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물 주입이 부른 작은 지진이 쌓여 큰 지진 불렀다(종합)

윤신영 기자 2019. 3. 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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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 있는 포항지열발전소가 가동을 멈춰 적막한 상태다. 연합뉴스

2017년 11월 15일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 사태를 야기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이 자연적 원인으로 일어난 자연지진이 아닌 ‘촉발지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촉발지진은 규모 5.4의 지진 전체가 지열발전소 물 주입에 의해 직접 발생한다는 뜻의 ‘유발지진’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물 주입으로는 작은 지진(미소지진)이 유발됐고, 이 미소지진의 힘이 누적돼 마침 지열발전 실증시설이 지어지던 지역 지하에 존재하던 임계응력단층(압력을 받아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의 단층)에 영향을 미쳐 규모 5.4의 큰 지진을 ‘촉발’시켰다는 뜻이다. 

이 같은 결론은 포항에 주입한 양의 물로는 규모 5.4의 큰 지진을 일이 일어나기에 크게 역부족이라는 기존 연구 결과의 모순을 해결한 결론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된 임계응력단층의 존재를 지열발전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파악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 소재가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지질학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약 1년간 수행한 연구결과를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발표했다. 이강근 정부조사연구단장(대한지질학회장,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은 “(기존에 논란이 많던) 속도모델을 다시 구하고 정확한 진원위치를 결정하는 데에 특히 신경을 써서 조사 연구를 했다”며 “그 결과 지열 발전 실증연구 수행 중 두 개의 지열정을 굴착하고 이들 지열정을 이용해 물을 주입하던 중 발생한 자극(수리자극)이 일어나 주변 단층에 미소지진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울려는 사람을 찰싹 때리면 울음이 터지는데 바로 그 상태의 단층이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라며 “단층면을 따라 단층면이 움직이려는 힘과 마찰력이 균열을 일으키던 상태에서 물이 주입돼, 마치 비오는 날 자동차 타이어가 밀리듯 지층이 밀리며 지진이 발생했다”고 비유했다. 다만 이 때 일어난 지진은 규모가 작은 미소지진으로, 규모 5.4에 이르는 포항지진 자체가 이 때의 단층 변화로 일어나지 않았다. 포항지진은 미소지진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며 본진의 진원 위치에 도달했고, 이것이누적돼 지진을 일으킨 것으로 연구단은 결론 내렸다.

연구단은 여러 다른 방법으로 지열발전 물 주입에 의해 발생한 작은 지진들의 위치를 정확히 결정했다. 2009년 1월 1일부터 부근 50km 내에서 발생한 520여 개의 지진 데이터를 모두 모은 뒤 이 가운데 정확한 진원을 결정할 수 있는 지진 데이터를 98개 확보했다. 이들의 위치를 3차원 공간에 표시한 결과, 이번에 새로 발견된 임계응력단층의 평면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단은 지열정이 이 단층면의 연장면을 통과하는 위치인 3783m 깊이에서 막혀 있는 점을 근거로, 이 단층이 파열됐다는 사실, 2번 지열정에서 급격히 물이 빠지고 지하수위가 급격히 변화한 것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 단장은 “굴착시 발생한 이수(흙탕물) 누출과, 2번 지열정을 통해 높은 압력으로 주입한 물이 주변 지층에 압력(공극압)을 가했다”며” 이 힘이 포항지진 단층면 상에 남서 방향으로 깊어지는 방향으로 미소지진을 순차적으로 일으켰다”고 밝혔다. 이 미소지진은 시간 경과에 따라 본진의 진원 위치에 영향을 미쳤고, 이것이 누적돼 거의 임계응력상태에 있던 단층에서 포항지진이 촉발됐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연구는 지난해 4월 발표돼 지열발전에 의한 유발지진 논란을 촉발시킨 이진한 고려대 교수, 김광희 부산대 교수의 연구와는 비슷하면서 다르다. 구체적인 진원의 위치가 훨씬 많은 데이터와 정교한 비교 분석으로 확정됐다. 이 교수팀의 논문은 물 주입이 직접 규모 5.4의 지진을 일으킨 것으로 결론 내리면서도 이론상 필요한 물의 수백 분의 1에 불과한 양으로 지진이 일어난 데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적은 양의 물 주입이 먼저 작은 지진을 다수 일으키고, 그 힘이 확산되고 누적돼 이미 지진을 일으킬 준비가 돼 있던 기존 임계응력단층을 건드려 지진을 일으켰다는 설명을 채택해 모순을 해결했다.

연구단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동일본대지진이나 2016년 경주지진의 영향설도 부인했다. 이 단장은 “관련 분석을 실시했으나, 그 영향은 미미해 원인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물 주입에 의한 영향이 훨씬 크다”며 사실상 관련성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미 지하에 존재하던, 지진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임계응력단층의 존재를 기존에 알지 못하고 공사를 진행했던 점은 추후 논란의 여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임계응력단층의 존재를 조사를 통해 알았다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 공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단장과 연구단의 여인욱 전남대 교수는 “임계응력단층은 매우 많으며 그렇다고 당장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활동으로 지진을 쉽게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포항지진이 자연지진이 아니라고 결론내릴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이번 결과는 포항지진 정부합동조사연구단의 공식 견해다. 하지만 일부 학자는 여전히 포항지진의 원인에 대해 이견을 갖고 있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는 동일본대지진 등에 의해 형성된 응력단층이 주된 원인이며 물 주입에 의한 영향은 이를 보조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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