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은 카페, 남탕은 옷가게..장안동 목욕탕의 폼나는 변신
장안동에 이상한 목욕탕이 나타났다
35년 된 주택가 목욕탕 개조한 ‘듀펠센터’, 입소문 타고 쇼핑명소로
반짝 핫플레이스보다 오래 가는 웜플레이스 될 것
서울 지하철5호선 장한평역에서 버스로 4정거장, 걸어서는 20분 거리. 스마트폰 지도앱은 횟집과 고깃집, 비즈니스 호텔을 거쳐 후미진 주택가로 기자를 안내했다. 설마 이곳에 쇼핑센터가 있다고? 의문이 들 무렵,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쇼핑센터 ‘듀펠센터 (DUFFEL CENTRE)’다.
◇ 옛 목욕탕의 흔적이 묻어나는 쇼핑센터
지난 8일 문을 연 이곳은 발 빠른 인스타그래머들에 의해 새로운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35년 간 대중목욕탕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 쇼핑센터로 만들었다. 정면에서 보면 유럽 어느 골목의 카페같지만, 측면으로 돌면 빨간 벽돌로 만든 벽과 목욕탕 굴뚝이 옛 정취를 풍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페와 서점, 식당이 보였다. 평일 오후 시간대임에도 카페 안 벤치에는 빈자리 없이 사람들로 들어찼다. 개장한지 10일 남짓됐지만, 공간에선 몇 년 묵은 온기가 느껴진다. 마감처리를 하지 않은 벽과 바닥,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세숫대야와 타월, 목욕의자 덕분일까.
이곳은 여탕으로 쓰이던 공간이다. 한 쪽에는 북미 바리스타 챔피언이자 타르틴 베이커리의 디렉터 데빈 채프먼의 카페 ‘파운틴’이 있다. 목욕탕에서 영감을 얻어 ‘샘’을 뜻하는 이름을 지었다. 바로 옆 ‘산,책’은 패션 저널리스트 홍석우 씨가 수집한 책을 모아 꾸린 서고로, 빈티지 서적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안쪽 명패 없는 문 앞엔 사람들이 더 몰려있다. 식당 ‘콘반’에 들어가기 위해 선 대기줄이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데, 사실 핫플레이스를 원한 건 아니예요. 제 옷을 좋아하는 고객과 저와 공감대를 갖는 분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을 뿐이죠." 안태옥 듀펠Inc 대표의 말이다.
안 대표는 의류 브랜드 스펙테이터와 홈 그로운 서플라이 등을 운영하는 패션 디자이너다. 그는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6년 간 매장을 운영하다 듀펠센터를 열었다. 왜 장안동일까? "번화가는 너무 비싸잖아요. 포털 사이트의 로드뷰로 이곳 저곳 눈품(?)을 팔다보니 장안동까지 왔죠. 처음부터 이 동네를 고집했다기보다 건물이 마음에 들었는데, 마침 목욕탕을 정리하려던 전 주인과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웜플레이스’ 되고파
후미지고 조용한 주택가의 변신은 그렇게 시작됐다. 쇼핑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하니 업체 16곳이 모였다. 안 대표 표현에 따르면 "독립적이고, 용감하고, 소박한" 친구들이다. 굳이 번화가에 매장을 내지 않아도, 애써 홍보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찾게 만드는 자기 분야의 실력파들.
남탕이었던 2층과 주인집이었던 3층은 실력파 브랜드들로 꾸며진 쇼핑 공간이다. 안 대표의 브랜드를 모은 ‘네버그린스토어’를 비롯해 ‘씸비트윈’, ‘에이카화이트’, ‘usdc’ 등이 들어섰다. 트럭의 폐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과 영국 잡지 ‘모노클’ 등 세계적인 브랜드도 입점했다. 이달 말에는 보일러실로 쓰던 지하를 개조해 이자카야를 선보일 예정이다.
요즘엔 낡고 촌스러운게 힙한 것이라더니, 드문드문 옛 목욕탕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물을 보자니 과연 젊은이들이 좋아할만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는 ‘인증족’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안 대표는 "듀펠센터가 취향과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편히 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건물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골목에 활기가 생겼다.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과 가던 길을 멈추고 옛 목욕탕을 기웃거리는 이웃 주민들까지. "동네 주민들이 오셔서 커피를 마시는데,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원래 목욕탕이 동네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잖아요. 저희도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웜플레이스(Warm place)로, 지역민의 자랑거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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