책이 출간된다. 100권 중 97권을 디자인했다. 3권은 저자분들이 내 디자인이 싫다고 하셔서 안 했다(웃음). 수십 권이 쌓이니 이것을 토대로 힘이 생겼다.” - 선, 도형, 타이포그래피 등을 이용한 추상적인 북디자인이 많다. “도형은 한 가지 모양으로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북디자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추상화하지는 않으려 한다. 예컨대 <서울 사는 나무>(장세이 지음·목수책방)를 북디자인할 때 가장 먼저 표지에 나무 사진을 넣는 방식은 제외했다. 책 내용은 서울 시내 곳곳의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다. 서울 시내 지도를 펼쳤다. ‘나’처럼 보이는 골목을 따서 글자 ‘나’를, ‘무’처럼 보이는 골목을 따서 글자 ‘무’를 만들었다. 서울 골목골목에서 각각의 글자처럼 보이는 골목을 땄더니 그게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책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표지보다 한 단계 정도 들어가 연상될 수 있는 이미지가 좋다고 생각한다.” - 북디자인의 원칙이 있나. “기계적으로 하지 않으려 한다. 여백을 얼마만큼 주고 글자 크기를 어느 정도로 하고 행간을 어떻게 하면 보기 좋은 레이아웃인지 사실 안다. 그렇지만 이러한 틀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예전에 했던 작업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결과적으로 비슷한 레이아웃으로 귀결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자동판매기처럼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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