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살 냉면집 헐고 35살 냉면집 보존..서울시 입맛대로?

최재원 2019. 3. 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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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 재개발 형평성 논란
박원순시장 "을지면옥 보존"
세운3구역 개발 보류하더니
市가 직접개발하는 4구역은
더 오래된 음식점 밀집에도
일사천리로 사업 진행 추진
3구역 토지주들 "내로남불"
감사원 행정감사 청구키로
서울 종로구 예지동에서 67년째 영업 중인 원조함흥냉면. 세운4구역 정비구역에 포함돼 내년에 철거될 예정이다. [한주형 기자]
평양냉면 맛집(을지면옥) 보존을 이유로 세운3구역 등 세운지구 재개발 재검토를 선언한 서울시가 바로 인근에서 산하 공기업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를 통해 직접 개발하는 세운4구역 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시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세운4구역에는 35년 된 을지면옥보다 훨씬 오래된 67년 전통의 함흥냉면 노포(老鋪) 등이 있음에도 제약 없이 철거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행정이란 비판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개발 중단 이후 보상 지연에 따른 생계난과 주변 환경 노후화로 안전 위협 등에 내몰린 세운3구역 영세 토지주 500여 명은 이르면 이번주 감사원에 서울시에 대한 행정감사를 청구할 예정이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8일 개최된 서울시의회 285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에서 '서울주택도시공사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동의안'이 가결됐다. 이날 상정된 안건의 핵심은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비 조달을 위해 SH공사가 공사채 8500억원 발행을 행정안전부에 신청하겠다는 것이다. SH공사 관계자는 "공사채 발행을 행안부에 신청하려면 절차상 시의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서 "8500억원은 공사 측 안이고 최종 발행금액은 행안부 심의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입정동에서 35년째 영업 중인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 서울시가 올해 초 을지면옥 등 노포 보존을 이유로 세운지구 개발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 [한주형 기자]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월 1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을지면옥 등 노포 보존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으며, 같은 달 23일 세운3구역 등 세운재정비지구 정비사업을 연말까지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반면 불과 보름 뒤인 지난달 7일 서울시와 SH공사가 개발하는 세운4구역에 대해서는 사업 추진을 위한 채권 발행에 동의해달라며 시의회에 안건 상정을 요청했다. 세운4구역은 을지면옥·양미옥 등 노포 보존을 이유로 재개발을 보류시킨 세운3구역의 청계천 건너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예지동 원조함흥냉면(67년째 영업), 인의동 함흥곰보냉면(60년째 영업) 등 노포들이 세운4구역에 다수 위치해 있다. 원조함흥냉면은 내년에 철거와 함께 이주할 계획이고, 함흥곰보냉면은 철거에 대비해 이미 인근 세운스퀘어로 임시 이전했다.

세운재정비지구 개발 전면 재검토를 선언한 서울시가 직접 개발하는 세운4구역에 대해서는 노포 철거를 눈감는 것이 형평성 차원에서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정비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여당 소속인 정재웅 의원조차 "세운3구역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시민들의 안전 확보가 시급하며, 4구역은 3구역과 같은 노포가 많음에도 일사천리로 사업이 진행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정 의원은 매일경제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세운지구 재개발은 박 시장이 본인이 취임한 이후 계획을 바꿔 확정해 놓은 것인데 노포를 이유로 전면 재검토를 선언한 것은 행정에 일관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면서 "아직까지 박 시장에게서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고 말했다.

세운3구역 영세 토지주들은 서울시가 산하 공기업인 SH공사를 통해 개발 중인 세운4구역의 철거·보상 작업을 최근 진행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내로남불 행정"이라며 형평성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세운3구역의 한 주민은 "세운4구역의 원조함흥냉면은 을지면옥보다 훨씬 더 오래된 노포이고 예지동 시계골목도 오랜 전통이 있다"면서 "서울시가 4구역에 대해 보존하겠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민간이 추진하는 사업만 막는 것은 명백히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세운3구역의 을지면옥과 양미옥, 조선옥 등은 2015년 생활유산으로 지정됐기에 보존 검토가 필요하지만 세운4구역의 원조함흥냉면 등은 생활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아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 '역사도심 기본계획' 214쪽에는 세운상가 일대에서 을지면옥, 양미옥, 조선옥 등 16곳이 생활유산 목록에 올랐지만 구체적인 보존 계획 등은 정해진 것이 없다. SH공사 관계자는 "세운3구역 토지주 입장에서는 형평성 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안타깝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한편 세운3구역 영세 토지주 500여 명은 올 초 서울시의 갑작스러운 개발계획 재검토로 인해 정상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며 감사원에 행정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토지주 470여 명이 이미 행정감사 청구요청 동의서를 작성했고, 이르면 이달 중순 감사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전체 토지주 618명 가운데 3-1, 3-4·5 등 이미 철거된 일부 구역을 제외한 대다수 토지주가 감사 청구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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