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⑰"가출청소년, 강남 클럽서 성매매..그럴싸한 집창촌"

최은경 2019. 3. 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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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성매매 여성 처벌과 성매매 합법화 문제는 끝없는 논쟁 거리다.

‘몸 파는 여성은 피해자고 사는 남성만 가해자냐?’(reve****)처럼 성매매 여성 처벌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성매매 합법화해라 그냥 매춘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합법화해서 위생과 폭력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제대로 된 세금 내게 하는 게 훨 낫다’(xmdn****)처럼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거나 ‘성매매는 불법이어야 하며 여성은 구조적 피해자이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성매매 남성이야말로 진정한 범법자이며 가해자다. 성매매 남성을 처벌해라.’(1) 같은 성매매 합법화엔 반대하지만 종사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댓글이 뜻밖에 많았다.

그 가운데 ‘매수자 처벌 안 하는 이유=경찰들이 사창촌 뒷배 봐주고 있어서 ㅋㅋㅋㅋㅋ버닝썬 봐라’(isy)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최근 ‘버닝썬 사건’으로 강남 클럽이 성매매 의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연재하는 동안 ‘강남 룸살롱에서 일하면 기본 월 1000만원 법니다. 벤츠 타고 다니구요.’(abou****) 같은 댓글이 꾸준히 올라왔다. 실제로 강남의 밤 문화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화려할까.

이른바 강남 ‘텐프로(상위 10%)’ 여성을 심층 취재한 어느 전직 기자는 “그들이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버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많이 벌어도 늘 빚에 쪼들리는 악순환 속에서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분명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지난 2월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을 펴낸 주원규(44) 작가는 강남 유흥업소의 또 다른 문제로 가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와 인권 침해를 제기했다. 주 작가는 2016년 6개월 동안 강남 클럽에 설비기사·콜카(성매수남과 성매매 여성을 태우는 차량)기사 등으로 위장 잠입해 업소 50여 곳의 80여 명 가출 청소년을 취재했다. 이를 바탕으로 쓴 책이 메이드 인 강남이다. 성매매 피해 여성을 다룬 차기작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필동 작업실에서 만난 주원규 작가가 6개월 동안 강남 클럽에 위장 잠입해 취재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월 수천만원 벌어도 우울증 시달리는 ‘텐프로’

지난 19일 오후 늦게 서울 필동 그의 작업실을 찾은 것은 집창촌과 다른 강남의 유흥문화를 듣고 싶어서였다. 놀랍게도 주 작가가 들려준 강남 이야기는 옐로하우스에서 보고 들은 것과 비슷한 대목이 많았다. 소름이 돋았다. 집창촌에서 벌어지는 착취 행위가 강남이라는 무대로 옮겨간 느낌이랄까. 그는 “일부 강남 클럽은 다양한 성매매 업소의 나쁜 방식을 모아 거대하고 고급스럽게 포장한 곳”이라고 말했다.

주 작가는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던 10대 가출 청소년들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잠입 취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는 클럽에서 어떻게 성매매 산업이 가능할까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스카우터’라고 불리는 사람이 영등포·신도림처럼 가출 청소년이 모이는 곳에 찾아가 ‘2년만 즐기면서 일하면 연예인이 될 수 있다’며 꼬드깁니다. 성인으로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클럽 고객처럼 행동하며 남성과 성관계를 하고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클럽 MD(Merchandiser·영업관리자)가 수수료를 가져갑니다. 이 MD가 포주인 셈이지요.”

이런 클럽을 찾는 남성은 평범한 직장인부터 유복한 집안의 자녀, 초고액 연봉자, 외국 국적 소유자, 연예인, 운동선수 등 다양하다. 공통점은 돈을 펑펑 쓴다는 것이다.

1980·90년대 집창촌에서는 카페 여종업원 구인 광고 등으로 돈이 필요한 어린 여성을 유인했다. 이후에는 가출한 10대가 유흥업소를 떠돌다 집창촌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옐로하우스 여성 D씨(36)는 아버지의 학대로 집을 나와 열여덟살 때부터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D씨의 말이다. “그때는 위조도 필요 없고 성인 주민등록번호만 외우면 돼요. 처음에는 술만 따르면 재워주고 돈을 준다고 하지만 성매매를 하게끔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해요.”

주 작가는 MD가 여성의 신체를 속박하진 않지만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를 씌워 '자발적 감금'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술에 몰래 약을 타 약물 중독에 이르게 합니다. 약에 취한 채 성관계하는 영상을 촬영해 유출하겠다고 협박하지요. 또 성형, 명품 구매, 고급 오피스텔 거주를 유도해 고리 사채로 옭아맵니다. 형사와 잘 안다면서 형량·가중처벌 운운하며 협박하기도 하고요.”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성매매하다 적발돼도 형사 처벌을 하지 않고, 보호처분을 한다. 하지만 약물과 관련해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10대라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이 클럽을 떠나거나 신고할 생각을 못 하는 이유다.
서울 강남의 한 클럽 내부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연예인 시켜준다’며 강남 클럽 성매매로”

클럽에는 옐로하우스에서 만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심한 학대를 받아 내쫓기다시피 거리로 나온 가출 청소년들이 많다. 주 작가는 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하거나 계모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10대들의 사례를 들었다.

이렇게 클럽에 발을 들인 여성은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했다. “신체 질병은 물론이고 이른 나이에 약물에 노출돼 간질, 손 떨림, 환청, 망상 등이 아주 심합니다. 하루에 수십번 자해를 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제든 MD가 부르면 나가야 해 잠도 제대로 못 잡니다.”

D씨 역시 “처음에 너무 무서워 여관방에서 도망 나왔다가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우울증이 심해 업소를 그만둔 뒤 오랫동안 정신과에 다녔다”고 기억했다.

강남 클럽에서 가출 청소년이 일하는 기간은 길지 않다. 주 작가는 스무살이 거의 한계라고 했다. 그만둔 이들은 정상생활이 힘들어 병원에 입원하거나 다른 유흥업소를 전전했다. 일부는 스카우터나 MD가 돼 다른 가출 청소년을 핍박한다. 또 그는 “중국·일본 관광객을 스폰서로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 행태가 신종 인신매매와 다를 게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클럽을 떠나지 않는 것은 돈과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 때문이다. MD들은 항상 “너희는 프로다. 성매매 여성과는 다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걸그룹이 될 수 있다”며 어린 여성을 유혹한다. 현실은 달랐다. 주 작가에 따르면 클럽에서 VVIP 고객의 요구에 따라 포르노 영상을 찍거나 상식을 벗어난 성행위를 하는 ‘이벤트’를 하는데 주로 가출 청소년이 동원됐다.
[중앙포토]


정신적 공황, 경제적 착취 등 집창촌 닮은꼴

“가출 청소년들과 다르게 MD들과 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꽤 많은 돈을 버는 성매매 여성들도 있어요. 이 여성들 역시 대부분 10대부터 성매매에 노출돼 착취를 당했다고 봅니다. 클럽에서 일하는 10대 가출 청소년들은 돈을 못 벌어요. 초기 몇 달은 수천만원을 그냥 주면서 안심하게 해요. 성형 등으로 다 쓰고 나면 그때부터 빚이 쌓입니다. 얼마를 버는지, 얼마를 갚았는지 몰라요. 생활은 MD 명의의 신용카드로 하는데 탕수육을 시켜먹었다고 폭행하기도 해요.” 1년 2개월 동안 17억원의 빚이 쌓인 여성도 있다고 했다.

옐로하우스 여성 D씨의 말이다. “10대 때 2년 가까이 일하고도 돈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20대 초반 다른 곳에서 일할 때 연예인이나 연예계 관계자들이 돈을 종이처럼 뿌리곤 했는데 돈은 벌었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있던 룸살롱만 해도 그런 것은 없었는데 안마방·노래방·다방 같은 곳에서 변종 성매매를 시작하면서 변태적 성행위가 퍼진 것 같아요.”

집창촌 여성처럼 강남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도 범죄자의 낙인이 쉽게 찍힌다. 주 작가는 한 클럽의 MD와 성매매 여성이 마약류 관리와 성매매로 적발됐을 때 약물에 중독된 21세 여성은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3년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MD는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형이 나온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성매매 관련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너희들이 좋아서 하는 것 아니냐고 클럽에서 일하는 10대들을 비판하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를 생각하면 그렇게 볼 수 없다”며 “공간만 다를 뿐 하부구조에서 여성이 피해를 보는 것은 집창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옐로하우스에서 철거가 계속되고 있다. 건물 몇 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최은경 기자
주 작가는 강남 클럽에서 일부 가출 청소년이 빠져나오면 함께 이 문제를 공론화할 계획이다. 아직 공익제보나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그곳에 남은 이가 많기 때문이다. 주 작가는 “그들이 ‘강남 아니면 어디서 무엇을 하겠느냐’며 신고를 강하게 말렸다”며 “그렇다 해도 정신 고문에 가깝게 환상을 심는 구조에서 자발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해결책으로 대대적 단속이나 폐쇄를 제시하기 조심스러운 이유기도 하다. “클럽이 문을 닫으면 오히려 더 치밀하고 악랄한 지하구조가 생길 겁니다. 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은 또다시 그런 곳에 유입되고요. 집창촌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극적으론 폐쇄가 지향점이 돼야겠지만 법·제도와 함께 정서적·문화적 이해를 병행해 연착륙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매매 문제 이분법 잣대로 보면 안 돼”

그는 어린 여성들이 유흥업소에 내몰리는 사회구조와 문제점이 무엇인지 다층적으로 연구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사회의 반성도 필요하다고 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에 관한 의견도 내놨다. 도움받는 사람의 의견과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주 작가의 또 다른 직업은 종교인이다. 교리에 어긋난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지만 실상을 보고 난 뒤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2000년 집창촌을 강력하게 단속했던 김강자 전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 역시 현재는 누구보다 강하게 ‘제한적 공창제’를 주장한다. 주 작가는 “성매매 문제는 이분법적 잣대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업소 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성매매 업소 여성 등 4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그 목소리를 들어 ‘옐로하우스 비가(悲歌·elegy)’로 연재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18회에 계속>

※‘옐로하우스 비가’ 1~16회를 보시려면 아래 배너를 클릭해 주세요.
클릭이 안 될 시 https://news.joins.com/Issue/11161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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