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라는 평행우주의 상상력

박상준 2019. 3. 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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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스팀펑크 SF애니메이션인 `스팀보이` /사진=대원씨아이
[박상준의 사이언스&퓨처-30] 지난번 글에서 시간여행은 평행우주들 간의 차원이동일 수 있다는 가설을 다루었는데, SF작가들에겐 신나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좋은 바탕이 된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평행우주야말로 가상의 역사를 얼마든지 그려볼 수 있는 좋은 제재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세계적인 화제가 된 국산 좀비 드라마 '킹덤'도 가상의 조선시대가 배경이다. 이렇듯 대체역사를 새롭게 짜는 일은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디테일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된다.

대체역사적 상상력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가 '스팀펑크(steampunk)'이다. 사이버펑크가 전기전자공학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스팀펑크는 증기기관을 주된 동력원으로 이용하는 기술 체계를 의미한다. 오늘날 인류가 이용하는 대부분의 에너지는 전기이지만, 만약 전기 대신에 증기기관 기술이 계속 발전한 가상의 역사를 그려본다면 세상의 모습은 어떨까? 스팀펑크는 바로 그런 상상력을 마음껏 펼친 장르이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 등장하는 거미형 거대 로봇 /사진=Warner Bros.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전형적인 스팀펑크 스타일의 설정이다 /사진=대원씨아이

스팀펑크에 속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것은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9)나 '젠틀맨 리그'(2003)같은 영화들, 또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이나 '스팀보이'(2004)등의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들 작품에는 전기나 디젤 내연기관처럼 보이는 설정도 등장하지만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또한 스팀펑크는 엄밀히 말하자면 증기기관 못지않게 주된 문화적 코드로 19세기풍의 시대 배경이 핵심이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가상의 19세기이되, 전기전자공학보다는 증기기관이나 기계공학이 대세라는 설정인 것이다. 때로는 증기기관뿐 아니라 디젤엔진 같은 내연기관도 함께 나오기에 '디젤펑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사이버펑크나 스팀펑크, 디젤펑크에 공통적으로 붙은 '펑크'라는 말에 유의해보자. 원래 펑크(punk)는 거칠고 과격한, 다듬어지거나 길들여지지 않은, 열정이 넘치는, 사회 통념이나 관습에 반하는, 자유분방한 등등의 의미를 품은 말이다. '펑크록'처럼 음악계에서 쓰이던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SF에서는 과학기술과 결합되어 작품 속 배경이 되는 시대에서 뭔가 억압과 구속을 깨는 캐릭터 및 성향을 뜻하는 말로 정착되었다. 어떤 기술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접두어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바이오펑크'는 유전공학이나 생물공학과 결합된 펑크SF 장르이다.

이렇듯 다양한 펑크SF 장르의 미덕은 과학기술적 상상력과 사회학적 상상력이 합체되어 더 풍부한 미래 가능성을 열어 펼칠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는 데 있다. 특히 21세기로 접어든 지금의 세계 시민들은 이전 시대들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든 복잡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인류 역사상 최고로 풍족한 정보 혜택을 누리지만, 삶의 질도 그만큼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소득 격차는 계속 벌어져서 상대적 빈곤이나 박탈감은 심화되고, 한국의 경우 청년 세대의 취업난도 심각하다. 최근 한국은 출생률도 기록적인 저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을 일신할 수 있는 것도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 문명을 선형적(linear)으로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어떤 특이점(singularity)의 도래를 가져올 걸로 예측하는 사람이 많다. 즉 이제까지 인류 역사의 추이를 그대로 반영한 미래 전망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이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결합된 과감한 펑크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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