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클럽은 여성의 몸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 현직 클럽 MD에 들어보니

심윤지 기자 2019. 3. 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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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버닝썬 사태로 본 클럽문화
ㆍ"여성은 돈 벌어주는 상품"
ㆍ외모 등급 매기고 노출 있어야 입장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 아레나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중이다. 약물 성범죄, 마약류 유통, 탈세, 성매매 알선, 불법촬영 및 유포 등 수사 중인 혐의만 해도 한 손에 꼽기 힘들다. 업계 선두 클럽들이 몰락하자 다른 클럽들은 “우리는 물뽕이 없다”는 광고 문구를 내걸며 반사 이익을 누린다. 버닝썬과 아레나를 제외한 클럽은 문제가 없을까.

경향신문이 만난 현직 MD와 여성 게스트들은 “클럽 문화 자체가 여성 대상 범죄를 가능하게 한 토양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클럽이 여성의 성을 상품화해 돈을 번다는 비판과 함께 ‘클럽 불매’ 움직임까지 나온다.

■여성이 돈이 되는 공간 클럽에서 여성은 곧 ‘돈’이다. 여성 고객이 많으면 남성 고객들이 몰리고, 남성 고객이 돈을 쓰면 클럽 매출과 위상이 오른다. 강남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ㄱ씨는 “클럽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물이 좋은 여자 게스트(약칭 물게)’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라고 말했다. 아레나는 개업 초기 실소유주 강모씨(46)가 자신이 운영하던 유흥업소 여직원을 데려오면서 손님 몰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은 돈’이 단순한 비유는 아니다. 클럽 MD가 유치 고객 성별에 따라 달리 돈을 받는다. 남자 손님은 한 푼도 받지 못하지만, 여자 손님은 1명 당 2000~1만원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폐업한 한 강남 클럽은 여성 외모에 따라 ‘보통 게스트’는 4000원, ‘물 좋은 게스트’는 1만원의 수당을 책정했다. 영업을 맡은 말단 MD로 하여금 외모가 빼어난 여성을 데려오게 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여성 외모에 등급을 매기는 전담 직원을 따로 둔 클럽도 있다고 한다.

버닝썬을 비롯한 강남 클럽에서는 고액의 술을 시키는 손님에게 술병에 폭죽을 꽂아 배달해준다. ‘샴걸(샴페인걸)’이라 불리는 여성들이 술을 배달해주고 춤을 춰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남성 고객은 정가보다 비싼 돈을 주고 주류와 테이블 좌석을 구매한다. 대가로 원하는 것은 여성이다. MD들이 모인 단체카톡방에서는 ‘몇 번 테이블에 여자를 꽂으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여성들에게 술을 나눠주면서 VIP존이나 중앙 스테이지로 유도하는 ‘총공격’도 MD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돈을 많이 쓰는 손님에게 ‘물게’를 데려다주려는 MD들의 발걸음은 바빠진다.

20대 초반 강남 클럽을 즐겨 찾았다는 직장인 권모씨(26)는 “테이블에 올라가면 남성이 어깨동무를 하거나 껴안듯이 하며 술을 먹으라고 권한다”며 “비싼 테이블에 앉은 손님에게 나이가 어린 여성들을 연결해주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화장실을 간다’ ‘친구가 밖에서 기다린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클럽 경호원이 화장실을 간다는 여성을 문앞까지 따라갔다가 다시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

현직 클럽 MD로 일하는 ㄴ씨는 “강제로 손목을 잡아 끌거나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남자 손님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을 자리로 데리고 오는 ‘픽업’은 성매매 업소의 ‘초이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클럽은 여성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지만, 이 과정이 여성도 모르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성착취”라고 했다.

‘해외 투자자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그룹 빅뱅의 승리가 지난달 27일 조사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범죄 표적되는 여성 여성은 클럽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불법촬영이다. ㄴ씨는 “남성 MD가 여성 고객의 몸매를 몰래 찍어 단체카톡방에 공유하거나, 본인들 생각에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게스트 사진을 찍어 조롱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고 했다. 일부 남성 MD는 여성 고객과 성관계를 가진 후 ‘인증샷’을 찍어 공유하는 방을 따로 만들기도 한다. 페이스북에서는 클럽에서 여성의 가슴을 만지는 남성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만들어 주겠다”고 홍보하는 MD도 찾아볼 수 있었다.

여성 고객 사진을 클럽 홍보에 사용하기도 한다. 당사자 동의 없이 찍거나 올린 불법촬영물로,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부각한 사진들이 많다. ㄴ씨는 “자신의 사진이 홈페이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간지도 모르는 여성들이 많다. 우연찮게 발견해도 해당 사진을 찍은 작가를 직접 찾아가 삭제 요청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방 동의 없이 허리 등을 만지는 이른바 ‘부비부비’는 클럽 문화의 일부로 치부된다. 지난해까지 홍대 클럽을 즐겨 찾았다는 유튜버 한서현씨(21)는 “일상생활에서는 성추행으로 신고가 됐을 법한 일들도 클럽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로 묵인이 된다”며 “동의 없이 신체 접촉을 한 사람에게 화를 내봐도 그땐 이미 성희롱이 일어난 다음”이라고 했다.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ㄱ씨는 “친한 동생이 클럽에서 주는 술을 마시고 완전히 기억을 잃었다고 말한 뒤로는 여성 지인들에게 새 컵을 주며 ‘이 컵에 따라주는 술만 마시라’고 한다”며 “공항에서처럼 소지품 검색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클럽 차원에서 약물 반입을 막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MD들은 클럽 단골 손님이었다가 알고 지내던 기존 MD의 권유로 일을 시작한다. 클럽 당 MD가 많게는 수백명에 이른다. 공식 채용 절차를 거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직원 관리가 쉽지 않다. ㄱ씨는 “영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술 취한 여성을 남성 손님에게 연결해주는 속칭 ‘던지기’를 하는 MD도 많아졌다”고 했다.

이러한 의혹은 경찰 수사로도 확인된다. 경찰은 버닝썬 등 강남 클럽 내에서 벌어진 마약 유통과 투약 혐의를 수사해 현재까지 40명을 입건했다. 입건된 이들 중 버닝썬에서 마약을 투약하거나 유통한 인물은 14명이고 이 가운데 MD로 일했던 3명이 구속됐다. 버닝썬 직원 2명은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해 유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버닝썬만의 문제 아니다 클럽들은 여성 고객을 끌려고 각종 ‘혜택’을 내세운다. 밤 12시 전에는 무료 입장을 해준다. 공짜 술도 후하게 제공한다. 외모가 뛰어난 여성들에겐 ‘서비스테이블’(무료 테이블)을 주기도 한다. 혜택에도 대가가 따른다. 클럽은 ‘입뺀(입장금지)’ 기준을 두고 노출이 없는 캐쥬얼한 옷차림,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의 출입을 제한한다. 고액 손님이 많은 ‘핫한’ 클럽들은 ‘수질관리’라는 명목으로 외모가 빼어난 여성 손님만 가려 받는다.

이 기준을 맞추려면 꾸밈에 공을 들여야 한다. 23세 때부터 3년 간 매주 클럽에 다녔다는 정지혜씨(29) 역시 다르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절대 못 입을 만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밤새 놀아서 발이 터질 것 같아도 킬힐을 신었어요. 클럽에서 춤을 추거나 남자들과 술을 먹는 게 재미있었고, 남들에게 ‘예쁨’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신이 났거든요.” 클럽을 다닌 후로 외모 강박이 심해졌다. 남성이 번호를 묻는 횟수로 스스로를 평가했고, 클럽의 다른 여성들과 자신을 비교했다. “한번은 친한 동생과 클럽에 같이 갔던 적이 있는데, 동생은 가는 내내 ‘나 너무 뚱뚱해서 못들어갈 것 같다’며 불안해했어요. 클럽이라는 공간 자체가 그렇게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거죠.” 정씨는 이 사실을 자각하고 난 후부터 더이상 클럽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클럽을 찾는 여성들은 성희롱을 당해도 “클럽은 원래 그런 공간”이라고 넘어가거나 “나만 조심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여성 대상 범죄가 일상화된 공간에서 개인 노력만으로는 피해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중매체 속 클럽이 청춘들의 쿨한 놀이 문화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현실 속 여성 피해자들은 “그런 곳인 줄 모르고 갔냐”는 편견과 낙인에도 시달린다.

ㄴ씨는 “많은 클럽들이 버닝썬과 자신은 다르다고 구분짓지만 여성을 인격이 아닌 상품으로 보는 것은 홍대든 강남이든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버닝썬 사태 이후에도 영업 전술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여자 손님이 오길 기대하는 것을 보면서, 강력한 불매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로 손해를 입지 않으면 제2의 버닝썬은 언제든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SNS를 중심으로 클럽을 불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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