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독립의 열망 품고 암호문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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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우전 선생이 20일 타계했다.
선생에겐 '백범의 비서',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 등 여러 수식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다른 특별한 업적이 있다.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안전하게 소식을 주고받는데 사용될 한글 암호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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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우전 선생이 20일 타계했다. 향년 98세. 고인은 일제 강점기 독립을 위해 광복군으로 활약하며 1945년 3월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미국 육군의 전략정보처(OSS· 미 중앙정보국 전신)에 파견돼 일본의 패망 직전까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광복군 출신에 대한 냉랭한 분위기 속에 귀국한 그는 임시정부 주석이던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에 임명돼 경교장에서 일했다.
선생에겐 '백범의 비서',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 등 여러 수식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다른 특별한 업적이 있다.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안전하게 소식을 주고받는데 사용될 한글 암호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선생이다.
1919년 3월, 일본 경찰은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인의 소지품을 수색하다 암호를 해석하는 방법이 담긴 암호부를 발견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문서가 일본 경찰에 발각돼도 내용을 들키지 않도록 암호를 사용해야 했다.
압수된 암호부에는 암호의 원리가 상세히 담겨 있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아라비아 숫자로, 아라비아 숫자와 동서남북은 특수기호로 나타냈다. 예를 들어 자음 ‘ㄱ, ㄴ, ㄷ…’과 모음 ‘ㅏ, ㅑ, ㅓ…’는 아라비아 숫자 ‘1, 2, 3…’으로 쓰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이 암호가 3.1운동에도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암호부를 압수한 일본은 암호를 해독하는 주기를 점점 줄였다. 하지만 암호를 다 파악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운동단체마다 사용하는 암호가 제각기 달랐을 뿐만 아니라 암호에는 산술식을 쓰기도 했고, 세자릿수 이상이 사용되며 암호가 점점 복잡해졌다.
선생도 광복군에 복무하며 혼자 힘으로 ‘W-K한글암호’를 만들었다. 1922년 평북 정주 출신인 선생은 일본 리쓰메이칸(立命館)대 법학과에 다니던 중 재일학생민족운동 비밀결사단체인 조선민족 고유문화유지계몽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1944년 1월 일본군에 징병돼 중국으로 파병되자 부대를 탈출해 같은 해 3월부터 10월까지 한국광복군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한글 암호를 만들었다.

선생은 자음과 모음, 받침으로 이뤄진 한글의 특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암호를 개발했다. "자음과 모음을 각각 두 자릿수의 아라비아 숫자로 대체해 네 자릿수의 암호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받침이 없는 글자는 기본적으로 네 자릿수입니다. 받침이 있는 글자를 쓸 때는 자음 숫자 앞에 꼭 00을 붙여 받침이라는 걸 표시했어요." 선생의 설명대로라면 ‘W-K한글암호로 '김’은 ‘11390015’가 된다. ‘ㄱ’은 11, ‘ㅣ’는 39, 받침 ‘ㅁ’은 0015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을 염두에 두고 암호를 만들었다. 당시 OSS는 1945년 일본이 머지 않아 패망할 것으로 보고 한반도 진입 작전에 앞서 중국에서 광복군을 선발해 특수훈련을 실시했다.
"한국광복군은 미군과 함께 한반도에 진입해 일본군과 싸우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이때 서로 통신할 암호가 필요했는데, 이를 만들 수 있는 인물은 저뿐이었어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전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일본이 갑자기 항복해버렸습니다." 선생은 다시 한번 당시를 회고하며 "우리 힘으로 독립을 얻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선생은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소회를 묻자 이렇게 갈음했다. "자유는 매우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 가치를 지금의 후손들에게 선물하려고 노력한 독립운동가들은 모두가 누군가의 형, 누나, 오빠, 언니였습니다. 그들의 노력을 잘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김우전 선생이 타계하기 불과 나흘 전인 지난 16일 2시간여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선생은 병상에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어렵게 의사소통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인터뷰 내내 질문에 대해 한 마디 한 마디 분명한 목소리로 힘을 내어 답을 했습니다. 독립을 향한 고인의 뜨거웠던 열정과 고뇌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연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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