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왜 딸들만 자기 앞가림 자기가 해야해?" 네 것 내 것 따지는 자식들

2019. 3.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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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일러스트=박상훈

장난감 때문에, 과자 봉지 때문에 싸움이 붙어 서로 고자질하던 남매들. 그러나 저녁밥 먹을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둘러앉던 그 기억이 이젠 어머니의 가슴 속에만 가물가물합니다. 부모 노릇의 마지막 숙제는 어쩌면 그 기억의 불씨를 살리는 것일까요. /홍여사

누구나 조금은 그렇듯, 저도 흘러간 과거를 미화하고 있는 걸까요? 무뚝뚝하고 고집 센 남편 비위 맞춰가며, 좁은 집에서 올망졸망한 삼 남매 키워내던 삼십 년 전 그 시절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무엇보다도 그때는 우리 다섯 식구가 한마음이었거든요. 아빠는 열심히 돈 벌어오고, 엄마는 알뜰히 살림하고, 자식들은 학교 잘 다니면 된다는 단순한 꿈….

그 단순함이 사무치게 그리운 건,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착잡하기 때문이겠죠. 자식들을 가르쳐 결혼까지 시키면 부모로서는 '빛나는 졸업장'을 따는 건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더군요. 새 식구가 들어오고 셈법이 복잡해지며, 부모 노릇이 더 어려워지는 느낌입니다.

"아들만 자식이고, 딸자식은 자식도 아닌 거야?"

막내딸이 요즘 저를 찾아와 걸핏하면 판을 깔고 따지는 말입니다. 오빠만 자식이고, 언니와 나는 남이냐고. 뭐라고 답을 해도,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무한 반복될 말임을 알기에 저는 아예 입을 닫게 되지요. 문제는, 내가 입 다물면 딸이 표현의 수위를 점점 높여간다는 겁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키웠대? 딸은 낳자마자 그냥 고아원에나 갖다 주지." 그쯤 되면 저도 더는 가만히 듣고만 있지 못합니다. 치사하지만 할 말은 해야죠. "딸이라고 우리가 안 해 준 게 뭔데? 공부 잘한 네 언니 유학까지 시켜줬고, 재주 있는 너는 음대까지 보냈잖아."

"만약 오빠가 공부를 중간만이라도 하고, 쥐꼬리만 한 재주라도 있었으면 세상 끝까지라도 밀어줬겠지. 엄마도 들었잖아. 그날 아빠 말씀!"

딸은 결국 본심을 드러냅니다. 차별이니 편애니 하는 말은 구실일 뿐, 불만의 핵심은 역시 '그날의 아빠 말씀'이네요. 부모 자식 간 마음의 거리를 확인하게 한 '그날'의 일이란 부끄럽게도 유산분배에 관한 다툼이었습니다. 그날 남편은 딸들을 앉혀놓고 작심한 듯 말을 꺼내더군요. 남보다 값비싼 공부시켜, 바리바리 싸서 시집보내줬으면 부모 노릇을 기본은 한 것이니, 이제는 스스로 앞가림들 하라고요. 물론 그런 말이 느닷없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남편은 딸들이 친정에 와서 돈 문제로 우는소리 하는 걸 못마땅해했습니다. 요즘 애들은 근성도 자립심도 없다고 혀를 차곤 했죠. 더구나 최근엔 직장을 그만둔 큰딸이 부쩍 돈 얘기를 많이 꺼냈는데, 아마 제 딴에는 손 놓고 있기가 불안해서 그런 모양이지만 듣는 부모마음은 편치가 않았죠. 듣다 못한 제가 남편에게, 큰딸을 좀 도와주자고 한 것이 오히려 사달이 났습니다. 남편은 버럭 화를 내더군요. 신랑이 여전히 잘 벌고 있고, 저도 눈만 좀 낮추면 취업할 수 있을 텐데, 왜 자꾸 부모 도움받을 생각부터 하느냐고요. 그러더니 그날 기어이 딸에게 직접 못을 박은 겁니다.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하라고.

"그런데 아빠. 왜 딸들만 자기 앞가림 자기가 해야 해?"

아버지의 작심발언에 발끈해서 대든 건 큰딸이 아니라 막내였습니다.

"아들은 결혼할 때 집도 해주고 사업도 물려주고, 부동산도 몰아줄 거라면서 딸들은 왜 모른 척이셔? 오빠는 어디 돈 맡겨놨었어?"

그렇게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 딸의 불만은 급기야 어린 시절 얘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아버지의 유난한 아들 사랑에 상처받은 일들을 들먹이며, 도대체 오빠가 아들 노릇 한 게 뭐 있느냐고 따지더군요. 딸들이 열 번 찾아올 동안 아들 며느리 한 번이라도 오느냐고요.

딸들의 강한 반발에 남편은 기가 막힌 모양이었습니다. 대놓고 딸들이 질색할 말을 하더군요. 아들 노릇이라는 게 뭐냐. 아버지의 사업과 재산을 물려받아 지키고 늘려가는 거다. 네 오빠는 그 일을 제법 잘하고 있으니 괜한 걱정 말아라. 너희가 사흘돌이 친정에 오고, 엄마와 자주 통화하는 건, 딸들이 딸 노릇 하는 것뿐이다. 그게 그렇게 억울하면 당장 그만둬라. 나는 애당초 아들이고 딸이고 신세 질 생각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너희 참 건방지구나. 내가 내 돈을 어떻게 쓰든 말든, 너희가 왜 왈가왈부냐.

그날 이후, 큰딸은 전화 한 통 없습니다. 대신 막내딸이 와서, 저를 붙잡고 불만을 쏟아내지요. 불공평한 재산분배보다 더 속상한 건 어린 시절에 겪은 아버지의 편애랍니다. 상처가 깊어서, 오빠와의 관계도 비틀려 버렸다네요. 아버지 때문에 오빠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자랐고, 올케 언니는…. 저는 그 대목에서 막내의 말을 끊었습니다. 너, 그만 가라고 했죠. 딸에게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는 뻔했으니까요. 며느리가 친딸만큼 잘할 것 같아? 다 가식이고 시늉뿐인 거 알잖아.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더 이상은 자식들이 서로 헐뜯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말씀은 저렇게 해도 다 생각이 있으실 테고, 나 또한 너희 입장을 잘 알겠으니, 인제 그만 앙앙대고 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툭 내뱉는 말.

"아버지도 생각이 있으시다고? 아, 난 그 말이 제일 듣기 싫어. 아버지의 꼰대 같은 생각 말고, 상식대로, 법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네 것 내 것 따지기 시작하니, 남보다 더 미운 게 가족이네요. 낡은 사고방식에 갇혀 내 말은 안 듣는 남편도 싫고, 빚쟁이처럼 독촉하는 딸들도 밉고, 그저 아들이라는 이유로 노력 없이 인정받는 아들도 맘에 들지 않습니다.

가장 씁쓸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헐뜯는 딸들의 '편애' 논리입니다. 저희 기억은 상처투성이라지만, 제 기억은 다릅니다. 남편도 저도 진심으로 아들딸을 사랑했습니다. 남편이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기대와 관심을 쏟아부었던 것은 맞지만, 딸들이라고 무관심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쁘게 키워, 좋은 신랑감에 바리바리 싸서 시집보내는 것. 그것만이 남편이 아는 딸 사랑법이었을 뿐.

늙고 어리석은 우리 부부의 마지막 부모 역할은 무엇이며, 대체 어디까지일까요?

※실화를 바탕을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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