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서 활동하는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예수 고난 담은 도자회화 '14처' 신봉동성당에 국내 첫 설치
빛이 강림하자 새날이 시작됐다. 17일 아침 첫 교중미사가 열린 경기 용인시 신봉동성당 회중석 안으로 해가 들어왔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쏟아진 빛이 신자 700여 명의 얼굴을 물들였다. 화선지처럼 유리에 번진 주홍·노랑·파랑·초록…. '빛의 화가'로 불리는 재불 화가 김인중(79)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처음으로 고국 성당에 대거 설치돼 선보인 자리다. 이날 신자 김은미(43)씨는 "처음 들어섰을 때 미술관 같아 놀랐고 나중엔 천상의 기분에 휩싸였다"고 했다.
현지서 세잔·마티스·피카소를 잇는 작가로 평가받는 김 신부가 1975년부터 파리 도미니크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스테인드글라스·회화·도자 등을 아우른 40여 년 작품 세계가 집약돼 있다. 회중석 한가운데 대형 작품이 9m×6m, 나머지 12개 작품은 1m×6m 크기다. 채색된 바탕 유리 위에 조각 유리가 덧붙어 있어, 작품은 빛에 녹아내리는 여러 겹의 빙하처럼 보인다. 김 신부는 본지 통화에서 "하느님은 빛이니 성당을 찾는 이들이 빛을 통해 고뇌에서 해방되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물 면적 900평에 4층 규모의 성당은 김 신부와 교류하는 프랑스 건축가 베르나르 게일러(69)씨가 밑그림을 그려, 1년 반 공사 끝에 최근 완공됐다. 노출 콘크리트 방식의 단조로운 외관과 달리, 회중석 내부는 지극히 화사하다. 베이지색 벽면과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무겁고 침침한 기존 성당의 분위기를 몰아낸 덕이다. 이병기(72) 건축위원장은 "성당은 마음이 무거울 때 주로 찾지 않느냐"며 "빛의 기운만으로 근심이 사라지도록 화사하게 공간을 꾸몄다"고 말했다.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13점과 ‘14처’ 도자회화가 장식된 경기도 신봉동성당. /김지호 기자
스테인드글라스 사이사이 배치된 '14처(處)' 원형 도자회화도 김 신부의 작품이다. 14처는 십자가 진 예수의 고난을 구상(具象)으로 표현하는 게 보통이지만, 김 신부는 색의 연쇄만으로 추상화하는 파격을 택했다. 표면에 예수의 얼굴이 없기에, 눈을 감아야 보이는 회화다. 김 신부는 "고향 근처 사찰 갑사·동학사를 둘러본 뒤 영감을 얻었다"며 "흐르는 물과 흐드러진 나무의 이미지가 참 좋았다"고 했다. 수묵화처럼 보이는 이유다. "둥근 도자기에 14처를 그린 건 처음이다. 인생은 굴러가는 것 아닌가. 나는 정치나 국적을 떠나 범(汎)세계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아마 스님들도 와서 보시면 좋아할 것이다." 성당 측은 개신교나 불교 신자들에게도 성당을 문화·행사 공간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김 신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오는 6월 프랑스 앙베르시(市)에 개관한다. 김 신부는 "등산가처럼 하늘을 보기 위해 걸음 내딛는 마음으로 작업한다"며 "갇히지 말고 무한히 열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