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칼 든' 검사 vs '맨손' 변호사.. 방어권 빼앗긴 서민들
증거기록 복사에 한달씩 걸려
검사는 컬러·변호사는 흑백
“피고인 방어권 복사기에 달려”
수사기록 전자파일 교부 시급
“피고인 방어권이 복사기의 운명에 달려있습니다.”
최근 한 형사변호사가 온라인에 올린 글이 법조계에서 화두다.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16일 검찰 수사기록의 전자화를 주장한 가운데, 실제 수사기록을 복사하는 변호사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해당 글의 반향이 커지고 있다.
김윤호 법무법인 라온 변호사는 최근 자신의 SNS에 박종우 서울지방변호사회장과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을 향해 “작은 법률사무소에서는 열람복사일을 재앙의 날처럼 달력에 표시해둔다”며 ‘읍소문’을 게재했다. 김 변호사는 “피고인의 인권보장을 위해, 검찰이 칼을 들고 덤빌 때 변호인한테 야구방망이라도 들고 싸울 수 있게 해준다는 ‘무기대등의 원칙’을 배웠다”면서 “그런데 왜 판·검사는 컬러(원본)로 증거를 보고 변호인은 흑백(복사본)으로 봐야 하느냐. 증거 놓고 싸우라면서 증거가 다르다”고 토로했다. 그는 “(진짜 문제는) 내 손의 증거기록은 인쇄가 엉망인데 판·검사님 손에 증거들은 반듯하다는 현실, 증거기록 복사하기 위한 복사기 대기에 한 달씩 걸리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수사종결로 증거개시가 되면 검찰·법원의 증거열람실에 달려가지만, 열람실 실무관은 2~3주 심하면 한 달 뒤에 다시 오라고 한다”면서 “이유는 복사기 예약이 꽉 찼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디 시골 얘기가 아니고 서울 서초동 중앙 얘기”라고 하소연했다. 그의 글에는 많은 변호사가 공감한다는 댓글을 달고 있다. 실제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기록만 1t 트럭 분량에 달하는 소위 적폐수사가 계속되면서, 일반 형사범죄의 수사기록을 복사하는 데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고 한다.
법관 출신 한 변호사는 20일 “검찰이 수사기록을 스캔해서 전자파일을 교부하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고위 법관은 “민사소송에서 서면을 30쪽으로 제한하는 것처럼, 형사소송에서도 증거개시 수사기록의 총량을 규제하는 규칙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찬희 변호사협회장은 “서울은 올해부터 형사소송 전자화 시범 실시를 할 예정이지만, 조속한 전면 실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례없는 두 전직 대통령 수사와 사법부 수사를 통해 검찰 권력이 그 어느 때보다 비대해졌다. 진정한 검찰개혁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법정 풍경과 법원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일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통상 정치권이 생각하는 검찰개혁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가 전부이지만 실제 현실에서 법조계가 간절히 원하는 검찰 개혁은 조서·영장·기소 권한을 분산시키는 과제가 급선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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