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모든 부족 신 포용한 페르시아인 '유일신 정신문명'을 낳다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
[경향신문] ㆍ정신세계 연결한 신학 혁명

때는 서력 1257년 마지막 달. 우리는 너무나 운이 나빠 칼리프와 함께 바그다드의 성채에 갇혀 있고, 칭기즈칸의 손자 훌레구가 성 밖에 포진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훌레구는 이렇게 전갈을 보내온다.
‘영원하고 전능한 하느님이 칭기즈칸 일족에게 세계를 나누어 통치하라고 하셨다. 당장 나와서 항복하라.’
그러나 알라가 곧 전지한 창조주 하느님이며, 칼리프야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지상에서 실천하는 최고의 군주가 아닌가? 몽골이 말하는 하느님 텡그리는 알라와 어떻게 다른가? 어떤 하느님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그 하느님은 몽골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지상 모든 인간들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기독교나 이슬람의 신자가 아닌 이들까지 믿고 있는 최고도로 추상화된 이성적인 하느님 개념은 몽골의 정복 몇 천년 전 중앙아시아 초원과 서아시아 농경지대 언저리에서 탄생했다.
언어는 구체적인 사물을 칭할 때도 철저하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우리가 무심코 ‘개미’라는 단어를 말할 때, 그 개미가 모년 모일 모처에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던 특정한 개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개미라는 이름으로 추상화된 관념상의 존재다. 다시 말해 중국인이 ‘마이( )’라 하고 영국인이 ‘앤트(ant)’라 해도 그것은 분명 ‘개미’의 특성을 가진 종을 칭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특정한 언어집단을 넘어선 사회는 불가능하다. 인간이 지역적 한계를 넘어 집단을 이루고, 시간의 한계를 넘어 기록과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추상화 덕분이다. 인간이 추상화 수준을 끝없이 높일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인간 사회를 계속 확장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의 언어에서 가장 추상적인 단어는 신(神)이다. 흔히 초원 문명이 인류사에 기여한 바를 나열하라면 사람들은 기마니 궁술이니 역참이니 기동성이니 하며 오직 전쟁과 행정 관련 단어만 나열한다. 그러나 초원을 넘어 세계사를 뿌리까지 뒤흔든 거대한 발명품은 그런 구체적인 사물의 차원을 뛰어넘는 초원의 새 신학이다.
■ 신에 대한 인식의 틀을 깨다
이제 3천 몇 백년 전 어느 때 볼가강 동쪽, 좀 더 구체적으로 아랄해에서 이르티시강 사이의 초원으로 몸을 옮겨보자. 마침 소와 양을 옮겨야 하는 시절, 하늘은 며칠을 옮겨가도 변함없이 새파랗다. 가끔 광풍이 불어 우박이 몰아치지만 동서남북 어디에도 하늘의 빛깔과 모양은 같다. 하늘은 주기적으로 유목민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수년간 초원에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이어지거나, 시커먼 겨울 하늘에서 며칠 내내 땅을 뒤덮도록 눈이 오면 가축이 버틸 도리가 없다. 죽지 않으려고 서로 뺏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초원의 하늘은 그토록 자비로우면서도 무섭다.
하늘의 조화로 우리 집단은 서남쪽으로 움직여 오늘날 이란이라고 불리는 땅으로 들어왔다고 하자. 그곳의 하늘은 오히려 초원보다 짙푸르다. 그리스인들은 우리를 페르시아인이라 부른다. 그리스인 헤로도토스는 ‘그들은 하늘 전체를 제우스(아후라 마즈다)라고 부른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페르시아인에 관한 더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신상(神像)이나 신전이나 제단을 세우는 것을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그런 행동을 하는 이들을 바보라고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그리스인과 달리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이하 직접 인용은 G C Macaulay의 영역에 의거)
우리는 여기서 이미 오늘날 인류가 도달한 가장 추상적인 신과 마주한다. 당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와 지중해 세계 전체가 따르고 있던 철의 교리는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갓 이란 땅에 도착한 페르시아인들은 신을 어떤 지상의 구조물과도 연결짓지 않았다.
다만 눈에 보이지는 않으며 시간을 초월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거대한 공간인 하늘과 결합시켰을 뿐이다. 신의 이름 또한 “주(아후라) 지혜(마즈다)”였다. 지혜는 인간의 능력 중 가장 추상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 특정한 장소에 가둘 수 없는 유용한 정신활동의 총칭이다.
그때까지 페르시아를 둘러싼 고대 정주문명은 모조리 신전문명이었다. 해당 민족의 얼굴을 닮은 신은 그 민족을 보호했다. 그러므로 아시리아의 왕은 ‘나는 엘람의 지구라트를 부숴버렸다. 그들의 신들을 바람에 날려버렸다’고 선언한다. 그들에게 민족과 그 수호신은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 당연하다.
신앙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으므로, 승자는 일단 신전을 부순 후 그들의 만신전(판테온)에 있는 신을 거둬들인다. 그러므로 제국의 만신전의 신상은 계속 늘어간다. 바빌론 팽창과 최후의 날의 비밀도 모두 이 만신전에 들어 있었다.
서기전 539년 좌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황무지에 사는 이들. ‘가진 것이라고는 짐승 가죽밖에 없는, 과수원도 포도주도 없는 곳에 사는 이들’이 정주문명의 심장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빌론의 왕 나보니두스는 꼭 몽골군을 대하는 칼리프의 마음으로 바빌론의 성벽을 지켰을 것이다. 나보니두스의 석비와 여러 몇 개의 점토판에 그때의 일을 복기하면 상황은 이렇게 돌아갔다.
신년 축제의 달에 나보니두스는 여전히 아라비아에 머물면서 바빌론의 주신 마르둑의 거리행진을 주관하지 않았다. 그는 달의 신 ‘신(Sin)’을 더 존중했기에 민중의 불만을 샀던 모양이다. 신년이면 모든 신들이 바빌론의 거리를 행진하고 신전으로 들어가 안치되는 것이 바빌로니아의 관습이었다. 당시의 제국 바빌론의 만신전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다. 마침내 나보니두스가 돌아와 신들의 행렬을 주관하여, 어떤 신은 시내로 들어가고 어떤 신은 못 들어갔을 때, 키루스의 군대가 도착했다. 티그리스강을 건넌 키루스의 군대를 맞은 것은 강력한 적이 아니라 투항하는 인파였다. 나보니두스는 도망쳤고, 군대는 싸우지도 않고 성을 내주었다. 성으로 들어온 페르시아인들은 놀랍게도 칼을 차고 신전으로 들어가지도 않았고, 제사의 공물을 거르지도 않았으며, 바로 평화를 선언하고 재건 활동에 들어갔다.
BC 539년, 바빌론의 왕 내몰고 새 왕이 된 페르시아인 키루스 정복한 땅의 신전 파괴하지 않아 그가 그토록 관대할 수 있었던 건 지혜를 뜻하는 초원의 신 ‘아후라 마즈다’를 믿었기 때문
스스로 “전 세계의 왕, 위대한 왕, 강력한 왕, 바빌론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사방의 왕”이라는 키루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성서>도 ‘고레스(키루스)가 바빌론에 끌려온 유대민족을 해방시켰다’고 증언하니, 원통에 새겨진 키루스의 자찬은 완전히 거짓은 아닐 것이다.
나보니두스는 마르둑을 경배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멍에를 씌워 끊임없이 부렸다. 그는 각자 신전에 있던 신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들어갔기에 신들도 화가 나 신전을 떠나버렸다. 그래서 신들의 엔릴(최고신)은 그를 대신할 왕을 찾았고 그가 바로 나다. 나는 한 번의 싸움도 없이 바빌론으로 들어왔고, 모든 백성들이 나를 반겨 발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바빌론에 있는 수많은 민족들을 원래 땅으로 돌려보냈고, 바빌론으로 가져온 모든 신들을 모두 원래의 거소로 돌려보냈다. 그는 아무것도 부수지 않고 황폐한 것을 복구했다(이상 Irving Finkel 영역에 의거).

■ ‘우주에 편재하는 신’ 창조
아시리아의 왕과 달리 키루스는 페르시아의 주신 아후라 마즈다가 아닌 바빌론 주신 마르둑의 이름으로 민족해방자의 역할을 자임한다. 그는 세계에 자신이 가장 관대한 이라고 주장한다. 잡혀온 여러 민족과 그들의 신을 원래 장소로 보내는 정복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었다. 그들은 우리 민족과 우리 신이라는 자의식이 별로 없었던 것일까?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페르시아인들처럼 외국의 관습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없다. 그들은 메디아인의 복장이 자기들 것보다 더 멋있다고 입고, 싸울 때는 (편리한 대로) 이집트식 흉갑을 착용한다. 심지어 그리스인들에게 만연한 미소년과의 동성애까지, 외국의 관습을 마구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초원인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인들은 절대로 강에 오줌을 누지 않으며 손을 넣어서 씻지도 않고 남들이 그렇게 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것이 조로아스터교의 청결법이며, 초원에서 칭기즈칸의 야삭(법)으로 면면히 이어졌다. 이란에 이주한 후 농경을 받아들였지만 페르시아인은 원래 유목민이었고, 키루스 자신도 소치기의 손에서 길러졌다. 그리고 그는 “지혜의 주” 아후라 마즈다를 믿는 이였다(특히 조로아스터교 연구의 최고 권위자 메리 보이스는 이를 확신한다). 그럼에도 그가 다른 민족과 그들의 신에게 그토록 관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신이 시공을 초월한 지혜 자체임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주는 “지혜”와 “선” 자체이기에 특정한 민족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고, 더욱이 인간의 모습을 하지도 않았는데 신상을 긁어모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다른 민족의 신의 이름을 편한 대로 차용한들 지혜의 주가 화를 낼 리도 없지 않은가? 그들은 속민들에게 아후라 마즈다를 믿으라 하지도 않았고, 구태여 그들의 신전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페르시아는 무수한 종교와 무수한 민족이 공존하는 제국이었다. 이렇게 초원 하늘에서 생겨난 아후라 마즈다가 오늘날 이란 땅으로 왔고, 그곳에서 페르시아인들의 정신적인 기둥이 되어, 지상에서 처음으로 세계 제국이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훗날 파괴되지 않은 신 ‘여호와’는 부족신의 사명 벗어나 유일신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돼
오늘날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인간 사회에 정의가 있고 자연계에는 고유의 질서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배후에 무어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정의와 질서 자체인 신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바로 페르시아어로 아후라 마즈다다. 기하학이 없었다면 현대 물질문명 자체가 없었을 터이니, 우리는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 거대한 빚을 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유일신을 한 축으로 하는 현대의 정신문명은 페르시아인들의 신학 혁명에 그만큼의 빚을 지고 있다. 사실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였으므로 신전이나 신상을 만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구체적인 신전과 신상 대신 텅 빈 하늘을 보며 그들은 보이지 않지만 우주에 편재하는 신을 창조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지상에서 모든 부족신을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오히려 부족신의 시대를 끝냈고, 편재하는 유일신이라는 “신학 혁명”으로 좋든 싫든 세계가 정신적으로 연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아가 그 기반에서 스펀지처럼 주변 문명의 성과를 흡수하며 순식간에 세계 제국을 만들 수 있었다. 여호와가 부족신의 사명을 벗어나 유일신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페르시아인들의 신학 혁명 때문이었다.

여담이지만, 신이 정말 자비로운 이라면 인간이 그의 형상을 물려받았을지 몰라도 그의 지혜를 물려받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똑같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람마다 다른 행동을 한다. 키루스가 바빌론을 점령할 때 그는 해방자였지만, 훌레구가 바그다드를 약탈할 때 그는 철저하게 파괴자였다. 키루스가 적의 왕까지 살려주고 대우했지만 훌레구는 적의 수장은 물론 항복한 민간인까지 학살했다. 몽골인들은 정복자 시절에는 백성을 돌볼 책임이 없고 지배자가 된 후에야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인간 세상에서 모든 혁명은 창조와 파괴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오늘날의 인터넷처럼, 유목 세계에서 출발한 종족들이 정신과 물질 양면으로 세계를 유례없는 수준으로 연결했지만, 어떤 때는 키루스 어떤 때는 훌레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필자 공원국

<춘추전국이야기>(11권)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을 쓰고, <말, 바퀴, 언어> 등 다수를 번역했다. 유라시아 유목문명에 관한 저술을 준비하는 동시에 파미르 고원에 장기 거주하며 현지 환경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공원국 | 역사인류학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대통령 순방 배웅에 정청래 빠지고, 이례적으로 김민석 총리 참석…왜?
- 젠슨 황 ‘싸게 살 기회’ 발언에 “위험한 낙관···주식 조언 자제해야”
- 이준석 ‘사전투표 폐지’ 장동혁에 “국힘, 윤어게인 정당 됐다”
- 조국혁신당 “국민 경고 무겁게 받들어…이 대통령의 정치권 질타, 거대 양당 성찰해야”
- 백사장에 떠밀려 와…속초 청호동 방파제서 5.6m 고래 사체 발견
- [속보]코스피, 장중 급등해 8000선 회복
- 임미애 “최고의 후보 냈지만 패배… 대통령 지지율에만 기댄 민주당 매우 게을렀다”
- 넷플릭스 국내 1위 ‘참교육’···‘사이다’인데 씁쓸한 뒷맛
- [인터뷰]“아빠는 이란계, 엄마는 유대계···미국인인 내가 이란과의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
- 레드벨벳 노래에 ‘손가락 하트’···콜롬비아 대선에 등장한 ‘K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