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왜곡 망언과 '동국통감'

2019. 3. 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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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성(洪允成)은 세조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영의정까지 올랐던 그 역시 <동국통감> 은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다는 남곤의 말을 되풀이했다.

주자(朱子)가 편찬한 <자치통감강목> (資治通鑑綱目)도 읽지 않는데, <동국통감> 을 누가 읽겠냐고 했는데, 그래 그 말은 옳았다.

<동국통감> 은 읽지 않았지만, 그 글과 책으로 그들의 악행과 추악한 음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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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극우 인사 지만원씨가 7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동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연 '좌파정권에 부역하는 김성태 규탄집회'에 참석해 있다. '5.18 북한 배후설'을 주장하는 지씨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추천하려는 자유한국당 일부의 움직임에 대해 김 원내대표가 '난색'을 표하자 지씨 등 극우 보수 인사들이 반발해 집회를 열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8.11.7.

홍윤성(洪允成)은 세조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신임의 근거는 단종을 몰아낸 그 정변(政變), 곧 세조의 왕위찬탈 쿠데타를 적극 도왔던 데에 있었다. 홍윤성은 난폭한 성정, 거침없는 폭력으로 유명했다. 첩이나 노비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활과 칼로 다스렸다.

홍윤성이 춘추관(春秋館) 감춘추(監春秋)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시정기(時政記)를 읽어보니, 자신의 죄악을 넘쳐나게 써 놓았다. 춘추관은 당대의 시정(時政), 곧 동시대의 정치를 기록으로 남기는데, 그것이 곧 시정기다. 시정기는 뒷날 역사 편찬의 기본 자료가 된다. 시정기에 자신의 악행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보통의 사람은 놀라고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홍윤성은 “일본산 좋은 종이에 인쇄한 <강목>(綱目)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읽으려 하지 않거늘 하물며 <동국통감>을 읽겠는가? 너희들 마음대로 써 봐라, 누가 우리나라 역사를 읽으려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우리나라 역사책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말이었다.

뒷날 권력을 잡기 위해 더러운 음모를 꾸미고 살육을 행한 악인들은 이 말을 자신들의 악행을 덮는 말로 써먹었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이 들어서자 조정에는 새 바람이 불었다. 이른바 사림(士林)들의 개혁정치가 시작되자 낡은 세력들은 음모를 꾸며 개혁의 선두에 섰던 조광조를 죽이고 사림을 정계에서 축출했다.(이른바 기묘사화다) 그 음모의 수괴는 남곤(南袞)과 심정(沈貞)이었다. 역사가 두렵지 않냐는 말에 남곤 역시 “<동국통감> 따위를 누가 읽는단 말이야?”라고 답했다.

명종 때 권신(權臣) 윤원형(尹元衡)과 한 패거리가 된 이기(李?)는 을사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사림을 죽이고 권좌에 올랐다. 영의정까지 올랐던 그 역시 <동국통감>은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다는 남곤의 말을 되풀이했다.(그러고 보니 남곤도 영의정까지 지냈다!)

홍윤성·남곤·이기가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다고 했던 <동국통감>은 성종 때 만들어진 역사서다. 주자(朱子)가 편찬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도 읽지 않는데, <동국통감>을 누가 읽겠냐고 했는데, 그래 그 말은 옳았다. <동국통감>은 거의 아무도 읽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 <동국통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홍윤성과 남곤, 이기의 악행과 추악한 음모를 증언하는 글과 책이 넘쳐 났던 것이다. <동국통감>은 읽지 않았지만, 그 글과 책으로 그들의 악행과 추악한 음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21세기에도 <동국통감>을 누가 읽느냐는 자들이 있다. 근자에 5·18에 대해 태연히 망언을 내뱉은 자들이다. 알량한 권력으로 진실을 덮고 역사를 왜곡해도 자신들의 더러운 이름이 잊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하지만 <동국통감>이 읽히지 않아도 역사는 진실을 전했다. 아니, 역사의 심판을 기다릴 것도 없을 것이다. 망언을 내뱉은 자들을 처벌하고 정계에서 축출해야 할 것이다. 망언의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망언조차 다양한 역사 해석의 하나라는 궤변을 지껄이는 자들까지 정계에서 깡그리 축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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