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가장 어울리는 공간 찾고 만드는 게 제 임무죠"

박진영 2019. 2. 2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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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경 영화 '사바하' 미술감독/"비주얼 구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텍스트 분석하는 능력도 중요해/
그래야 영화미술이 작품과 조화/ 밝은 작품과 뮤지컬영화 하고파"/ '거북이 달린다'에서 미술팀 입문/ 총 9편 영화 거쳐 미술감독으로
“세상의 빛과 어둠은 서로 연결돼 있어요.”

영화 ‘사바하’에서 빛과 어둠, 이것과 그것, 그리고 등불과 뱀은 대칭적 구조를 이룬다. 이것이 있기에 그것이 있다.

영화 속 공간은 장재현 감독의 이런 세계관을 응축해 보여준다. 서성경(40·여) 미술감독을 포함해 여성 6명으로 꾸려진 미술팀의 손을 거쳤다. “영화의 미술감독은 영화에 가장 적합한 공간을 구현하는 사람”이란 서 감독의 지론과 맥이 닿아 있다.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 감독은 “장 감독이 (‘그것’의 쌍둥이 동생) 금화의 집이나 종교단체인 사슴동산 같은 공간이 ‘평범하면서 수상해 보이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며 “주인공들이 우리와 너무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면 좋을 것 같아서 수상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공간에 넣기 전에 현실감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금화의 집 외부 공간에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전북 남원시에 오픈 세트를 짓는 데 2개월이 걸렸다. 인적이 드문 산 중턱이라는 적당한 위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상 2층의 양옥집 외관이나 ‘그것’이 사는 헛간 옆 나무도 하나하나 다 제작했다.

“헛간 옆의 나무는 장 감독이 헛간을 움켜쥐고 있는 손 모양을 원했습니다. 나뭇가지들을 나무에 덧붙여 만들었죠. 좀 을씨년스럽게 보이게 하려고 어두운 색도 칠했습니다.”

가장 공들인 건 탱화다. ‘사바하’에서 탱화는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줄 뿐 아니라 복선 역할도 한다. 영화적 해석이 중요했다.

영화 ‘사바하’의 미술 작업을 총괄한 서성경 미술감독. 서 감독은 “영화의 미술감독은 영화에 가장 적합한 공간을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남정탁 기자
“불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 불교 관련 서적과 불화를 많이 찾아봤습니다. 사천왕이 중심인 불화가 거의 없었어요. 국가별, 시대별, 경전별로 사천왕이 손에 든 지물도 달랐습니다. 조선 후기 주요 사찰의 사천왕 모습을 기준으로 영화에 맞는 것을 추려 종합했죠. 지인이 소개해 준 불교미술 전공 학생도 함께했습니다.”

사슴동산 법당의 탱화는 가로 8m 정도 크기. 실제로 그리려면 수개월이 걸리는 일이었다. 여건이 되지 않았다. 서 감독은 “작게 그려 스캔한 뒤 크게 출력해 벽에 붙였다”며 “티가 날까봐 문양 등은 리터칭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은 나한과 사천왕이 머무는 사슴동산 비밀의 방, 일명 신장당이다. 검붉은 색조의 불화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부각했다. 나한이 처한 상황이 지옥의 불구덩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컴퓨터 그래픽(CG)의 도움도 받았다. 건물 외벽의 그림은 물론이고 헛간 옆 나무의 높이, 스산한 분위기를 만드는 안개와 입김, 개와 염소를 제외한 동물들이 대표적. 서 감독은 “CG 기술의 발전에 깜짝깜짝 놀란다”며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힘들거나 촬영 용이성을 위해 세트장에서 찍어야 할 때 CG를 사용한다”고 했다.

영화 ‘사바하’의 태백 사슴동산 법당의 탱화. 동쪽 사천왕인 지국천왕이 비파를 들고 악귀를 밟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영화의 세계관을 공간의 유기성으로 표현해 보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있는 헛간 앞에 개장(개 철창)들로 긴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금화의 방은 2층의 복도 끝에 있죠.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신장당도 비밀 문을 통해 복도를 지나가야 해요. 또 헛간과 (‘이것’이 있는) 사슴동산 녹야원의 축사 마감재도 비슷한 것을 쓰려 했습니다. 이런 장면들이 많이 편집돼 아쉬워요(웃음).”

서 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서울예술대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약 4년간 일했다. 홍익대 일반대학원에 진학해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이내 영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시작은 늦었지만 입봉은 빨랐다. 29세 때 ‘거북이 달린다’ 미술팀에 처음 들어갔다. 꼬박 8년간 총 9편의 영화를 거쳐 미술감독 자리에 올랐다. 데뷔작은 2017년 개봉한 ‘보통사람’. ‘사바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서 감독은 영화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국내외 작품으로 ‘가버나움’ ‘공작’ ‘브라질’ ‘지슬’을 들었다. 미술감독의 자질로는 해석 능력을 꼽았다.

“비주얼을 구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텍스트를 분석하는 능력도 중요해요. 시나리오 흐름, 인물의 감정선을 파악해 비주얼에 반영해야 영화미술이 영화와 어우러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 감독의 차기작은 로맨틱 코미디다. 그는 “‘사바하’ 촬영이 끝나고 밝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면서 “뮤지컬 영화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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