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표지석-조선 6조] <26>병조(兵曹)

김정욱 기자 2019. 3. 10. 17:0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조선 시대 중앙행정 기구 6조 중 하나인 '병조(兵曹)'는 군사와 국방에 관한 업무를 보던 곳으로 지금의 국방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병조의 수장은 판서(判書)로 정2품에 해당하며 현재 국방부 장관과 같은 격이다.

6조 가운데 병조의 서열은 네 번째였다.

그러나 나라의 안보가 달린 국방이라는 중대한 업무를 맡은 곳이어서 병조판서의 실권은 이조판서 다음인 두 번째였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경제] 조선 시대 중앙행정 기구 6조 중 하나인 ‘병조(兵曹)’는 군사와 국방에 관한 업무를 보던 곳으로 지금의 국방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병조터’의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 외교부 청사 인근에 있다.

병조의 별칭은 ‘하관(夏官)’ ‘하관아문(夏官衙門)’ ‘병관(兵官)’ ‘서전(西銓)’ ‘기성(騎省)’ ‘기조(騎曹)’ ‘군부(軍部)’ ‘총부(摠部)’ 등이었다. 병조의 수장은 판서(判書)로 정2품에 해당하며 현재 국방부 장관과 같은 격이다. 차관에 해당 되는 직책은 참판(參判)으로 종2품이었다. 6조 가운데 병조의 서열은 네 번째였다. 그러나 나라의 안보가 달린 국방이라는 중대한 업무를 맡은 곳이어서 병조판서의 실권은 이조판서 다음인 두 번째였다. 태조 1년(1392년)에 설치돼 고종 31년(1894년) 갑오개혁 때 ‘군무아문(軍務衙門)’으로 바뀌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