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14 뮌헨 참사, 맨유와 레드 스타는 함께 울었다

김태석 2019. 4. 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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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14 뮌헨 참사, 맨유와 레드 스타는 함께 울었다



(베스트 일레븐=맨체스터/잉글랜드·베오그라드/세르비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뮌헨 참사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이다. 1958년 2월 6일 3시 30분 뮌헨 공항에서 빚어진 비극적 항공 참사가 일어난지 무려 61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긴 했다. 첫 번째 화양연화를 주도했던 선수들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이후 더 막강한 슈퍼스타들을 앞세워 더 눈부신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잊고 싶은 악몽이기에 잊을 법도 하건만, 그 악몽을 잊게 할 만한 기분 좋은 히스토리도 넘치건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계는 여전히 61년 전 뮌헨에서 멈추어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근거지 올드 트래퍼드에는 그 뮌헨 참사가 남긴 아픈 이야기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영국을 찾는 한국 축구팬들이 필수 코스로 방문하게 되는 올드 트래퍼드이기에, ‘뮌헨 터널’로 지칭되는 뮌헨 참사 추모 공간을 접한 이들이 제법 많을 것이다. 하지만 뮌헨 참사를 기억하는 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만이 아니다. 생뚱맞게 들릴 수 있으나, 멀리 세르비아에서도 씁쓸하게 뮌헨 참사를 떠올린다.


뮌헨 참사, 인재와 악재의 나비효과

축구팬들에게 워낙 유명한 비극이긴 하지만, 사고 상황을 다시 한번 정리하겠다. 1958년 2월 6일 3시 30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탑승한 영국 유러피언 항공 609편이 중간 급유를 위해 뮌헨에 기착했다. 이후 급유를 마친 항공기가 뮌헨 공항을 떠나려고 했으나, 이륙에 실패해 23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사고가 빚어졌다. 이중 목숨을 잃은 선수는 7명이었으나, 이내 8명으로 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던컨 에드워즈가 사고 발생 후 15일 만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당시 유럽 최강 중 하나라고 평가받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 사건 때문에 한동안 클럽에 큰 위기를 맞아야만 했다.

이 사고는 악재와 강압의 나비 효과가 부른 인재였다. 무엇 때문에 이륙에 실패했을까? 항공기가 이륙하려면 이른바 기체를 띄우는 ‘양력’이 필요하다. 이 양력을 얻기 위해 항공기는 이륙 전 활주로를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활주로에서 최고 속도로 달린 항공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은 급박하게 달리는 기수에서 중대한 결심을 내려야 한다. 활주로가 무한정 주어져 있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흔히 V1이라 불리는 이륙 결심 속도에 이르기 전까지 이륙을 포기하던가, V1을 넘어서면 무조건 이륙에 성공해야 했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탄 609편은 그렇지 못했다. 필요한 양력을 얻지 못한 기체는 인근 가옥을 들이받고 엄청난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이륙 실패의 원인은 활주로에 있던 눈슬러시였다. 기체가 안전하게 최고 속도를 내야 할 활주로 일부 구간에 기상 악화로 인한 장애물이 존재했던 것이다. 1차적인 책임은 활주로 관리 부실을 한 당시 서독 정부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기상 조건 때문에 공항 활주로 상황이 좋지 못할 경우 항공기의 이착륙은 통제되는 법이다. 항공사가 이륙을 고집해도 상황이 심각할 경우에는 공항을 관할하는 정부가 이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는 점도 한 원인이었다. 올드 트래퍼드 뮌헨 터널 전시관은 사고 직전 던컨 에드워즈가 지인에게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어 내일 비행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전보를 보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맷 버스비 감독과 선수단은 공항 기상조건이 악천후였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럽 클럽대항전 참가를 마뜩찮게 생각하던 FA가 리그 일정을 맞추지 못할 경우 징계하겠다고 경고한 터라,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제때 영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다소간 무리한 이륙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부실하게 관리된 공항 활주로 때문에 더욱 위험천만한 이륙을 시도해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 609편은 두 차례나 이륙을 포기해야 했고, 세 번째 이륙을 시도하던 중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뮌헨 참사가 더 안타까운 건 지금 시대였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고라는 점이다. 지금이야 세 시간 조금 넘는 비행시간이면 간단히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609편은 항속 거리와 급유 때문에 기상 조건이 좋지 못한 뮌헨에 중간 기착을 해야만 했다. 종합하자면 이들은 어쩌면 살 수 있었고, 살아서 더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훗날 더 큰 영광을 만들고도 이들을 결코 잊지 못하는 이유다.


망연자실했던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그들도 뮌헨 참사를 기억하는 이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탑승한 항공기가 대형 사고에 휘말렸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팀은 또 있다. 바로 ‘레드 스타’라는 이명으로 축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츠르베나 즈베즈다다.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팬들의 귀에 좀 더 익숙한 영문 명칭인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로 표기하겠다.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사고를 당하기 직전 맞상대한 팀이었다. 베오그라드에서 벌어진 1957-1958 유러피언 컵 8강 2차전에서 양 팀은 격전 끝에 3-3 무승부를 거두었다. 준결승전 진출팀은 1차전서 2-1로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를 꺾어 종합 스코어에서 5-4로 앞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선수들은 경기 후 웃으며 떠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씁쓸히 지켜봐야 했을 텐데, 이후 들려온 소식에 씁쓸함을 넘어 아마 경악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올드 트래퍼드를 방문한 후 두 달 뒤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의 뮤지엄을 찾았을 때 너무 놀랐다. 애당초 이 장소를 방문한 건 동유럽 최초이자 유일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그들의 저력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장소에서 다소 생뚱맞게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흔적을 접할 수 있었다. 그것도 뮌헨 참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박물관에는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을 앞두고 팬들에게 판매했던 티켓을 비롯해, 페넌트를 교환하는 양 팀 주장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상단에는 유럽 클럽대항전에서 맞붙었던 다른 나라 클럽의 페넌트가 잔뜩 달려 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에는 최신판이 아니라 뮌헨 참사 직전에 치른 경기에서 받은 페넌트가 전시되어 있다. 단순히 주고받은 기념품이 아니라, 뮌헨 참사 희생자의 손에 들려 있던 유품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더욱 밀려 왔다.

케이스는 다소 다르지만, 에밀리아노 살라를 카디프 시티로 떠나 보냈다가 사고 소식을 접한 FC 낭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승패와 준결승전 진출 여부는 둘째치더라도,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축구를 통해 연대할 수 있는 스포츠맨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주장이자, 현재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의 홈구장에 이름까지 헌액이 될 정도로 클럽의 최고 레전드로 인정받는 라이코 미티치는 생전 이 사고에 대해 매우 비통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단순히 사고 소식만 전하는 건 아니다.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는 사고 후 팀을 재정비해 유러피언컵 정상에 오른 맷 버스비 감독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어쩌면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으나,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역경을 딛고 세계 최강 클럽으로 우뚝 선 것에 대해 나름의 흐뭇함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사연 때문에 두 팀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형제애를 거론할 정도로 꽤나 끈끈하다고 한다.


번외 이야기, ‘수호신’ 해리 그레그에 찬사를 보내는 북아일랜드

그런데 북아일랜드축구협회가 운영중인 북아일랜드 축구 박물관에서도 뮌헨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접했다. 해당 박물관에 재직하는 큐레이터의 입을 통해서 들은,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문을 책임졌던 북아일랜드 출신 명수문장 해리 그레그의 이야기다. 그레그는 자신도 사고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몸을 아끼지 않고 구조 작업을 이끈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 사고를 전하는 <데일리 메일>의 기사 하단부에 그레그가 사고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구조 작업에 임했다는 헤드라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레그는 사고 직후 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버스비 감독을 발견해 생명을 구했다.사고 후 10년 뒤 버스비 감독이 클럽을 재건해 팀을 유럽 정상에 올려놓은 것을 떠올린다면, 그레그는 그야말로 ‘슈퍼 세이버’라 할 수 있다. 버스비 감독은 물론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구한 영웅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항공사고는 생존자에게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긴다. 항공 사고 피해자가 다시 항공기에 탑승하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다. 엄청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린다. 그런데 그레그는 그렇지 않았다. 북아일랜드 축구 박물관 큐레이터는 “그레그는 뮌헨 참사를 겪고도 얼마 후 벌어진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해외 원정 경기를 위해 항공기에 기꺼이 올랐다. 무척이나 컸던 손만큼이나 담력이 대단했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만 87세인 그레그는 지금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주관하는 뮌헨 참사 관련 행사에 모습을 비추며 떠난 동료들을 기리고 있다.


글·사진=김태석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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